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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 미술관 열돌 기념전: 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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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미술관 열 돌 기념전 《깍지》가 막을 올렸다. 《깍지》는 작가들이 둘씩 짝지어 서로를 돋보이게 비추고 밀어주는 의기투합 실험장이다. 평소 각 작가의 전시를 따로 볼 때 만나지 못한 새로운 면모, 기대감을 부르는 조합, 기발한 공간 해석을 즐기는 매력적인 전시. 강서경, 권인경, 김수연, 라오미, 박경종, 배윤환, 신민, 지희킴, 최수진, 홍승혜 총 10명의 작가가 다섯 개의 깍지를 이루어, 다수의 신작을 포함한 설치 중심 작업을 선보인다.


Sharing Painting
박경종, 지희킴
mixed media on birch plywood  540×360㎝  2020


전시장에 들어서자 막대기에 꿰어 공중에 떠 있는 그림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네모진 그림도, 원통형으로 둥근 그림도 함께 꿰어 도는 게 딱 내가 좋아하는 양꼬치 굽는 모양새이다. 그 사이로 선명한 원색이 천장까지 뻗은 큼직한 벽화가 시원하다. 오페라색 갈비뼈와 사람 키만 한 우주 소용돌이가 시야를 가득 메운다.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자작나무 패널을 이어 바둑판처럼 깔고 그 위에 그렸다. “My Shadow is Yours” 형형색색 글귀와 고양이가 그려진 나무 상자 속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고 있다. 응? ‘추첨을 통해 그림을 드린다’고??

작가는 그 자체로 보배로운 이야기를 한가득 쥔 존재이다. 그런데, 기왕이면 더욱 크고 선명하게 그들을 드러내 보일 방법은 없을까?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들도 마주치면 더 크게 진동하지 않을까? 작가들이 둘씩 짝을 지어 서로의 색다른 모습을 들추는 전시가 열려 절로 발길을 끈다.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10월 22일 막을 올린 개관 10주년 기획전 《깍지》.
 
작가는 각자 왼손 혹은 오른손이 되어, 깍지 끼듯 짝과 둘씩 마주 어우러진다. 깍지 끼는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팽팽하게 맞서다 때론 기대어 서고, 꼬치에 꿰어 도는가 하면, 거미줄로 두루 얽는다.  넌지시 이어지는 시각적 박자 속에 저마다 무언가 확장하고 뛰어넘는 ‘초월 얼개’를 심지처럼 품는다. 영 딴판이면서도 어딘가 자못 통하는 다섯 쌍의 작가들. 의기투합 깍지 끼고 쭉 뻗어 서로 밀어주는 왼손 오른손, OCI미술관을 빛낸 열 명의 ‘금손’들이 출동한다.
 
1층 로비에서 시작한 전시는 3층 전시장까지 총 다섯 쌍의 '깍지'가 꾸민다. 전시장 도입부에 들어서자마자 큼직한 꼬챙이에 그림들이 꿰어 빙글빙글 돌고 있다. 박경종은 창작 과정에 오가는, 그림과의 투닥임을 영상과 페인팅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같이 꿰여 도는 지희킴의 작품은 원통 모양이다. 다양한 형상과 원색이 여과 없이, 그리고 위화감 없이 흰 여백에 착륙하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두 작가가 합심해 꾸민 높이 6m의 대형 벽화는 본 전시의 백미이다. 벽화를 썰어 관객에게 나눠주는, 이미지 공유/소비 생태 실험으로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벽 뒤쪽 홀에는 배윤환의 바다가 넘실댄다. 372×240㎝의 시원한 크기에도 섬세한 화면 구성이 빛난다. 창작은 사실 ‘작품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짓’이 아닐는지, 거북이와 등대지기의 일침 속에 작가의 의구심과 다짐을 엿볼 수 있다. 맞은편에는 신민 작가가 폭 10m의 벽화 드로잉으로 응수한다. 단정한 옷차림과 올림머리, 마스크 너머로 내놓은 건 이글대는 두 눈뿐이지만 성난 목소리가 공간 가득 울리는 듯하다. 거친 스트로크로 부르짖듯 쏟아내는 우툴두툴한 생존 투쟁을 들어보자.
 
전시장 2층에는 농장과 정원이 열렸다. 창작 농장 주인 최수진은 숨을 캐고 색을 거둔다. 아이디어를 익히고 수확하는 창작 메커니즘을 생기 넘치는 화면으로 형상화했다. 김수연의 정원엔 화장을 지운 꽃이 폈다. 꽃을 꽃답게 하는 건 색깔일까 향기일까. 직접 땅을 일궈, 꿈꾸던 색과 향을 키우고 그려낸 모네. 모네의 정원 옆에, 무채색의 꽃으로 수놓은 수연의 정원을 꾸린다.

개념에도 초상이 있다. 홍승혜가 벽면에 떨군 픽셀은 둥글게 맞잡고 가지런히 늘어서며 사람과 사연을 닮는다. 점차 공간으로 돌출하여 그림자를 얻고, ‘만질 수 있는 관념’으로 자라난다. 비로소 픽셀은 현실 세상과 회로를 잇는다. 강서경은 '큼', '짧음', '우뚝', ‘대롱대롱’을 걸고 세운다. 격자로 공간을 오리고, 허공의 색깔로 구멍을 채운다. 평면의 질감과 색상은 어느새 입체의 그것으로 자란다. 회화는 몸무게를 얻고 기하학은 체온을 품는다.
 
나무 바닥이 도드라지는 전시장 3층 한복판에 책가도 장식장처럼 얼기설기 짠 방은 고작 두 평 남짓. 그러나 권인경이 걸어 둔 산자락과 화분의 뒤태, 그리고 동네 조각은 세월을 바르고 기억을 둘러 그 방을 끝없이 넓힌다. 라오미는 방문을 열고 바닷가로 나선다. 인천, 단둥, 압록, 두만, 요코하마에 이르기까지, 물과 뭍이 만나는 곳곳에 스민 이야기를 더듬어 그 시절의 눈, 코, 입, 귀를 소환하고, 풍경을 재구성한다.
 
《깍지》는 지난 10년간 OCI미술관과 인연이 있던 작가들 가운데, 남녀노소를 불문, 오로지 협업 전시를 위해 열 명의 작가를 골랐다. 작가들의 ego가 난무하는 미술계에서 서로 합심해 시너지를 부각하는 보기 드문 시도이다.
 
11월 11일(수) 19:00 / 12월 5일(토) 15:00 각각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깍지'들과 다과를 곁들여 정담을 나눈다.



깍지 하나 : 이미지 조합 공유 소비 실험 - 박경종 지희킴  (1F)



깍지 둘 : 이글이글 넘실넘실 소리 없이 부르짖기 - 배윤환 신민  (1F)



깍지 셋 : 창작 농장과 정원 - 김수연 최수진  (2F)



깍지 넷 : 기하학은 체온을, 회화는 몸무게를 품다 - 강서경 홍승혜  (2F)



깍지 다섯 : 방 너머 창 너머 풍경 너머 - 권인경 라오미  (3F)


<전시 서문>
작가들의 광채를 쬐고 즐기는 마음 일광욕, 어쩌면 그게 전시 아닐까 싶습니다. ‘색상 대비’라는 용어가 있지요. 빛깔 선명한 작가들이 서로 마주하면, 각자 따로 볼 때 미처 몰랐던 색다른 면모가 보다 또렷해지고 서로 한층 돋보일 것입니다. 본 전시에서 작가들은 각자 왼손 혹은 오른손이 되어 짝과 둘씩 마주 어우러집니다. 깍지 끼는 모양새도 제각각입니다. 팽팽하게 맞서다 때론 기대어 서고, 엇갈리며 덮고, 비좁은 틈으로 엿보듯 다가갑니다. 때론 과감히 섞고, 거미줄로 두루 얽고, 꼬치에 꿰어 돌고, 또 작품 속에 작품을 품습니다. 대상과 방식은 달라도 겉과 속 곳곳에 접점이 있습니다. 넌지시 이어지는 시각적 박자 속에, 저마다 무언가 확장하고 뛰어넘는 ‘초월 얼개’를 심지처럼 품습니다. 영 딴판이면서도 어딘가 자못 통하는 다섯 쌍의 작가들. 의기투합 깍지 끼고 쭉 뻗어 서로 밀어주는 양손을, OCI미술관을 빛낸 ‘금손’들을 다시 만납니다.
 
도입부를 여는 두 작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현란한 색상과 통통 튀는 형태, 신출귀몰한 전개가 떠오릅니다. "새하얀 얼굴에 반했지. 용기를 내어 보라색을 건넸어." 박경종 작가는 빈 캔버스와의 설레는 만남으로 작업과의 연애담을 시작합니다. 창작 과정에 오가는, 그림과의 생생한 투닥임을 움직대는 그림으로 들려줍니다. 또한 그렇게 장성한 그림이 장소와 세대, 플랫폼을 넘나들며 소비되는 이미지 생태에 주목합니다. 지희킴 작가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몸'의 경계, 그리고 그것이 낳은 기준에 도전합니다. 규범과 본보기의 틀을 넘어 몸은 자유롭게 흐릅니다. 형태는 말랑거리고 흥겹게 분절하며 색상은 맥동합니다. 서로의 작업을 큼직한 꼬치에 한데 꿰어 돌려가며 굽고, 높이 6m에 이르는 벽면을 주거니 받거니 합심해 채웁니다. 소문에 의하면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벽화를 썰어서 나눠주는, 이미지 공유/소비 생태 실험으로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고 합니다. 저도 한 점쯤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려우면 참지 말고 긁어야지요. 이들의 그림에는 ‘구시렁’이 들립니다. 배윤환 작가는 삶의 애매모호하고 떨떠름한, 때론 부조리한 낯을 모르쇠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 칼날을 스스로에게 겨눴습니다. 온갖 상념과 잡동사니가 뒤엉켜 바다를 오염합니다. 창작은 사실 ‘작품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짓’이 아닐는지, 바다거북과 등대지기의 일침 속에 작가의 의구심과 다짐을 함께 엿봅니다. ‘쩌렁쩌렁한 그림’ 본 적 있나요? 신민 작가의 그림은 들립니다. 서비스업 표준형 검정 머리망으로 꼼꼼히 마무리한 올림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마스크 너머로 이글거리는 열세 쌍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마주하면, 공간 가득 그들의 성난 목소리가 보입니다. 소시민 여성으로 거대 자본에 몸과 마음을 끼워 맞추며 버티는 우툴두툴 생존 투쟁을, 거친 스트로크로 전시장에 부르짖습니다.
 
전시장 2층에 들어서면 농장과 정원이 열립니다. 최수진 작가는 창작 농장 주인입니다. 숨을 캐고 색을 거둡니다. 거미가 먹이를 채듯, 그물로 생각을 낚습니다. 땀 냄새가 보이는 화면을 마주하면, 의지와 창작열 말고도 통제 바깥의 수많은 친구들이 그림에 힘을 보태는 걸 깨닫습니다. 김수연 작가는 사물의 색다른 면, 숨은 거리감을 들춥니다. 모네의 화가 인생을 줄곧 수놓은 ‘꽃’. 꽃을 꽃답게 하는 것은 색깔일까요 향기일까요. 색도 향도 벗고, 홀로 꽃이 핍니다. 빛바랜 초상처럼, ‘꽃’ 대신 이름으로 각자 기억될 수 있을까요. 직접 땅을 일궈, 꿈꾸던 색과 향을 키우고 그려낸 모네. 화장을 지운 꽃들은 이제, 모네의 정원 옆에 수연의 정원을 꾸립니다.
 
개념에도 초상이 있습니다. 홍승혜 작가가 벽면에 떨군 픽셀은 둥글게 맞잡고 가지런히 늘어서며 사람이나 사연을 닮습니다. 이윽고 벽을 비집고 공간으로 돌출하며 그림자를 얻고, ‘만질 수 있는 관념’으로 자랍니다. 비로소 ‘1픽셀’은 현실 세상과 회로를 잇습니다. 참, 예술 논리에도 생김새가 있습니다. 강서경 작가는 ‘큼’, ‘짧음’, ‘넓음’, ‘얇음’을 걸고 ‘우뚝’, ‘기우뚱’, ‘주르륵’, ‘대롱대롱’을 세웁니다. 격자로 공간을 오리고, 선이 선을 떠받치고, 허공의 색깔로 구멍을 채웁니다. 왕골을 휘감은 실낱에 캔버스의 까슬함이 나폴대고, 조각의 반듯한 피부에 물감의 고소함이 감돕니다. 회화는 몸무게를 얻고 기하학은 체온을 품습니다. 비로소 ‘두 작가가 세우고 걸어둔 건 물체만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통 크게 썰어 둔 전시장 여백이 볼수록 선명합니다.
 
나무 바닥이 도드라지는 전시장 3층 한복판, 책가도 장식장처럼 얼기설기 방을 짰습니다. 기껏해야 두 사람이나 들어앉을까 싶은 이 단칸방도 권인경 작가에겐 하등 비좁을 게 없습니다. 선반을 따라 산자락을 얹고 계단을 놓고, 동네 어귀를 겁니다. 세월을 바르고 기억을 두르며 거듭 키운 방은,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담을 만큼 넉넉합니다. 공간은 어느덧 ‘장소’로 철들고, ‘그냥 방’은 비로소 ‘각자의 방’이 됩니다. 그런 장소에는 근처만 가도 사연 냄새가 솔솔 납니다. 킁킁! 라오미 작가의 코는 이 냄새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방문을 열고 바다 내음을 따라, 인천을 지나 단둥, 압록, 두만, 요코하마로 나섭니다. 물과 뭍이 깍지 낀 곳들 마디마디 떠도는 풍경 조각을 줍습니다. 다시 빚어낸 세상의 외모는, 눈앞의 물리적 실선보다, 시대상과 사연과 그 시절의 눈, 코, 입, 귀가 모여 찍어내는 아련한 점선에 가깝습니다.
 
본 전시의 리듬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적당히 의기투합意氣投合’입니다. 내용, 형식, 기운 삼면으로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결실이 바로 《깍지》입니다. 작가는 짝의 아이디어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즉흥적으로, 또한 딱 적당한 만큼 반응했습니다. 각자의 색깔과 그 사이의 시너지가 ‘밀당’을 반복하며 팽팽할수록 보는 사람이 즐겁습니다. 유일한 제 당부는 ‘협의하되 합의하지 말라’였습니다. 반응이 꼭 친절하고 호의적일 필요도 없지요. 구르든 기든 자기 걸음걸이로 알아서 전진하는 게 작가입니다. 서로 갈고 부딪다 흠집처럼 새로이 돋은 연마 절삭면, 기대고 포개며 드리우는 뜻밖의 그림자를 이끌어 내려 합니다. 어째서 이들이 깍지인지, 한 손바닥일 때 보이지 않던 어떤 면모가 고개를 드는지 번갈아 살핍시다. 작가 각자에게 따라붙던 기존의 꼬리표며 수식어를 주저 없이 싹둑! 자르고, 저마다 새로 달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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