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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눈으로 말해요 / 쥘 바스티앵 르파주_런던의 구두닦이 소년
  • 작성일2020/12/31 09:52
  • 조회 1,052
눈으로 말해요
쥘 바스티앵 르파주_런던의 구두닦이 소년


한날 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들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패션스타일부터 글씨나 그림에 고유의 개성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한 바. 화가들도 대표적인 개성을 하나씩 갖고 있다. 피카소의 분절된 구도, 마티스의 강렬한 색채 등이 그렇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화가 르파주는 ‘눈(眼)’을 떠올리게 하는 화가다.
 

<런던의 구두닦이 소년>, 르파주, 1882 /  <양치기 소녀>, 르파주, 1882 / <눈먼 거지>, 르파주
 

프랑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쥘 바스티앵 르파주는 농민들이나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으며 초상화나 풍경화에도 뛰어났다. 또한 그의 그림에는 생동감이 넘치는 다양한 색감이 등장하는데, 햇빛에 따라 변하는 색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외광방식’으로 채색했기 때문. 르파주 이후 많은 화가들이 그의 방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는 <목초밭> 등의 대표작으로 외광파의 대표 화가로도 언급되곤 한다.

필자는 르파주의 초상화들에 매료되었는데, 특히 <런던의 구두닦이 소년>은 그가 소년소녀들을 그린 초상화 중 가장 강렬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 가느다란 팔다리와 아직 앳되기만 한 얼굴 속에 이미 세상의 부조리를 다 아는 듯 한 심드렁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초리. 눈앞의 화가를 향한 성가심이 잔뜩 묻은 거만한 포즈까지. 그럼에도 얄밉기는커녕 고된 노동을 일삼으며 살아갔을 소년에 대한 애잔함이 더 큰 것은, 화가의 소년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그림에서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년 뒤에는 마차와 사람이 뒤섞인 정신없는 런던 시가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아수라장 같은 곳에서 소년을 잠시 빼내온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스케치하고 있을 때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를 모델로 한 그림이 몇백 년 후에도 남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줄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그의 따뜻한 시선이 완성시킨 사랑스러운 초상화들이 많다. 큰 눈과 금발 곱슬머리가 시선을 사로잡는 <양치기 소녀>나 한낮의 따사로움이 전해지는 <눈먼 거지>, 스냅사진을 찍은 듯 생동감이 느껴지는 <학교 가는 소녀> 등이 특히 필자의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많은 이들은 그를 두고 ‘밀레의 심성을 가진 인상주의 화가’로 칭했다. 르파주는 전원을 주제로 한 연작을 기획하다 병으로 채 마흔이 되기도 전에 요절하고 말았지만, 밀레처럼 가난한 이들을 향한 애정이 담긴, 특히 다양한 눈빛을 담아낸 르파주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재된 글은 백영주의 '세상을 읽어내는 화가들의 수다' 수록되었으며 저작권은 백영주에게 있고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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