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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홀혜 恍兮惚兮

Sunset,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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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배] 책가도, 70⨉150cm(8), 종이에 채색 병풍, 19세기 중반


경남도립미술관(관장 김종원)은 한국서화미술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근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해나가자는 취지로, 오는 6월 25일부터 10월 10일까지 조선 서화미술의 신비로운 예술세계인 ‘민화’의 당대적 의미를 살펴보는 《황혜홀혜 恍兮惚兮》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150여 년 전, 이미 오늘날 현대미술의 조형 언어를 구사했던 ‘조선민화’와 회화, 영상, 조각, 설치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30여점의 민화작품, ‘일월오봉도’, ‘무이구곡도’, ‘관동팔경도, ’봉황도‘, ‘모란화조도‘, ’구운몽도‘, ’책거리‘, ’제주문자도‘ 등을 선보이며, 동시에 이승희, 전정우, 양아치, 최하늘, 류성실, 등 총 16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아울러 박생광, 장욱진, 김기창, 전혁림, 이우환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동시대 작가의 작품과 민화 작품의 교차, 병치, 혼용을 통해 민화의 사회적 관점과 미술 내적인 면모를 두루 살피고, 조선말기와 지금의 시대적 이슈를 이상향에 대한 주제의식으로 공명하는 이번 전시는 총 4개 부분(두 개의 태양, 산을 나는 바다, 수수복복, 문자와 책의 향과 기)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의 도입부, ‘두 개의 태양’에서는 전통과 현대성에 관한 문제를 통해 민화의 시대뿐 아니라 예술에서 끊임없이 추구해온 새로운 세계, 새로운 예술, 즉 “새로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본전시인 나머지 세 개의 공간에서는 민화의 조형성과 시대성, 익명성이 강조된 산수도, 문자도, 화조도, 책가도 등을 감상 할 수 있으며 아울러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민화의 전통이 어떻게 현대성을 구축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김종원 경남도립미술관장은 “황혜홀혜는 노자 도덕경 21장에 나오는 구절로 ‘홀하고 황한 가운데 형상이 있다’는 풀이에 비추어 ‘해가 뜨고 지는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실체가 있다’는 의미를 염두하여 감상한다면 더욱 풍요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혁필문자도, 78⨉36⨉(4)cm, 종이에 먹; 병풍, 19세기 중반



봉황도, 123x46(8), 123X356cm, 종이에 채색 병풍, 19세기 후반


 

Intro Section 두 개의 태양
 

<황혜홀혜>전의 ‘Intro Section 두 개의 태양’은 민화를 중심으로 우리의 서화미술을 돌아보기 위한 인트로 공간으로 전통과 현대성의 문제를 다루며 민화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병치 교차시켜 조선말기와 당대의 시대적 이슈를 이상향에 대한 주제 의식으로 공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옛것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것’의 의미와 선형적으로 세팅된 ‘시간성’의 해체를 통한 현대성(mordernity)의 의미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에서 19세기말 조선미술계의 시대적 요구는 봉건성 극복이나 근대성 획득 보다는 민족 자주성 확립이 최고의 미적 가치였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과 안으로 계급 모순이 거세지면서 이러한 미적 가치에 대한 시대 인식은 조선의 문인화를 중심으로 더욱 강화 되었다. 그러나 개항과 함께 조선 사회 계급 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통 사상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나 새로운 미술에 대한 견고한 해석 없이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급진적이고 단편적인 인식으로부터 서구 중심의 근대예술 체계를 받아들였다. 전통으로부터의 내적 동인 없이 외부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맞물려 ‘서화’에서 서구의 ‘미술’로 재편되면서 ‘서화’는 물론 500년 조선 서화 미술의 종결이자 새로운 물결이라 할 수 있는 ‘민화’ 역시 그 가치를 공고히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화(民畵)라는 명칭은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을 위한 그림이라는 의미로 일본의 미학자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무네요시의 주장에 따라 명명되면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 민화는 서민화를 포함, 궁중장식화, 화원그림까지 두루 포괄하는 개념을 담고 있지만 서민의 그림으로써 민화가 그 이름이 갖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매우 개성 있고 해학적이며 불가사의한 조형성이 배어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화의 조형 형식은 다시점을 통해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대상을 해체 전복 시키는 회화성과 수많은 도상으로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며 사회상을 담아내는 시대성까지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민화의 작가는 그림을 배운 화공이 아니었기에 사회적으로 규정된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작자의 자유의지가 그 익명성을 담보로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 되었다. 특히 민화에서 사실성의 여부나 표현의 정교함, 생략과 왜곡, 유치한 표현까지 허용되는 것은 문인화적 사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은 이 후 현대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민화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를 거치며 급변하는 시대에 의지할 곳 없는 민중이 세속적 욕망에 매달리며 인생의 궁극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소망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행복, 사랑, 부귀, 장수, 영생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의 욕망은 좋은 삶_이상향에 대한 염원으로 이어지며 민화의 새로운 세계로 확장되었다. 또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 출세와 부귀, 자손번성, 영웅담, 무병장수, 현실과 꿈 등 인간의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아우르고 있다. 이것은 비록 사대부의 고급문화를 모방하고자 했고, 그들의 사의적(寫意的)그림을 차용하였으나 문인화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개방성과 익명성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는다. 이는 시대를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구한 전통으로서 고대부터 이어져온 예술 세계를 통해 급변하는 현실세계를 내일의 꿈으로, 믿음으로, 희망으로 그려내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담긴 하나의 부적과 같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화를 통한 이러한 근원적 가치에 대한 환기는 개인, 사회, 세계의 조화보다는 단절을 야기하며 오히려 개인의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시키고 있는 오늘날, 오랫동안 인류가 잃어버린 오래된 질문을 상기시킨다.

전시는 19세기 조선미술과 동시대미술의 교차, 병치, 혼용을 통해 이 시대가 함의하고 있는 또는 요구하는 근원적인 가치에 대한 재고와 우리가 모던이라 부르던 시대에 그토록 찾아내고자 했던 ‘새로운 것’의 비전, 선형적인 ‘시간성’의 해체를 통한 현대성(mordernity)의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고자 한다. 민화와 민간의 미술을 현대미디어로 오랜 시간 연구해 온 김지평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원성원, 전혜림 작가의 작품과 민화를 병치하여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꿈과 현실, 가상과 실재 사이에서 사유하며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가시화 한다. 이어서 민화, 양아치, 최하늘, 류성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관계 속에서 민화의 시대 ‘이상향’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당대에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전시는 전통과 현대, 주류와 비주류, 고급과 저급, 가상과 실재, 꿈과 현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따위의 이분법으로 제시되지만 결국 이것이 서로 밀고 당기며 양가적인 개념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을 때 민화의 시대 혹은 지금 이 시대가 욕망하는 새로운 세계, 두 개의 태양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상향이라는 주제의식을 통해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미학적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전시구성>
- 차안, 此岸_전통과 현대성/김지평
- 경계, 境界_욕망의 산수/원성원, 전혜림
- 피안, 彼岸_시대의 낙원/양아치, 최하늘, 류성실
※ 차안 : 나고 죽는 생사의 고통이 있는 이 세상. 고통이 많은 인간이 사는 현실세계를 가리키는 말.
※ 피안 : 번뇌의 흐름을 넘어선 깨달음(涅槃)의 세계,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아니하는 현실 밖의 세계.

 


[김지평] 묘-향(妙-鄕), 150_300cm, 혼합매체, 2015

김지평 Kim Jipyeong

김지평은 민화, 무속화, 부적 등의 민간 미술, 주류의 미술사에서 벗어나 있는 전통의 도상과 개념을 소재로 한국화의 제도적, 물리적 조건을 재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작가가 전통의 차용을 넘어 이미 존재하는 전통의 현대성을 갱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관념화된 선형적인 시간성을 해체시키고 주류에서 배제된 요소의 결합을 통해 이미 고정된 의미와 가치를 확장시킨다. 나아가 이러한 방식은 전통 속에서 현대성을 반추하며 명분이 불명확하게 권위를 얻게 된 서구현대미술의 규범에 대한 질문이나 되묻기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전통산수에 있는 다시점을 족자의 물리적 형식으로 번역한 <삼원법>, 기운생동의 뜻을 수많은 영어 단어로 번역하여 그 개념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를 시도하는 <기운생동>, 그림을 보존하고 장식하는 액자로서의 병풍, 다시 말해 장치적 요소에 집중한 <모심> 등의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성에 관해 질문한다.

아울러 가족의 고향을 그린 산수화 <묘-향>는 직접 가 볼 수 없는 장소를 고지도나 구글어스, 지역의 일화 등을 수집하여 그린 그림으로 이상향을 실재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국 북송 때의 거비파 산수화부터 조선시대 민화, 근대 화가인 변관식의 그림까지 여러 시대의 그림을 참고한 <기암열전>은 기이한 모양의 돌을 그린 그림으로 거대한 산수, 자연과 우주를 상상하게 한다.

<모심>은 제사를 지낼 때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개념의 장치로 활용되었던 병풍에 그림 부분을 도려내고 테두리에 비단을 둘렀다. 병풍은 그림을 보존하고 장식하는 액자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서로 상이한 공간의 경계 역할을 해왔다. 그림을 떼어냄으로서 현실과 비현실 세계가 교류하는 일종의 접속지대를 시각화 하고자 한다.

<삼원법>은 동아시아 전통 화론에 있는 다시점(多視點) 원근법을 족자의 물리적 형식으로 번역한 작업이다. 동양화론의 ‘삼원법’을 참고해 족자 폭을 달리하고 그림이 들어갈 자리에는 ‘금기’ 의 의미로 붉은 색면을 채워 넣어 위반의 이미지를 암시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본 시점인 '고원법(高遠法)'은 족자의 아래 폭을 좁게, 위 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심원법(深遠法)'은 족자의 윗 폭을 좁게 했으며, 평시인 '평원법(平遠法)'은 아래와 위 폭을 똑같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동양 산수전통의 삼원법이 현대적인 확장으로서 기능하길 시점이 끝없이 개방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기운생동>은 중국의 화가 사혁(謝赫, 5C)이 동아시아 미술의 핵심으로 가르쳐온 여섯 가지 법칙 중 가장 핵심적인 항목인 ‘기운생동’은 우리가 들은 적은 있지만 알 듯 모를 듯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동양미술이론에 관한 영어 번역본을 찾아 ‘기운생동’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로 리스트를 만들고 이것을 성우에게 읽게 함으로써 기운생동의 의미를 외부적 조건 속에서 찾아들어가고 있다. 전통에 대한 가상의 믿음, 번역된 개념이 타 문화권에 유입되는 경위 등 문화번역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성원] IT 전문가의 물풀 네트워크, 178_297cm, C-프린트, 2017

원성원 Won Seoungwon

원성원은 우리 주변의 불연속적인 시 공간을 오랜 시간에 걸쳐 사진으로 촬영한다. 그렇게 얻어진 수 천 장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욕망이라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으로 포토 콜라주하고 꿈과 현실, 실제와 가상을 오고가며 새로운 사진 공간을 모색한다. 작가의 이러한 지난한 수행적 과정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빠른 속도로 지쳐가는 인간을 어루만지며 차원을 변환시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심리적으로 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 <언론인의 바다> 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낱낱의 풍경들을 채집하고 더 나아가 각각의 이미지들이 서로 모종의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형성시킨다. 원근법과 같은 전통적인 방식이 해체된 사진에는 사나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와 물풀이 무성한 대지가 있고, 그 사이로 ‘사람 같은 동물’이 현대사회의 주요 직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우리를 엿보고 있다. 작가는 출세에 대한 욕망을 타인의 직업으로부터 역설적이고 은유적으로 포착하며, 한 눈에 볼 수 없는 무한한 세계, 타인의 풍광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작가가 보여주는 직업의 풍경은 인간사회의 반영이며 인간의 욕망을 포함한 내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이는 사진적 사실주의와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하고, 이야기와 경험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전혜림] 이어진 산수L, 162.4_130.5cm, 캔버스에 유화, 2020

전혜림 Jun Hyerim

전혜림은 회화의 역사에서 흔히 반복하여 다루어 온 ‘낙원’ 이라는 담론을 통해 당대적 이슈를 도출하고 동시에 새로운 회화 매체 실험을 이어나간다. 회화를 회화 역사의 시간성으로부터 해체시키고 ‘낙원’ 이라는 주제 의식의 범주를 확장하여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방식은 전통과의 상관관계로부터 ‘새로움’의 가치를 발견해내려는 작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상향을 그린 동서양의 명화를 비롯해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낙원과 관련된 키치적 기호와 도상을 재료로 삼아 이상적 회화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답을 반복해 나간다. 회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권위를 획득했으며 그 시제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라는 작가의 질문은 이상향 이라는 주제와 매체실험 사이의 소재가 되어 끊임없이 결속하고 순환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캡쳐, 패치, 픽쳐>에서 보여 지는 웹 이미지나 짤 등은 전통 동양 회화의 약호들과 결합하며 회화적 표현과 형식의 확장을 돕는다. 다시 말해 작가는 오늘날의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에 과거와 호환되는 가치를 대입하여 산수풍경을 그리며 회화의 시제를 재설정하고 있다. 이는 이 시대 ‘낙원’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동시대의 회화적 이상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류성실] 대왕트래블 칭쳰 투어- 김첨지 리바이벌 2019, 25분, 단채널 비디오, 2019

류성실 Ryu Sungsil

류성실은 1인 미디어 시대의 콘텐츠 제작 방식을 통해 한국의 토착성이 신자유주의와 버무려지면서 벌어지는 시대상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작가는 영상에서 가상의 주체가 되어 전쟁, 종교, 효도, 성, 죽음과 같이 쉽게 증언할 수 없는 기표들을 서사 구조 구조를 통해 세밀하게 구축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왕트래블 칭쳰투어 - 김첨지 리바이벌>은 작가가 현지인 투어 가이드인 '나타샤'로 분해 가상의 나라 칭첸의 패키지 투어를 안내하는 영상 설치 작업이다. 영상에는 나비, 꽃, 폭포, 무지개가 어우러진 원색적인 자연과, 자수정 동굴, 수중 별장, 황금궁전과 같은 상투적인 관광 장소를 소개하는 현란한 문구와 어설프게 짜깁기 된 미신과 신화로 가득 채워진다. 작가는 영상에서 효도 관광 상품을 소개하고, 그 터무니없고 조잡한 황홀경의 나라로 시골 영감들을 이끄는 서사 구조를 만들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은폐된 욕망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키치' 한 감각으로 이상향에 대한 당대의 주제의식을 응축해낸다.

 


[최하늘] 일필휘지 조각_큰 풍경, 2015, 가변설치, 혼합매체

최하늘 Choi Haneyl

최하늘은 미술사와 현대미술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전통적 조각의 위상에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미술사와 주변의 사건을 결합하는 방식 안에서 일관되게 조각의 질문으로 회귀하여 전형적인 조각의 형식을 재 창안 하고자 한다. 미술의 역사를 비롯하여 사회 문화적으로 규정된 주체와 객체의 관계성에 의심을 품는 작가의 태도는 전체와 부분의 경계를 허물고 선형적인 시간성을 해체하며 동시대적 인식 재편에 있어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일필휘지 조각_계획 풍경: 도시>, <일필휘지 조각_비계획 풍경: 시골> 은 두 개의 마주한 조각 덩어리로 이루어진다. 거대한 벽에는 작가의 컴퓨터 드로잉에 의해 정확하게 잘린 조각들이 재단되어 풍경화처럼 도열하고,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벽에는 도시 풍경을 조각하고 남은 재료들로 투박하지만 섬세한 풍경을 즉흥적으로 연출한다. 기념비적 도시 풍경과 그 부산물로 구성된 시골 풍경의 상투적인 이항 대립 속에서 자본주의의 본질과 현상을 전유하는 조각들은 조선의 계급사회 신분질서 안에서 문인화보다 비교적 대접받지 못했던 민화의 위상을 당대적으로 재고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 2014, C-프린트, 디아섹, 150_100cm

양아치 Yangachi

양아치는 ‘기술문화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일관된 질문으로 주제 의식을 구축해왔다.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에 주목해온 그는 <양아치조합>, <전자정부>를 통해 온라인 욕망과 감시시스템의 이면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이 후 가상의 영토<미들코리아>를 설계하며 사진과 오브제 작업으로 매체를 확장시켜 왔다. 작가는 다양한 인터랙션과 유동적인 플랫폼을 제공하고 사람들을 매개하는 매개자로서 미디어의 외부 진동까지 포착하며 기술문화가 만들고 있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 된 <뼈와 살이 타는 밤>연작은 가상의 공간을 다룬 문학 ‘구운몽’ 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작가가 오밤중에 오르내린 인왕산에서 경험한 초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전자와 전기만이 미디어가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의 미디어적 개념을 제시한다. 작가는 우리 개인이 갈망하는 안식처와 같은 이상향은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바다 소금 극장>, <갤럭시, 사랑>, <신용> 등의 작품을 통해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며 소설 구운몽과 우리 현실의 유사한 지점을 강조한다.

늑대 인간. 어두운 밤. 계섬월이 얼른 따라나와 다리 남쪽 앵두꽃이 무성한 집이 자기 집이라고 일러준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바라본다. 검은 해골 바위. 어제의 비둘기가 바라본다. 검은 숲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온다. 검은 까마귀는 붉은 비둘기를 바라본다. 이미 죽어 있어야 할 것이 살아있고, 이미 살아있어야 할 것이 죽어있는 검은 동굴. 세 가지 팔을 가진 사내. 검은 바위를 가르면, 황금이 드러난다. 그렇게, 앵두 꽃이 무성한 강물이 있다.

그르릉. After a while, it reveals. (크르릉). 작은 동굴을 벗어나니, 큰 동굴이 있다. Sproing, 뿅, Wobble, 뒤뚱, Shlurp, 쓰읍, Slither, 스르륵.

금색 할머니 바위. 상서로운 기가 이런 구멍에서 나와 석지와 옥고를 자라게 하는데, 이것들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신령스러운 용과 거북이도 이런 구멍 속에서 출몰했다. 신선이 주는 배와 대추를 먹으면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상의 광야를 걸어가다가, 나는 우연히 동굴이 있는 곳을 만났다. 나는 거기 누워 잠을 잤는데, 자면서 한 꿈을 꾸었다. 나는 황금산(黃金山)에서 장희빈 기도터 할머니, 석굴암 산신 할아버지, 치마바위 미륵존불, 여인바위 대구 무당, 모자바위 무당과 박수, 범바위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앵두꽃이 무성한 집이 있다.

양소유는 숲속을 걷는다. 어두운 밤이다. 성진은 길을 밝히며 걸어간다. 어두운 숲에서 여인 바위가 나타나서 말을 건넨다. 계섬월이 얼른 따라 나와 다리 남쪽 앵두꽃이 무성한 집이 자기 집이라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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