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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준 개인전 : 울림과 鬱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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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오영준

  • 장소

    토포하우스

  • 주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

  • 기간

    2021-09-29 ~ 2021-10-11

  • 시간

    10:00 ~ 19:00

  • 연락처

    010-9949-1072

  • 홈페이지

    http://www.topohaus.com

  • 초대일시

  • 관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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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준 개인전 《울림과 鬱林》

기억의 미궁으로부터의 연금술 고대의 연금술사를 떠올려보자. 연금술(鍊金術)은 근대 과학 이전의 철학적이고 영적인 시도로서, 화학, 금속학, 물리학, 약학, 점성술, 기호학 등을 거대한 힘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려는 운동이었다. 금속을 제련하여 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알려져 있으며 물질과 물질의 합으로 전혀 다른 제3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였다. 그들은 다른 의미로 이상주의자, 혹은 끝없는 제련을 통해 불가(不可)의 가능성에 도전한 수행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회화에 대한 오래된 일화가 하나 있다. B.C 5세기경 아테네에서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오시스(Parrhasius)의 대결이 있었다. 파라오시스는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으려 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그를 화실로 데려간다. 제욱시스는 커튼을 걷어보라 하지만 사실 커튼이 그림이었다. 그는 새의 눈을 속였으나 파라오시스는 새의 눈을 속인 화가의 눈을 속였으므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이들이 행한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은 회화에서 ‘눈속임’으로 ‘환영’을 만들어내는 시선을 드러낸다.

 오영준의 회화도 자연으로부터의 풍경을 옮긴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회화는 트롱프뢰유와는 거리를 둔다. 그는 자연으로부터의 모방이 아닌 기억으로부터의 추출을 시도한다. 작가는 어떠한 장면을 포착한 뒤, 그 심상(心象)은 엉키고 고이며 하나의 울림이 된다고 말한다. 이를 남기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는 캔버스 앞으로 간다. <울림>(2020)에서 캔버스는 삼면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약 가로 5m의 폭에 성인 평균 신장을 훌쩍 넘는 2m의 높이에 달하는 대형회화는 실제 풍경의 크기로 비견되어 보는 이가 걸어 다니며 몰입하게 한다. 각 면은 수많은 스트로크(stroke)의 퇴적이 변주되어 있는데 이는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붓 대신 직접 제작한 전선 다발이나 대나무 잔가지들을 반복적으로 눌러 찍거나 내리그어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 이는 신체의 운동성을 오롯이 담아내고, 그렇게 완성된 캔버스는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움직임의 진동을 옮기는 것에 초점을 두면서 수많은 스트로크는 캔버스에 응결된다.

 작가는 스케치를 하지 않고 아크릴에 건축재료의 일종인 퍼티(putty)와 접착제를 더해 섬세하고 촘촘한 마띠에르(matière)를 쌓아 올린다. 이를 통해 생성된 물감층은 그 안에 내재한 시간성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울림>과 같이 축적되는 스트로크를 통해 시간성을 쌓아나가는 한편, 순간의 터치로 몰입을 압축하기도 한다. 가령 <아련함>(2021)의 경우 아크릴에 퍼티를 더했기에 그 질감은 가볍지 않지만, 물감층은 두껍거나 무겁지 않다. 이는 작가가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련함>은 지지대에 짜인 캔버스가 아닌 생천에 질료의 움직임이 집약되어 있는데 이는 ‘우연’과 ‘순간’이 응축된 것이다. <타오름 #1>(2020), <타오름 #3>(2020)과 <무제 #1>(2019)도 유사한 스트로크로 보일 수 있으나 각기 다른 시간, 온도, 습도, 질료, 몸의 각도 등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유일한 순간에 맺혀있어 강렬한 힘을 머금고 있다.

그의 캔버스는 무엇을 그리는가가 아닌 질료가 몸과 만나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파동이다. 작가는 대상에게서 받은 감동을 캔버스로 옮겨낸다고 말하며 그 울림은 작가의 몸을 프리즘으로 삼아 변화하고 증폭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먹먹함>(2020)은 이러한 울림의 증폭을 잘 보여준다. 자연으로부터 온 섬세하고 촘촘하지만, 우연적인 마띠에르는 새벽의 윤슬처럼 반짝이며 자리한다. 기억은 지각체계를 거쳐 부호화된 다음, 망각되고 저장되기를 반복하며 재가공되어 남겨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며 편집·가공된 기억은 처음 망막에 맺힌 상(象)과는 다르며 재맥락화된 제3의 무엇이다. 망각의 위기를 딛고 여러 단계를 거쳐 남은 기억, 그리고 이를 기록하는 행위는 그리움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캔버스들은 어쩌면 애도의 발화일지 모른다.
 
그림은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대상을 잡을 수 없을 때, 혹은 잃을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기록하는 행위를 한다. 《울림과 鬱林》에서 오영준은 <울림>을 비롯하여 기억으로부터 추출한 약 15점의 회화를 펼쳐놓는다. 그의 캔버스에는 지시하는 대상이 부재하며 이러한 부재는 울림이 채운다. 보는 이는 그가 펼쳐놓은 기억의 풍경을 걸어 다니며 각자의 울림으로 이와 공명한다. 그의 제련이 만들어낸 그림은 마치 붉은 실이 되어 진동하며 퍼져 나간다. 이를 받아 어디로 갈지, 무엇을 발견하고, 다시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그림 앞에 선 당신의 몫이다. 
 

글. 유지현 (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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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오영준, 토포하우스
❙설치 : 권경진, 임재형, 이재욱, 주형준
❙편집디자인 : 남윤아, 손지훈

❙글 : 유지현

*작가홈페이지 : www.ohyoungjun.com/
*토포하우스인스타: www.instagram.com/topohaus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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