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전시 다채로운 전시 작가 작품! 아트 플랫폼 서울갤러리

 

“고난의 시기… 예술은 희망의 나침반”
  • 작성일2020/03/19 09:31
  • 조회 1,095
화업 60년 회고전 ‘빛의 꿈’ 연 재불 화가 김인중 신부 인터뷰
김인중 신부는 “사제와 화가 중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데 중세 시대 예술은 수도원 수사들에게서 왔다”면서 “나만큼 중세의 문화를 잘 답습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김인중 신부는 “사제와 화가 중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데 중세 시대 예술은 수도원 수사들에게서 왔다”면서 “나만큼 중세의 문화를 잘 답습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이달 초 한국에 들어올 때 프랑스 지인들이 전부 만류하더군요. 오히려 더 용기를 냈습니다. 전시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더라도 이런 고난의 시기에 희망의 나침반을 들고 와야겠다 생각했지요.” 

짧은 머리카락 가득 하얗게 서리가 내린 팔순의 김인중 신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빛의 화가’라는 별명에 잘 어울리는 밝은 웃음이었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파리로 건너가 도미니크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50년 동안 프랑스에서 구도자와 예술가의 길을 병행해 온 ‘사제 화가’다.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한 화업 60년 회고전 ‘빛의 꿈’을 위해 방한했다.
김인중 신부의 그림은 유화임에도 수채화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 김인중 신부의 그림은 유화임에도 수채화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개막 전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 신부는 “코로나19도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바이러스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의 불행에 아랑곳없이 나의 행복만 탐하는 이기심과 질투심 등을 영혼을 좀먹는 악성 바이러스 사례로 꼽았다. “격리의 시간을 각자 성찰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신의 뜻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

김 신부는 화려한 색채로 빛의 본질에 천착하는 동시에 동양적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독창적인 추상회화로 서양인들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저명한 평론가들은 샤갈, 피카소, 로스코 같은 거장과 비교할 만큼 그의 예술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영국 미술사가인 웬디 베켓 수녀는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 주교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비구상 형태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폭넓은 울림을 준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 주교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비구상 형태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폭넓은 울림을 준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 주교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비구상 형태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폭넓은 울림을 준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 주교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비구상 형태가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폭넓은 울림을 준다.
김인중인스티튜트 제공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200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김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세계 38곳에 설치될 정도로 독보적이다. 성화가 아닌 비구상 형태로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영적인 깊은 울림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프랑스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샤르트르 대성당 등이 그의 작품을 택했다. 지난해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의 주교성당

에도 스테인드글라스 19점을 설치했다. 국내에선 대전 동구 자양동 성당(2009)과 용인 신봉동 성당(2019)에서 김 신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김 신부가 그림을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다. 동창인 이종상 화백과 미술반에서 그림을 배웠는데 “누가 봐도 내가 제일 못 그렸다”며 웃었다. 그는 “어릴 때는 전혀 미술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서예 실력이 뛰어났던 아버지와 색채 감각이 남달랐던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회고했다. 대학원 졸업 후 신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면서 사제에 대한 꿈을 품게 됐다. 그 꿈을 이루려 1969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고, 파리 도미니크수도회와 연이 닿아 1974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수도회에서 기도와 묵상, 그림을 그리는 수도 사제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회고전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회화 100점, 도자 15점, 스테인드글라스 5점 등 120여점이 전시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한 ‘시편’도 때맞춰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구약성서 시편 150구절마다 그의 작품을 한 점씩 실은 화집이다. 그는 “30년 전 파리에서 작은 전시회를 했을 때 유대인 예닐곱명이 와서 ‘당신 그림 앞에선 기도를 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다. 이 책이 종교 간 갈등을 허무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이제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