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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쓰레기 소각장에 앉힌 예술… ‘생장과 진화’의 공간 열렸다[건축 오디세이]
  • 작성일2023/01/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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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부천아트벙커B39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부천아트벙커B39 내부. 쓰레기가 모이던 벙커를 브리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상징적인 공간이다.   김용관 작가 제공

▲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부천아트벙커B39 내부. 쓰레기가 모이던 벙커를 브리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상징적인 공간이다.

김용관 작가 제공


쓸모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예술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 방식이 업사이클링이다. 업사이클링은 공간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에서 예술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의 경우다. 한국의 도시문화 현상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건축가 김광수(스튜디오케이웍스 대표·커튼홀 공동대표)가 리모델링의 설계를 맡은 아트벙커B39는 기존 소각장 시설의 원형을 적극 보존하며 공간에 남은 흔적과 경험을 콘텐츠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재생문화시설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리모델링은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환경 측면에서 유용하고, 바뀐 상황에 놓인 기존 건물과 대화하듯이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김 대표는 “부천아트벙커의 경우 리모델링의 주체가 돼 과거의 모습을 말끔히 지워 버리기보다는 최소한의 건축적 개입을 통해 남길 것은 남겨 사용자들이 그 공간에 축적된 기억들을 경험하고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총대지면적 1만 2663㎡, 연면적 8335㎡, 건축면적 3417㎡의 거대한 구조물은 경기 부천시에서 발생하는 하루 200t의 쓰레기를 태우던 삼정동 소각장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부천시 중동 신도시 건설 붐과 맞물려 소각장이 건설되던 때만 해도 시 외곽 지역이었지만 도심이 확장되면서 인근 주민들과의 갈등의 진원지가 됐다. 1997년 ‘다이옥신 파동’을 거치며 논란의 중심에 섰고 2010년 5월 가동을 멈췄다. 주민들은 소각장을 없애고 공원을 만들기 원했지만 철거 비용도 만만치 않던 터에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지원 도시재생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4년간 방치되던 폐소각장은 새로운 운명을 맞았다.

소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를 정화해 외부로 보내는 유인송풍실은 존치 공간에 남겨 놨다.   김용관 작가 제공

▲ 소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를 정화해 외부로 보내는 유인송풍실은 존치 공간에 남겨 놨다.

김용관 작가 제공


●주민과 갈등→도시재생 새 운명 맞아

김 대표는 “처음 현상설계의 현장설명회에 왔을 때 압도적인 공간과 복잡다단해 보이는 소각장 설비들의 스케일에서 오는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완전 기능적인 건물이 이렇게 감성적일 수가 없어요. 가동을 멈춘 거대한 기계-콘크리트 복합체가 마치 숨 쉬는 생명체와 같이 보이기도 했고, 죽었는데도 살아 있는 존재처럼 유령 같은 인상도 받았습니다. 현장설명회에 와 보고 너무 힘들어 안 하려고 했는데 공간 자체가 정말 멋있어서 건축가로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소각동과 지하 1층, 지상 2층의 관리동, 그 외 계측실 등 작은 부속 건물이 함께 있는 장소에 축적된 기억을 어떻게 제대로 남기느냐가 문제였다. 김 대표는 “문화시설이 쓰레기 소각장과 동거하는 느낌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설계하는 내내 ‘디 아더스’나 ‘식스센스’와 같이 섬뜩한 반전이 있는 영화에서 느껴지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문화시설 공간과 소각장의 존치된 공간의 관계가 서로 이질적인 두 공간의 동거라는 차원으로 존재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소각장 차량 동선의 반대쪽에 만들어 놓은 공간.  김용관 작가 제공

▲ 소각장 차량 동선의 반대쪽에 만들어 놓은 공간.

김용관 작가 제공


아트벙커B39는 기존 쓰레기 반입실부터 벙커, 소각로, 재벙커, 유인송풍실 및 굴뚝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재생 공간과 존치 공간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 건축가는 쓰레기의 반입과 저장, 소각, 처리 과정을 하나의 축으로 따라가는 동선을 기반으로 기존의 차량 동선들과 상반되는 동측에 이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동선을 계획하고 주 출입구를 만들었다. 열주 공간을 만들어 소각동과 관리동을 공간으로 묶었다. 방문자들은 쓰레기 소각 과정을 따라 공간 탐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공간과 과거의 공간이 공존하는 곳에서 두 개의 다른 세계를 넘나들며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길 기대했다”는 그는 “이용자들이 새로운 프로그램과 함께 이 건물에서 진행됐던 소각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소각 과정 자체가 선형적이어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정문에서 계측기를 통과한 트럭에 실려 온 쓰레기들이 반입되는 게 소각 과정의 첫 번째 단계였다. 쓰레기가 처음으로 모이는 반입실은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 강연을 위한 음향장비를 갖춘 멀티미디어홀(MMH)로 변했다. 리모델링된 단일 공간 중 가장 넓은 면적(가로 16m, 세로 16m, 높이 4.6m)을 차지하는 MMH는 멀티미디어 전시 및 공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입된 쓰레기는 4개의 반입구를 통해 옆 저장고로 보내지는데 4개 중 3개는 그대로 남겼다. 철문에는 고된 작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네 번째 반입구는 현재 MMH와 벙커에 새로 설치된 브리지를 연결하는 출입구로 사용된다. 이 철문을 나가면 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상징적인 공간인 벙커가 나온다. 쓰레기를 저장하던 벙커는 투박한 콘크리트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벙커브리지에서 봐도 압도적인데 철계단을 이용해 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가로 12.4m, 세로 21.4m에 높이 39m인 거대한 공간의 볼륨감에 숨이 멎을 정도다. 쓰레기를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마치 고딕성당의 내부와 같은 울림이 있고 그 자체로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벙커는 공간의 볼륨을 적극 활용한 창작 전시나 공연, 촬영 등을 위한 장소로 쓰인다. 방탄소년단(BTS)이 이곳에서 루이비통과 협업한 프로젝트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3단계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난 관리동.  임준영 작가 제공

▲ 3단계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난 관리동.

임준영 작가 제공


●BTS, 루이비통과 컬래버 영상 촬영

아치형으로 벽을 뚫고 만들어진 문을 통과하면 에어갤러리의 테라스다. 과거에 소각로가 위치하던 공간이다. 중정을 모티브로 해 벽면을 모두 철거하고 외부 채광과 맑은 하늘을 끌어들였다. 층층이 쌓아 올린 벽과 태울 쓰레기가 들어오던 구멍이 그대로 드러난 한쪽 벽은 거대한 고물 로봇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격자무늬 철골로 골격만 설치해 놓은 중정은 다양한 이벤트와 야외 전시 등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다.

김 대표는 “소각로를 중정처럼 만들면서 소각장이 인간을 위한 기능적 공간으로 변화했음이 직관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오픈된 중정으로 풍경 조망이 가능해 지역과 아트벙커를 시각적으로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소각로로 이용되던 공간의 벽을 뜯고 철골을 남긴 채 중정으로 삼은 에어갤러리.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와 전시가 열린다.   김용관 작가 제공

▲ 소각로로 이용되던 공간의 벽을 뜯고 철골을 남긴 채 중정으로 삼은 에어갤러리.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와 전시가 열린다.

김용관 작가 제공


●주민 특수활동공간 등 3단계 완료

이어지는 유인송풍실은 소각 및 정화 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배기가스를 굴뚝을 통해 외부로 보내기 위해 사용되던 곳이다. 내부 설비와 공간이 그대로 존치돼 있다. 유인송풍실을 포함해 소각동 3층 배기가스 처리장과 응축수 처리장이 있는 5층까지는 존치 구역이다. 소각 공정에 사용됐던 기계 설비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상태로 남아 디스토피아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들은 옥외 이벤트나 퍼포먼스 공간으로 활용된다. 재벙커는 소각로에서 태워진 쓰레기가 재가 돼 한곳으로 모이는 곳으로 위에는 재를 퍼 올릴 수 있도록 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관람자들은 상부의 크레인 조종실에서 재벙커를 내려다볼 수 있다.

아트벙커B39를 설계한 건축가 김광수. 함혜리 제공

▲ 아트벙커B39를 설계한 건축가 김광수.
함혜리 제공


소각장의 모든 설비와 공정 프로세스를 관측·제어하던 중앙제어실은 원형이 온전히 남아 있다. 초록색, 붉은색 버튼들과 선형적인 프로세스를 볼 수 있는 체계도 등이 그대로 있다. 반면 소각장 근로자들의 휴게실과 숙직실은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했다. 전기실의 경우 모든 기기를 철거하고 디지털아트를 위한 다크룸으로 만드는 4단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복도를 중심으로 기존 시설과 새로운 시설이 번갈아 나타난다. 남겨 둔 것과 새로 추가된 것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2단계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2018년 운영을 시작한 이후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제1회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쓴 아트벙커B39는 최근 3단계 공사를 마무리했다.

함혜리 건축칼럼니스트

▲ 함혜리 건축칼럼니스트


3단계 공사에서는 외부 공간의 조경을 다듬고 관리동을 말끔하게 리모델링했다. 2층을 털어 내고 1층만 남긴 채 대형 유리창으로 환하게 채광이 되는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라운지, 휴게실 등 공용 공간을 둘 예정이다. 관리동과 소각동은 원래 약 5m 폭의 외부 통로로 분리된 건물이었지만 두 건물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됐다. 지하 1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유주방 및 방송 스튜디오와 녹음실 등 특수활동 공간이 만들어진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공간을 딱딱하게 정의하기보다는 사용해 보면서 단계적인 ‘생장과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쩐지 유쾌한 반전이 있을 것 같은 아트벙커B39의 시즌2가 기다려진다.

함혜리 건축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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