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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잡는 백정이라도… 인권의 무게는 같소이다
  • 작성일2023/06/07 10:27
  • 조회 112

진주박물관 ‘형평운동’ 전시회

100년 전 차별에 저항했던 운동
새달 16일까지 100여점 자료 전시

비백정 출신들과 ‘연대’ 집중 조명
시간 흐름 따라 ‘운동의 역사’ 소개


경남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해 1928년 형평사 제6회 정기대회 포스터를 만들던 시기에는 단위 조직체가 162개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 경남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해 1928년 형평사 제6회 정기대회 포스터를 만들던 시기에는 단위 조직체가 162개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쉽게 결승까지 올라가 마지막 판에서 한참 씨름이 벌어지고 있는데 구경꾼들 틈에서 백정은 소하구나 싸워라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버님은 들었던 상대를 내려놓으시면서 힘없이 쓰러지셨다.’

황순원(1915~2000)의 소설 ‘일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백정은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도 여전히 천한 사람들이어서 설움이 많았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을 쓰러뜨린 건 힘이 아니라 멸시하고 상처 주는 말 한마디였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우리 사회엔 지금도 누군가를 적대하고 경멸하는 말이 넘쳐난다. 최고 권력자는 물론이거니와 종교인들의 입에서도 혐오의 말은 끊이지 않는다. 그 옛날 백정을 향한 모독이, 그 차별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백정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립진주박물관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 특별전에서 백정을 차별하는 모습을 표현한 설치미술 작품. 진주 류재민 기자

▲ 국립진주박물관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 특별전에서 백정을 차별하는 모습을 표현한 설치미술 작품. 진주 류재민 기자


경남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오는 7월 16일까지 선보이는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시작한 형평운동을 100여점의 전시품으로 돌아보는 전시다. 작은 전시지만 사회의 가장 낮은 신분으로 사람 대접도 제대로 못 받던 이들의 절박한 마음이 100년의 세월을 건너 사무치게 다가온다.

형(衡)은 저울대를, 평(平)은 평평함을 의미한다. 조선형평운동 포스터 속 남성은 저울을 들고 있는데 누가 올라가든 인권의 무게가 기울어지지 않아야 하는 저울은 형평운동의 상징과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유물로 꼽히는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은 백정의 생활상을 생생히 전한다. 진주 류재민 기자

▲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유물로 꼽히는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은 백정의 생활상을 생생히 전한다. 진주 류재민 기자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입구에 놓인 과거 진주 백정들의 사진과 형평사 전국대회 개최 포스터를 지나면 1부에서 백정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본디 백정은 유목과 수렵 생활을 한 거란인이나 여진인을 뜻했는데 조선시대 들어 도살업을 주로 하는 신분을 가리키게 됐다. 백정들이 쓰던 물건과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유물로 꼽히는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은 백정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전한다.

2부에선 형평사 창립 이후 전개된 형평운동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비백정 출신으로 함께했던 이들의 연대도 살펴볼 수 있다. 이효종 학예연구사는 “일본에선 수평운동이 있었는데 일본과 달리 우리는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 비백정 출신들도 형평운동에 함께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3부에선 황순원의 ‘일월’, 박경리(1926~2008)의 ‘토지’ 같은 문학작품과 ‘조선형평운동사료집’ 등의 연구서가 전시됐다. 4부에서는 다양한 장르에서 형평운동을 알린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기계식 인형인 오토마타를 사용해 백정에 대한 차별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이 눈길을 끈다.

한때 전국에 형평사가 160개 이상 유지됐을 정도로 융성했던 형평운동은 1933년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을 겪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역사 속으로 힘없이 사라졌지만 “형평운동은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게 하는 훌륭한 사회적 유산”이라는 소개대로 이번 전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를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진주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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