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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Archaeology of Avantgarde》

  • 작가

    백남준

  •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 주소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상갈동)

  • 기간

    2022-03-03 ~ 2022-09-18

  • 시간

    10:00 ~ 18:00 (휴관일 : 월요일, 추석)

  • 연락처

    031-201-8500

  • 홈페이지

    http://njp.ggcf.kr/

  • 초대일시

  • 관람료

    무료관람

갤러리 가기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오는 3월 3일부터 9월 18일까지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Archaeology of Avantgarde》를 개최한다. 2022년 첫 번째 전시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백남준 생애와 작품의 중요한 순간을 돌아보는 열 장면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처럼 백남준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열가지 순간을 되짚어가며, 백남준이 항상 새로운 매체와 예술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근원적 이유가 바로 아방가르드 정신에 있었음을 제시한다. 2000년 레이저 작품 앞에 있는 백남준에서 시작하여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설치 중인 백남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지휘하던 백남준을 거쳐 1960년대의 청년 백남준까지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준다.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그동안 국내에서 많이 선보이지 않았던 작품들을포함한다. 1977년 백남준이 발표한 음반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를 비롯하여, <자화상>(1998)(서울 시립 미술관 소장)과 대규모 미국 순회전 《전자 초고속도로》(1994-1997)의 출품작 〈사이버포럼〉(1994)(한국민속촌 소장) 등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적 성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돌아보며 그 근본을 깊이 탐구하는 과정을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이라고 불렀다. 백남준은 열다섯 살 무렵에 들었던 “쇤베르크가 가장 극단적인 전위주의자다”라는 말에 즉시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마치 영혼의 깊숙한 바닥으로 부터 무언가가 울려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위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는 일생의 방향을 정한 것이다. 백남준은 그가 아방가르드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 자신의 유전자로부터 유래한 것, 즉 자신의 본래의 성격에 아로새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남준은 우랄 알타이 사냥꾼들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언제나 멀리 떠나 새로운 지평선을 바라보았듯이, 아방가르디즘이 자신의 삶을 항상 새로운 예술로 잡아끄는 근원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왜 백남준이 그토록 멀리 보는 기계, 즉 텔레비전(tele-vision)에 끌렸었는지, 그리고 왜 항상 새로운 매체를 찾아 작업을 했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백남준은 마흔다섯 살을 2주 앞두고, 지금이야말로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을 만들 때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흔 살의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마흔다섯 살 생일을 앞두었던 백남준의 생생한 고민을 돌이켜 들을 수는 있다. 백남준이 마흔다섯 살이 되던 1978년에 그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생계 때문에 친구였던 요셉 보이스의 뒤를 이어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승낙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교수직을 얻기 한 해 전인 1977년에 《도큐멘타 6 위성 텔레캐스트》를 통해 위성을 이용한 비디오아트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독일과 뉴욕을 묵묵히 오가며 작업을 계속했고 1982년의 휘트니 미술관의 회고전을 거쳐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며 뉴욕과 파리의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는 위성 방송을 전 세계에 송출하였다. 그가 위성을 통해 멀리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새로운 지평선은 우주였다. 예술과 삶을 통합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방가르드는 현대 예술의 청년기이기도 하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이 없는 아흔 번째 생일잔치를 준비하며 아방가르드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본 전시는 아방가르드를 그저 지나간 미술사의 한 페이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을 지탱하고 숨 쉬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바라본다.





■ 전시구성


전시는 백남준의 대표작과 당시 백남준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비디오로 구성된 열 장면으로 구성된다.

1. 백남준의 세계



2000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던 백남준 회고전의 제목은 “백남준의 세계”였다. 백남준의 1960년대 작업부터 레이저까지 백남준이 다루었던 매체들을 총망라하여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를 기획한 존 핸하르트가 레이저 작업들을 가리켜 “백남준의 승리”라고 부른 것은 정말 통쾌한 일이었다. <삼원소>를 비롯한 레이저 작업은 테이프 음악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방송국과 위성으로, 비디오 설치에서 레이저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았던 백남준의 예술적 도전을 상징한다.

백남준은 동영상의 역사적 전개에서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해 온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레이저가 다시 한 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백남준은 평생을 거쳐 하나의 매체,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 바로 아방가르드임을 보여주었다. 비록 육신의 병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부끄러워하거나 주춤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 질렀다. 육신의 제약마저 예술의 새로운 매체로 삼은 것이다.


2. 칭기즈 칸의 복권



1990년대 백남준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았다. 백남준은 매번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전시하고 작업하는 아방가르드였다. 1993년 독일관 대표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백남준은 “전자 초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라는 전시 주제를 통해 동서양의 교류와 소통을 다루는 한편, 자신이 28년 전 예견하였던 ‘전자 초고속도로’, 즉 인터넷의 시대가 실현되고 있다는 견지에서 매체에 대한 기억과 역사를 다루는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칭기즈 칸의 복권>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자전거를 탄 로봇이 열 대의 텔레비전을 자전거 짐받이에 가득 싣고 있는 조각 작품이다. 자전거 짐받이에 실린 텔레비전 케이스의 안쪽은 네온관으로 만든 기호와 문자로 채워져 있어서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순회전의 형식으로 미국 전역에서 개최되었던 《전자 초고속도로》 역시 전자 매체로 표상되는 인터넷이 앞으로 물리적 세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개념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다. 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사이버포럼>은 위성 안테나를 지붕으로 하는 작은 법정에 서 있는 로봇을 연출한 것으로, 인간이 아닌 로봇마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미래적인 사유를 보여준다.

이후 백남준은 카이저링 상(1991), 유네스코 피카소 기념상(1992) 후쿠오카 문화상(1995), 호암상(1996), 괴테 메달상(1997), 교토상(1998)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특히 1995년 첫 번째 광주 비엔날레를 공동 기획하며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3. 굿모닝 미스터 오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뉴욕과 파리를 1984년 1월 1일에 위성으로 연결하여 각각에서 일어나는 퍼포먼스를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백남준의 기획에서 핵심은 대중문화의 스타들과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소통하는 만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의미있는 만남을 전 세계인들이 함께 지켜보도록 ‘선물’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이원생방송은 한쪽에 컨트롤 타워를 두어서 다른 한쪽의 영상을 받은 뒤 실시간 편집하여 동일한 내용을 양쪽으로 송출한다. 그러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파리와 뉴욕이 각자의 방송 소스를 주고받은 뒤 각자 자유롭게 방송 내용을 송출했다. 백남준이 생방송이란 전화처럼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텔레비전의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백남준이 텔레비전에서 응당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식의 소통, 즉 쌍방향 텔레비전이 실현되었다. 백남준의 위성방송은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뉴욕과 파리의 작가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완성된다.


4.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



독일 라인 강변에 작은 프로펠러가 달린 바이올린이 떠 있다. 백남준은 강가에 서서 무선 조종기를 들고 바이올린을 조종하고 있다. 바이올린에 달린 작은 프로펠러가 강의 거센 물결을 거스르고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플럭서스 정신에 입각해 예술이 취할 수 있는 형태의 급진적 변화를 모색한 백남준에게, 넓은 의미의 음악은 예술의 원천과도 같았다. 특히 이 작품에는 “교향곡 7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서 바이올린의 소리 외에 수많은 물결과 물결을 일으키는 바람, 주변의 소리까지도 모두 교향곡의 일부가 된다.

백남준의 작품은 배터리로 작동하며 물에 떠다니는 바이올린으로, 조종기로부터 전방 1km까지 제어 가능하다. 무선 제어 조립식 모형 배 전문 제조사인 로베(Robbe)의 2-채널 송신 기능을 갖춘 40MHz 이코노믹 AMS 원격 조종 시스템을 사용하였으며, 바이올린은 수제 현악기 전문 제작사인 피라스트로(Pirastro)에서 만든 것으로 뒷면을 사각으로 뚫어 엔진을 장착하였다. 이
작품은 1981년 뒤셀도르프의 호프가르텐 공원의 라인 강변에서 백남준이 초연하였으며, 1986년에는 독일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 “아쿠아 콰르텟”이라는 이름으로 네 명의 연주자들이 연못에서 바이올린을 건져내어
를 연주한 적도 있다.


5.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백남준이 1977년 한정판으로 발매한 LP음반의 제목은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이다. 백남준은 여기에 아놀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1899)이라는 곡을 4배 느리게 재생한 소리를 담았다. <정화된 밤> 원곡은 현악 6중주로 연주되는데, 무조성 음악 이전의 곡이라 그다지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후기 낭만파의 표제음악적 성격을 보여준다. ‘쇤베르크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라고 들었던 어린 백남준은 전위적이라는 말에 이끌려 이 음반을 무척이나 듣고 싶어 했으나 당시 서울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그 이름만으로도 백남준을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예술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백남준은 도쿄대학교에서 쇤베르크로 졸업 논문을 쓰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고자 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직접 경험한 쇤베르크와 그 학파들의 음악은 백남준을 적잖이 실망시켰다. 이윽고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음악에서 새로움과 충격을 발견했고 곧 클래식 음악을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찾아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떠났다.

한참 후에 이 <정화된 밤>을 들은 백남준은 바그너식의 헛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고, 스스로의 방법대로 쇤베르크를 업그레이드해 버렸다. 백남준은 바로 자신이 아방가르드임을 밝히며 그의 거칠 것 없는 축제가 계속된다는 것을 선언했다.


6. TV 부처



이 유명한
에 관하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구도자이며 동양적 지혜의 상징인 부처가 현대 문명의 상징이자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보는 경험을 선불교의 명상적 체험에 빗대어, 종교적 의미나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현실에 기반을 둔 ‘전자 선’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감시용 폐쇄회로 카메라를 마주하고 태연히 앉은 부처의 얼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참선과 초월? 혹은 감시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배워야 할까. 이 카메라가 감시 카메라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잠시만 잊어보자. 만약 영화감독의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라면? 이것이 만약 실시간 영화라면 당신은 여기서 어떠한 재미와 아름다움을 찾겠는가. 그것은 ‘지루함’일 것이다. 지루함은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백남준의 또 다른 예술적 전략이다.


7.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사실 백남준 자체이다. 그 당시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을 가를 수 없고, 기술자와 예술가를 분리할 수 없다. 모두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려 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당시 대중화의 기로에서 있던 비디오라는 매체에 방송국 수준의 편집 기능을 더하여 비디오를 피아노처럼 대중화시키고자 했던 백남준의 의지의 산물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영상의 변형이나 구도 설정을 위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형태와 색의 분리, 결합과 반복, 해상도 조종, 분할과 확대, 차단과 감광, 압축과 피드백 등이 가능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녔다. 백남준은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다재다능한 컬러 TV 신디사이저”라고 부르며 기대와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마치 위대한 화가들이 캔버스에 자신의 예술 세계를 자유롭고 화려하고 심오하게 표현하듯이 이 기계로 텔레비전 수상기를 캔버스 삼아 방송용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마치 디제이가 실시간으로 음원을 섞어서 바로 내보내듯이,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믹싱하여 새로운 영상을 만든다. 색을 변조하고 형태를 뒤흔들고 서로 다른 영상을 뒤섞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약물에 취해) 혼돈에 빠진 듯한 전혀 새로운 우리 자신을 (뮤직) 비디오 속에서 발견한다.

8.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결코 연인의 길을 가지는 않았던 젊은 두 명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는 각자의 예술을 위해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샬럿 무어먼은 자신이 기획한 공연 <오리기날레>와 매년 자신이 기획하는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백남준이 필요했고, 백남준은 음악에 성(sex)의 요소를 도입하는 작품에 무어먼이 필요했다. 둘은 각자의 전략 아래 서로를 믿고 이용했다. 백남준은
, ,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생상스 테마 변주곡> 등 무어먼을 위한 작품을 창조했고, 이 두 사람은 전 세계로 공연을 함께 다녔다. 그러나 무어먼은 첼리스트로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의 한계 이상을 요구하는 백남준 앞에서 시험에 들었다. 그러나 무어먼은 항상 첼리스트로 최선을 다해 엄청난 집중력을 유지하며 승리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녀에게 (매체와 하나가 되는) 희열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백남준은 바로 무어먼이 가장 훌륭한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굳게 믿었다.


9. TV 왕관 (비디오의 고고학)



클래식 작곡가의 꿈을 키우다가 텔레비전과 전자공학의 세계에 무모하게 뛰어든 23세의 젊은 예술가 백남준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했다. 전기공학과 물리학 같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부담, 첨단 TV와 장비를 사는 데 드는 엄청난 액수의 돈, 불확실한 길을 간다는 두려움, 15,000 볼트 전기에 감전될 위험까지. 백남준은 어떻게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었을까. 백남준을 텔레비전으로 이끌었던 그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 백남준은 그 답이 자신의 DNA에 새겨진 무모한 아방가르드 정신에 있다고 답했다. 백남준은 남들이 가는 길, 닳고 닳은 클래식의 길, 위선과 익숙함에 길들여진 길, 그래서 자신마저 속이는 길을 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지평선을 보러 매번 새로운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존 레논이 백남준을 “아방-리가르드(avant-reguard)”라고 부른 것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다. 백남준은 단 한 번의 아방가르드가 아니라, 언제나 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다.


10. 로봇 오페라



<로봇 오페라>는 샬럿 무어먼이 기획한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백남준이 자신의 <로봇 K-456>을 조종하며 거리를 걸어 다니고 샬럿 무어먼이 그 옆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다. 백남준이 1964년 일본에서 제작한 <로봇 K456>은 20채널로 원격 조종되는 로봇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8번 B플랫 장조>의 쾨헬 번호 456을 따라 이름을 붙였다. 백남준의 <로봇 오페라>는 모든 거리와 광장에서 시간, 날짜, 장소 그리고 관객까지도 미정인 채로 열린다. 그러나 그 태생의 이유는 분명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고,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고, 바그너는 너무 길기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오페라는 너무 더럽고, 멜로 드라마는 너무 저속하기 때문이다. 마약은 너무 강하고, 섹스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다. <로봇 오페라>는 소위 고급문화가 새로움을 거부한 채 전통에 안주하는 현상과, 신파극이 대변하는 대중문화의 예술 상품화 성향을 동시에 비판했다. 백남준은 시간과 장소가 미정인 상태로 로봇과 함께 거리로 나가 “파블로 피카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며” 우연과 소음으로 가득 찬 ‘해프닝’을 벌였다. 백남준의 소통 방식은 당당하고, 항상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 주요 작품 소개


1)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로봇·비디오, CRT TV 모니터 1 대, 철제 TV 케이스 10 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217×110×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되었다. 20세기의 칭기즈 칸은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있으며, 잠수 헬멧으로 무장한 투구와 철제 주유기로 된 몸체, 플라스틱 관으로 구성된 팔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 뒤에는 텔레비전 케이스를 가득 싣고 있으며, 네온으로 만든 기호와 문자들이 텔레비전 속을 채우고 있다. 네온 기호들은 전자 고속도로를 통해 복잡한 정보들이 축약되어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텔레비전 영상에서는 병에서 피라미드로, 도기에서 주전자로 변형되는 여러 가지 마스킹 기법이 쓰였으며 추상적인 기하학 패턴이 지속적으로 교체된다. 백남준은 〈마르코 폴로〉, 〈칭기즈 칸의 복권〉, 〈스키타이 왕, 단군〉, 〈알렉산더 대왕〉 등의 로봇을 통해, 교통 및 이동수단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거나 지배하던 과거에서 광대역 통신을 이용한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가 올 것을 강조한다.


2)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현장 스틸.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가 텔레비전을 통해 지식과 권력을 집중화시키는 전체주의 사회가 올 것으로 예언한 데에 반하여, 백남준은 뉴욕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시키는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여 상호소통의 예술매체로서 텔레비전이 지닌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뉴욕의 WNET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이나 샬럿 무어먼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공연과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요셉 보이스와 어반 삭스 등의 공연이 교차되거나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 80년대 당시 위성은 냉전의 산물이자, 엄청난 국가적 자본을 투입한 하이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였다. 이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몇몇 메이저 방송국과 나사(NASA) 정도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이러한 위성 방송 시스템을 이용하여 대륙 간,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소통을 만들 수 있는 계기로 생각했다.



3) 백남준,
(1974)



백남준, < TV 부처> (1974)
석불좌상 1 기, CRT TV 모니터 1 대, 폐쇄회로 카메라 1 대,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의 〈TV 부처〉는 불상과 TV 모니터가 마주보고 있는 형식으로, 모니터 뒤편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가 불상을 실시간으로 찍은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부처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구도가 된다. 사용된 불상과 모니터, 주변 배치가 저마다 다른 여러 가지 버전이 제작되었는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은 석조 좌상과 14인치 모니터가 흰색의 좌대 위에 놓인다. 종교적 구도자이며 동양적 지혜의 상징인 부처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의 대비,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시즘과 선불교의 명상을 전자적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 등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백남준은 실재하는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실시간 영상 이미지가 계속 순환하는 구조에서 현실과 재현의 관계, 동시적으로 보이는 둘 사이에 발생하는 미세한 입출력 시간차에 주목하며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매개적 성격을 탐구하였다. 1974년 쾰른미술관에서 열린 퍼포먼스에서는 백남준이 법의를 걸치고 TV 모니터 앞 부처상 자리에 직접 앉기도 하였다.


4) 백남준,
(2002)



백남준, 〈TV 첼로〉 (2002)
CRT TV 모니터 3 대, 비디오 분배기 1 대, 플렉시글라스, 첼로 헤드, 첼로 테일피스, 첼로 현, 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DVD, 48×51×145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TV 첼로〉는 크기가 다른 세 대의 모니터를 플렉시글라스에 넣어 쌓고 첼로 헤드와 테일피스, 현을 붙여 첼로 모양이 되도록 한 비디오 조각이다. 백남준은 1971년 샬럿 무어먼과의 퍼포먼스를 위해 〈TV 첼로〉를 처음 만들었다. 초기 〈TV 첼로〉는 무어먼이 실제로 연주를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첼로의 현을 켤 때마다 충돌하는 전자음이 만들어졌는데, 이 소리가 모니터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무어먼은 때때로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거나 아크릴 박스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첼로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후 백남준은 여러 차례 〈TV 첼로〉를 추가로 제작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여 점의 작품이 남아 있다.


5) 백남준, <자석 TV> (1965)




백남준, 〈자석 TV〉 (1965)
CRT TV 모니터 1 대, 자석 1 개, TV 32×43×40cm, 자석 4×14×4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은 1965년 미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예술과 음악》에서 〈자석 TV〉를 처음으로 전시하였는데, 관람객이 직접 자석을 움직여서 모니터의 화면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설치되었다. 강력한 자력은 텔레비전 전자 빔에 간섭 현상을 일으켜 전자 빔의 방향을 왜곡시키고 백남준이 의도했던 대로 관람객의 참여로 인해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패턴이 텔레비전에 나타난다. 단순한 원리로 화면을 조작하여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비디오 아트의 미래를 예언하는 작품이다.


6) 백남준, <닉슨> (1965)



백남준, <닉슨> (1965)
CRT TV 모니터 2대, 에나멜 코일 2개, 신호 발생기 1대, 메킨토시 앰프 1대, 콘덴서 2대, 비디오 분배기 1대,
스위처 박스 1개,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VHS 테이프,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닉슨〉은 백남준의 초기 실험 텔레비전 중 하나로, 신호발생기를 통해 만들어진 신호를 앰프를 통해 증폭시킨 다음 모니터 위에 설치된 코일로 전류를 흐르게 한다. 이 전류는 스위치를 통해 두 개의 모니터에 번갈아 가며 흐르게 되는데, 이때 흐르는 전류가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전자 빔을 왜곡시켜 화면에 등장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화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닉슨은 1960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후보와의 TV 토론회에서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낙선했는데, 백남준은 미디어의 영향력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7) 백남준,
(1965)



백남준, 〈TV 왕관〉 (1965)
회로 조작 CRT TV 모니터 1 대, 신호 발생기 2 대, 온도 조절기 1 대, 앰프 2 대,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의 초기 실험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하나인 〈TV 왕관〉은 신호발생기의 신호를 진공관 앰프를 통해 증폭시켜 텔레비전에 입력하여 내부 회로를 변조한 작품이다. 회로가 조작된 텔레비전의 전자 빔을 변형시켜 다양한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 댄싱 패턴이라고 불리는 이 이미지들은 백남준이 〈자석 TV〉(1965)와 더불어 자신의 작업의 초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디오 신호를 써서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변조하는 것은 이후 비디오 신디사이저에서도 사용한 기술적 원리로 백남준 비디오에 자주 등장하는 조형 패턴의 기본이 되는 생성 방법이다.


8) 백남준, <로봇 K-456> (1964)


백남준, <로봇 K-456> (1964)
CRT TV 모니터 2대, 에나멜 코일 2개, 신호 발생기 1대, 메킨토시 앰프 1대, 콘덴서 2대, 비디오 분배기 1대,
스위처 박스 1개,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VHS 테이프,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의 첫 번째 로봇 작품인 〈로봇 K-456〉은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일본 엔지니어들과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20채널로 원격 조종되는 로봇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8번 B플랫 장조〉의 쾨헬 번호를 따서 이름 붙였다. 이 로봇은 거리를 활보하며 라디오 스피커가 부착된 입으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고 마치 배변을 하듯 콩을 배출하기도 했다. 〈로봇 K-456〉은 백남준과 각종 퍼포먼스에서 함께 공연했고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회고전에서는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 퍼포먼스에 등장하였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21세기 최초의 참사”라 명명하였는데, 이를 통해 기계적 합리성의 허구를 드러내고 인간적 고뇌와 감성을 지녔으며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화된 기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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