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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치유와 회복의 새 빛, 예술… 비서구의 토속·무속·모계사회를 담다
  • 작성일2021/04/05 10:01
  • 조회 312

두 차례 연기 끝 ‘광주비엔날레’ 개막

마트에서 흔히 보는 카트 위에 알록달록 화려한 상여가 놓였다. 그 앞뒤로 토속적이면서 기괴한 형상의 조형물이 길게 늘어섰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남은 이를 위로하는 장례 풍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김상돈 작가의 조각 설치작품 ‘행렬’이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빨강, 주황, 노랑 색깔의 실로 짠 대형 조형물이 걸렸다. 북유럽 소수민족 사미족 출신의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가 전통의상에 달린 장식을 형상화해 만든 수공예 작품 ‘함께 떠오르기’다.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는 사미족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두 차례나 행사를 연기한 끝에 지난 1일 개막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의 한 풍경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란 주제 아래 전통 무속 신앙인 샤머니즘과 생태주의, 모계문화 등을 다룬 작품들을 통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북유럽 사미족 출신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가 전통의상 장식을 본떠 만든 수공예 작품 ‘함께 떠오르기’는 사미족 여성들의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표현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 북유럽 사미족 출신 작가 오우티 피에스키가 전통의상 장식을 본떠 만든 수공예 작품 ‘함께 떠오르기’는 사미족 여성들의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표현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감염병으로 인한 전 지구적 혼란과 위기는 우리 삶의 형태와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이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와중에 자연환경은 급속도로 훼손됐고, 물질적 풍요로움은 공동체의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사람들을 내몰았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동 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는 서구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에서 벗어나 비서구 세계의 공동체적 삶과 집단 지성에서 지혜를 구하고자 했고, 이에 부합하는 40여개국 69명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모았다. 주 전시 공간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에선 다양한 나라 토속민들의 생활 방식과 제의적 예술을 포함해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각심, 경쟁과 배척 대신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내재한 모계사회를 형상화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민정기, 문경원, 이상호, 릴리안 린, 소니아 고메즈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들 사이에 각종 부적과 병풍, 제의 도구 등 현대미술 전시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무속 신앙 유물이 함께 진열된 모습이 이채롭다. 가회민화박물관과 샤머니즘박물관에서 특별히 대여한 소장품들이다. 첫 번째 전시실을 전체 전시의 구성과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구성해 무료로 개방한 점도 예년과 다른 점이다.
국립광주박물관 로비에 설치된 크리산네 스타타코스의 ‘세 개의 다키니 거울’. 꽃잎으로 장식한 만다라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 국립광주박물관 로비에 설치된 크리산네 스타타코스의 ‘세 개의 다키니 거울’. 꽃잎으로 장식한 만다라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국립광주박물관과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광주극장 등 비엔날레 전시관 밖에서도 주제전은 이어진다. 과거의 유물이 잠든 박물관에서 만나는 테오 에쉐투의 영상 ‘고스트 댄스’는 장소의 특수성으로 인해 삶과 죽음, 치유와 애도에 대한 메시지가 보다 명징하게 다가온다. 크리산네 스타타코스가 꽃으로 장식한 만다라 ‘세 개의 다키니 거울’도 생사의 덧없음을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선 주제전 외에 이불, 배영환, 김성환, 시오타 치하루, 마이크 넬슨 등이 참여한 광주비엔날레커미션(GB), 스위스 안무가의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파빌리온프로젝트, 5·18민주화운동 특별전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등이 장외 전시로 열린다. 이 가운데 광주 지역 작가 12명이 협업한 특별전은 5·18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이 치료받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깊다.
광주비엔날레 부대 전시로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특별전에 출품된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 중환자실로 가는 길목에 펼쳐진 치유의 식물 옥스아이데이지 꽃밭이 광주의 아픔을 조용히 위로하는 듯하다.

▲ 광주비엔날레 부대 전시로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특별전에 출품된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 중환자실로 가는 길목에 펼쳐진 치유의 식물 옥스아이데이지 꽃밭이 광주의 아픔을 조용히 위로하는 듯하다.

2007년 국군병원이 함평으로 이전한 뒤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2018년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 일시적으로 부활했으나 국립 트라우마센터 건립 계획에 따라 이번이 마지막 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 2층으로 올라가는 보행로에 데이지 꽃밭을 만들어 병원의 본질적 기능인 치유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문선희 작가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목소리’는 전시장을 떠나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5월 9일까지.

광주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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