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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Ⅱ - 나를 보다

SELF-PORTRAIT Ⅱ : Reflecting upon the Self

  • 작가

  • 장소

    경남도립미술관

  • 주소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296 (퇴촌동)

  • 기간

    2020-02-20 ~ 2020-05-17

  • 시간

    10:00 ~ 19: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연락처

    055-254-4600

  • 홈페이지

    http://www.gyeongnam.go.kr/gam

  • 초대일시

  • 관람료

    성인 1000원 / 청소년,군인 700원 / 어린이 500원

갤러리 가기
경남도립미술관(관장 김종원)은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과 함께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自畵像)Ⅱ - 나를 보다>展을 2월 20일부터 5월 1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지나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의 다양한 역사사건의 관계인물 서화는 물론 프로작가달의 작품을 통해 전환기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무오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를 비롯해 당대 최고 서화가의 작품까지 20세기 초를 대표할 각계각층의 서화, 유물, 사진 등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해방 이후 북으로 남으로 오고 간 월북 - 월남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비교 해볼 수 있어 매우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년 전 예술의전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영남지역’미술 작품이 추가되어 구성이 보다 풍성해졌다.

한국미술에서 전통과 현대의 분기점은 서(書)의 자리를 유화(油畫)가 차지한데에서 찾아진다. 즉‘서(書)는 미술도 예술도 아니다’는 일제(日帝)가 들이댄 서구식 잣대는 전통의 서화일체(書畫一體)를 둘로 나누면서 서(書)를 배제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식민지 시대를 전후 한국의 근현대 예술양상은 서화미술의 지평이 넓어졌고, 조형언어가 다양해졌다는 데로 모아 진다.
물론 이러한 서화미술언어의 변화는 봉건조선의 신분질서 붕괴와 식민지–분단/전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획득해 낸 독립정신(獨立精神)과 국민주권(國民主權)의식과 직결된다. 이것은 나라가 망했으니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었고, 우리예술도 정체성이 상실되었다는 기존의 부정일변도 인식을 뒤집고 있다. 도화서(圖畫署)의 해체와 조선미술전람회 등의 등장에 힘입은 프로 작가의 등장, 일본을 통한 서구 아카데미즘미술과 좌우이데올로기 대립 또한 이전 시대 예술에는 없던 한국근대미술의 새로운 양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화상Ⅱ – 나를 보다>는 변혁기(變革期) 우리 예술 횡단면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보고, 우리 서화 미술의 미래를 100년 전‘독립정신(獨立精神)’에서부터 모색한다는 취지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이야기는 조선 말기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분단정국에 까지 이어 진다. 조선말기 고종에서부터 해방 후 김구 선생까지 이 땅의 인물들의 고뇌가 묻어난 친필 유묵이 전시되며, 장승업에서부터 고희동을 지나 이쾌대까지 서화 미술의 변화 양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의 영향, 해방 후 월북으로 잊힌 작가 등 변혁기 한국 서화미술의 자화상(自畵像)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예술로서의 서화(書), 혼(魂)으로서의 서화(書)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있던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서화가들은 19세기말부터 일본으로 유학하여 미술을 배웠고, 일본과 꾸준히 교류했다. 강제병합 이후에도 고희동, 나혜석, 김관호 등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으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렸다. 일본 화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출품작가, 미술 교사 등의 역할을 통하여 조선 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외면’보다는‘직시’를 통하여 우리가 애써 회피해왔던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근대 서화미술사에서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활발하게 활약했던 인물들 중 한국전쟁 이후 북(北)으로 건너간‘월북 작가’도 서화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근원수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용준,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사사하여 조선미술전람회의 단골 입상자였던 정종여, 김기창․장우성 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리석호(이석호) 등에게서 분단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절반의 미술사를 볼 수 있다. 영남화단을 대표해 문신, 전혁림, 박생광, 허민 등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며, 이를 통해 수도권과는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만들어진 영남지역 화풍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 구성 상세 내용>

■ 제1전시실
Ⅰ. 수구와 전통계승 · 전복 – 동서(東西) 문명의 대전환기
19세기 중반 조선은 병인·신미양요,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등이 말해주듯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대내적으로는 신분질서가 와해 되면서 민(民)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와 사회 실존을 반동적으로 반영한 작가는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등과 같은 화원 화가들이다. 이들은 조선 서화의 전통(傳統)가치를 계승해낸다는 입장에서 화보풍(畫譜風)의 수구(守舊)내지는 보수적(保守的)인 필묵(筆墨)과 조형언어를 일관되게 구사해내고 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추사체(秋史體)의 구축미와 다시점(多視點)의 민화 조형언어가 전통서화를 종결(終結)·전복(顚覆)시킴과 동시에 현대現代미술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 제2전시실
Ⅱ. 성찰의 붓질 반역의 붓질 - 대한제국과 한일강제병합
입헌군주제를 천명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 황제로 등극한 고종(高宗)은 구본신참(舊本新參)을 기치로 외세로 부터의 자주권(自主權) 회복을 골자로 하는 광무개혁(光武改革)을 단행하였다.
이를 통해 봉건질서가 해체되고, 근대 시민사회의 기본구조가 설계되었으나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늑약, 정미칠조약과 같은 여전한 외세가 대한제국을 일제(日帝)에 강제병합하고 말았다.
이런 시세물정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의 <문자도(文字圖)>를 중심으로 초상화에서 인물화로 변하는 <거울 보는 고종황제>, <기로대신초상>, 이완용·이토히로부미 필적 : 안중근의사 · 이준열사의 필적을 통해 성찰의 붓질 반역의 붓질로 그려진다.

Ⅲ. 서화에서 서화미술로 - 조선미술전람회와 문화통치
3.1독립만세운동 이후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문화통치(文化統治)로 바꾼 일제日帝는 ‘제국미술전람회’, ‘문부성전람회’를 본뜬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조선의 예술·정신과 같은 상부구조 장악을 획책하였다.
특히 문화통치로 본격접어든 20년대 전반기부터 시대를 휩쓴 ‘개조(改造)’라는 용어는 ‘서구화지상주의’, ‘문명개화(文明開化)’와 직통되면서 전통은 버려져야 할 것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이미 묘법과 정신에서 서양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조선특수의 표현력 창출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선전’에서부터 1930,40년대는 물론 해방 후‘국전’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아카데미즘 예술로서 향토색(鄕土色) 문제는 이국적 취향의 소재주의나 왜곡된 제국주의 시선을 넘어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세아주의와 같이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우리미술의 정체성 확보차원에서 담론이 형성되었다. 오지호가 원색에서 향토적 색채를 넘어 민족적 색채를 통찰하고 실천해내었다면 김용준 심영섭과 같은 논객들은 당시 프로미술과 아카데미즘의 반동으로 아세아주의를 토대로 조선향토색을 추구하여 조선적인 모더니즘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 제3전시실
Ⅳ. 피보다 진한 먹물, 또는 이데올로기 - 3.1독립운동 ·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년 3월 1일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와 고종황제의 갑작스런 붕어(崩御), 그리고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로 촉발되었다. 천도교에서 손병희 최린 오세창 등 15명, 기독교에서 이승훈등 16명, 그리고 불교계에서 한용운 백용성 등 총 33인이 공동대표로 참여하였다. 전국방방곡곡에서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은 만주 연해주 미주 등지로 확산 되었고, 이로 인해 4월 11일에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세계적으로도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운동, 베트남 필리핀 이집트의 민족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6년의 역사는 13년의 상해시기, 항주 - 남경 - 창사 - 유주 - 기강 등 8년여의 이동시기[장정시기(長征時期)], 5년간의 중경시기가 말해주듯 중국을 무대로 오직 민족독립 이라는 화두 하나로 이데올로기를 넘어 좌우합작으로 까지 힘을 합쳤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2차대전 항복으로 광복을 맞은 임정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3,40여 년 간 중국 러시아 미주 등지의 독립운동을 마감하고 귀국하였다.
이에 앞서 연합군이 2차대전의 승기를 잡은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독립을 결의하였지만 1945년 2월 4일, 얄타회담과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는 신탁통치(信託統治)가 결정되었다. 그 결과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고, 북한은 1949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특별전시실
Ⅴ. 평등과 자유 – 월북작가와 월남작가
광복·분단 정국과 6.25 전쟁시기의 서화미술은 민족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 그리고 중도라는 다양한 생각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개되었다.
월북작가는 공산사회주의의 평등平等 가치를 찾아 광복·분단 정국과 6.25전쟁시기에 북(北)으로 간 인물들이다. 김용준, 리팔찬, 리석호, 리쾌대, 엄도만, 정종녀 등과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반대로 월남작가는 자유自由를 찾아 서울 부산 마산 통영 등지로 정착한 인물들이다. 이중섭, 송혜수, 도상봉, 권진규, 박고석, 유택렬, 유강렬, 한묵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 작가 모두가 일제강점기 시공에서 전통서화와 서구미술의 분리/결합의 과도기를 살아간 인물들인 만큼 여전히 평등과 자유를 하나로 붓질하고 노래하고 있다. 필묵筆墨과 유화油畫로 자연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초현실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글씨와 산수화 풍경화부터 극사실의 인물초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표현하고 있다.
 

민영익_묵란도_종이에 수묵_31.5x59.5cm_1860-1914년




이완용_칠언절구_종이에 먹_116.2x42.4cm_1900년대



안중근_국가안위노심초사_비단에 먹_149x38.2cm_1910년



한용운_수인_종이에 먹_31x42.5cm_1937년



채용신_ 고종어진_종이에 수묵_44.5x32cm_개인소장



이육사_묵란도_종이에 수묵_24x33.5cm_개인소장_1944년



구본웅_해방_목판에 유화_52x35cm_1945년



도상봉_폐허_캔버스에 유채_73x90cm_1953년



송혜수_수련도_캔버스에 유화_13.5x16.5cm_1965년



최영림_여인_종이에 채색_38x44cm_1966년



정종여_참새_종이에 수묵_19.3x31cm_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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