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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년 전 ‘원조 한류화가’…이렇게 서양인 사로잡았네
  • 작성일2020/05/22 09:45
  • 조회 657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포청에서 적토 받고’라는 친절한(?) 제목이 적혀있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포청에서 적토 받고’라는 친절한(?) 제목이 적혀있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는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을 따를 이가 없다. 하지만 서양인을 사로잡은 풍속화가를 꼽자면 이들보다 한 세기 후예인 기산 김준근이 앞선다.

기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산의 초량과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화가다. 생업, 의식주, 놀이, 의례, 형벌까지 모든 분야의 풍속을 망라한 그의 그림은 조선에 드나들던 외교관과 선교사, 학자 등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기산이 남긴 그림 1500여점 가운데 1000여점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첫 번역 문학서 ‘텬로력뎡’(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을 뿐 생몰년을 비롯한 구체적 행적이나 초상화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베일 속 인물이기도 하다.

기산 풍속화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로 일상과 풍습을 스냅사진 찍듯 기록했다. 햇빛 가리개를 얹은 점포에서 상인과 손님이 흥정하고, 한쪽에선 우시장이 열리는 오일장 풍경은 활기가 넘친다. 주리 틀고 곤장 치는 형벌 그림에선 혹독함까지 전해진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시쟝’(시장)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1980년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시쟝’(시장)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1980년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그림 상단에 ‘시쟝’(시장), ‘시집가고’, ‘갈이쟝이 목혀파는 모양’(갈이장이 목혜파는 모양)’ 등 주제나 소재를 소개하는 간단한 글귀를 적었는데, 조선 풍속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수요에 맞춘 ‘수출화’의 목적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에 담긴 해학과 풍자를 기산 그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전시회를 가진 한국 최초의 국제화가이자 원조 한류화가인 기산 풍속화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20일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는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79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구입한 28점 등 총 150여점을 선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단오에 씨름하고’라는 친절한 제목을 달았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조선 풍속을 그려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들. 오른쪽 위에 ‘단오에 씨름하고’라는 친절한 제목을 달았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은 제물포 세창양행 설립자이자 외교관이던 에두아르트 마이어가 수집한 61점과 민족학자 단첼이 모은 18점으로 구성됐다. 마이어는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회를 열어 기산 풍속화를 소개한 뒤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 전부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26년 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반입에 차질이 우려됐지만 로텐바움박물관이 호송관 없이 그림만 항공 운송하도록 배려해 예정대로 전시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전시장에는 종경도, 거북점구 등 기산 풍속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민속품들과 사진 엽서, 영상 자료 200여점이 함께 배치돼 관람객이 조선 말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시는 오는 10월 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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