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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畫家의 글씨, 서가書家의 그림』

The calligraphy of Painters, The painting of Calligrap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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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김종영미술관이 개관한 지 20년이 되었다. 2002년은 대한민국이 한일월드컵 공동개최국 일본을 제치고 사상 첫 월드컵 4강에 오른 뜻 깊은 해였다.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은 지난 세기 일본식민지에서 비롯된 일본 콤플렉스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역사적 전환점이 된 해에 한국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을 연구하고 기리고자 미술관을 개관했다. 김종영의 삶을 살펴보면 볼수록 기존의 20세기 한국 미술사 기술을 되새기게 된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단색화’가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소비되는 것을 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되묻게 된다. 지난 세기 한국 미술사를 어떤 관점에서 기술할 것인가로 귀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전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김광업(1906~1976)과 최규명(1919~1999) 두 분의 서예가와 걸레 스님으로 알려진 시인이자 서화가 중광(1934~2002), 그리고 이응노(1904~1989)와 황창배(1947~2001) 동양화가 두 분과 서양화가 곽인식(1919~1988), 김환기(1913~1974), 정규(1923~1971), 한묵(1914~2016) 네 분, 조각가 김종영(1915~1982), 비디오 작가 백남준(1932~2006) 해서 총 열 한 분의 작고 작가 작품을 전시한다. 연배로 보면 이응노와 김광업은 ‘경술국치’ 이전에 태어났고, 네 분의 서양화가와 김종영은 일제강점기 동경 유학을 했으며, 백남준과 중광은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설립한 미술대학에서 교육받은 일 세대 작가인 앵포르멜 세대와 동년배이며, 황창배는 해방둥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서화에서 미술로 전환되던 시기에 서예와 미술에 정진한 작가들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20세기 한국 미술사 기술은 일제강점기 교육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이 도입된 관계로 피식민지인으로서 일본화한 서양미술이 이식되었다는 관점에 이견이 없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는 내선일체를 앞세워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그 결과 전통과의 단절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식민 상황에서 한계는 있었겠으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기듯 식민지배 세력의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될수록 피식민지인의 민족주의도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미술계를 살펴보면 민족의식이 강화되는 시대였다고 조심스럽게 가정해 본다.

  이러한 가정하에 이번 전시는 다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기획하였다. 초대작가 작품을 통해 첫째, 지난 세기 한국미술계의 과업, 즉 전통 서화가 서양미술과 문화접변을 통해 서화미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고, 둘째 이를 토대로 21세기 한국미술이 ‘세계 속의 한국미술’로 나아가기 위해 참고할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다.
  결론은 서양의 추상미술을 서화 전통에서 사의(寫意), 즉 뜻을 그리던 전통을 토대로 대등한 입장에서 비교하고 분석하며 받아들였다. ‘어떻게’에 만 관심을 두고 서둘러 서구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따라가려는 세태와는 정반대로, ‘왜’와 ‘무엇을’ 질문하며 끊임없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며 자기화(自己化)하고자 했다. 이는 한국이라는 지역적인 특수성에서 인류 보편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이었고,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최우선 과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서화 전통은 여전히 재해석할 가치가 있는 전통이라는 결론이다.


□ 전시 구성

 
1. 김환기, 백남준, 정규 (미술가로 특별히 서예에 정진하지는 않은 작가)
2. 곽인식, 김종영, 한묵 (미술가로 서예에 정진한 작가)
3. 이응노, 황창배 (동양화가로 서예에 정진한 작가)
4. 김광업, 최규명 (서예가로 국전에 참여하지 않은 작가)
5. 중광 (화가도 서예가도 아니나 서화에 정진한 작가)

이번 전시에서 작가군을 나누는 기준은 ‘서예’ 이다. 더불어 이분들은 제도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작업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술가들은 서예를 통해 체득한 미감을 어떻게 ‘자기화’했는지 살펴보고, 서예가들은 어떻게 서예를 ‘현재화’하고자 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특히 이분들이 생전에 남긴 중요한 어록을 작품과 함께 전시하여, 이 작가분들이 어떤 자세로 서양미술을 수용했는지 이분들의 고뇌를 헤아려 보고자 했다.

3전시실에는 미술가로 특별히 서예에 정진하지는 않은 작가인 김환기, 백남준, 정규의 작품을 전시했다. 서예에 정진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미감과 작품관이 우리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전시실에는 서예를 공통분모로 해서 화가, 조각가, 서예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물성에 관심을 가지고 개념미술로 볼 수 있는 작업을 했던 곽인식, 말년에 우주관에 기반한 기하학적 추상에 전념한 한묵, 추사와 세잔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불각의 미를 추구한 김종영, 서예와 문인화 전통에 기반을 두고 추상화를 시도한 이응노, 서구 미술 사조를 가미해 동양화를 현재화하고자 노력했던 황창배의 작품과 함께 추사와 위창의 서예 전통을 이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의사 출신의 서예가 김광업, 서예의 회화성에 천착해 회화와 서예의 경계를 넘나든 최규명, 그리고 선화(禪畵) 전통을 통해 한국의 피카소라는 극찬을 받은 중광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다.
1전시실에서 들어서며 누가 서예가고 누가 화가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생전에 이분들은 전통 서예를 토대로 서양미술을 수용하고, 현재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3전시실의 작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20세기 한국 미술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1958년 앵포르멜의 출현을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 전시장 전경 및 작품

전시 전경



곽인식, 62-602, 40x81.5cm, 판넬에 유리, 1962, 갤러리 학고재 소장



김광업, 자강불식, 130x46cm (각), 종이에 먹, 1960년대, 개인소장


백남준, Key to the Highway(Rosetta Stone), 86x71cm, Silkscreen and etching on Rives BFK paper, ed. 64, 1995, 개인소장



김종영, 소림도(疏林圖), 87×63cm, 종이에 먹과 수채, 1958, 김종영미술관



김환기, 무제, 58x38cm, 신문지에 유채, 1967, 환기미술관 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응노, 수중유희, 136x69cm, 종이에 먹, 196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Ungno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최규명, 요산, 63x125cm, 종이에 먹, 색, 연도미상, 우석뮤지엄 소장


한묵, 비도, 55x69cm, 종이에 먹, 1980, 개인소장


중광, 달마(達磨) 살불살조(殺佛殺祖), 45.5x69.5cm, 종이에 먹, 1986, 개인소장


정규, 다도해, 45x30cm (각), 유화, 1960년대, 개인소장


황창배, "천지자만물지역여(天地者萬物之逆旅)

광음자백대지과객(光陰者百代之過客)", 130x97cm, 캔버스에 혼합재료, 1993, 황창배미술관 소장



황창배, 무제, 337x150cm, 한지에 혼합재료, 1998, 황창배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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