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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1950-2019

THE SQUARE : Art and Society 1900~2019 PART 2. 1950~2019

  •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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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미술 100년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10월 20일 개관 이래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으로서 한국미술의 연구․수집․전시 및 해외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개관 50년을 맞아 지난 50년 역사를 돌아보고 한국미술과 미술관이 나아갈 미래를 국민과 함께 그려본다는 취지 아래 20세기 여명부터 현재까지 격동의 한국사와 미술사를 살펴보는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선보인다.


《광장》2부 (과천관 2019.10.17~2020.3.29)는 1950년부터 현재까지 예술이 삶과 함께하는 의미를 모색하는 전시다.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한국사회와 광장을 통해 되돌아본다. 전시장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1)에서 빌려 온 “검은, 해”, “한길”, “회색 동굴”, “시린 불꽃”, “푸른 사막”, “가뭄 빛 바다”, “하얀 새”등 총 7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각 시대별 주요 작품들과 디자인, 공예 및 생활 오브제들이 함께 선보이며 역사와 이념, 시대를 넘어 개인과 공동체를 포괄하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특히 문학, 음악, 연극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협업한 자료 발굴을 통해 한국미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변월룡,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박서보, 신학철, 서도호, 이불,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작가 200여 명의 작품 300여 점과 자료 200여 점을 선보인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와 작품에 영감을 준 달항아리와 청자매병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동백림사건으로 수감된 윤이상, 이응노가 각각 옥중에서 작곡한 <이마주(image)>(1968) 육필 악보와 그림 <구성>(1968)이 함께 전시된다. 또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오윤의 걸개그림 3점이 최초 공개된다. 1980년대 광장의 거리를 재현한 중앙홀에는 최병수 외 학생·시민·화가 35인이 그린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1989),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1987) 등을 선보여 당시 시위가 진행되었던 공간을 작품으로 재해석하여 구성했다.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직조생활의 <노란 빛>과 11월 2일(토) 열리는 파트타임스위트의 <13평 클럽의 행진댄스> 퍼포먼스는 역동적인 오늘날의 광장을 보여준다.



□ 과천관《광장》2부. 1950-2019 주요 출품작
 
검은, 해(한국전쟁과 1950년대/ 제1전시실)


전선택, <환향>, 1981, 캔버스에 유채, 136×23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선택(1922- )<환향(還鄕)>(1981)은 야트막한 언덕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인물들이 수평적 구도 안에 배치된 작품이다. 인물들의 형태는 원통형으로 단순화되었으며 얼굴의 표정도 생략되어 표현되었다. 안고 있는 중앙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위의 인물들이 모두 극적인 상봉의 동작을 취하고 있어 연극적인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민족 특유의 화해와 사랑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김성환, <6.25 스케치-19509월 개성역을 폭격하는 제트기>, 1950, 종이에 연필채색, 18.2×12.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성환(1932-2019)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한 것으로 유명하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고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스케치북을 가지고 전쟁 현장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과 실상을 그렸다. <6.25 스케치>는 총 105점의 전쟁 스케치로 제작 시기에 따라 분류하면 전쟁 직후에서 휴전까지 총 3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피난민, 병사, 폐허, 주검, 전투 장면 등 전쟁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크로키, 스케치, 동양화, 만화풍의 다양한 기법들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전쟁의 경과를 낱낱이 묘사한 보기 드문 작품으로서 기록성, 사실성이 매우 강하다.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1960, 캔버스에 유채, 146 × 9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수근(1914-1965)은 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대상으로 그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노동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시장과 길 위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그는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무시하고 평면적인 조형 형식으로 화면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화강암 같은 질감을 만들어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박수근이 제13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4)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의 위와 아래를 나누어 구성하여 아래쪽에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인과 아이를, 위쪽에는 길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들을 그렸다. 이러한 모습은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가난을 그대로 보여 준다. 수직적 구성은 조형미를 돋보이게 하며,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윤곽선이 거의 보이지 않아 작가 특유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이중섭, <부부>, 1953, 종이에 유채, 40×2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중섭(1916-1956)은 소, 아이들 등을 주요 소재로 고분 벽화와 민화 등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에 영감을 받아 표현주의적인 감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가족과 헤어진 후 부산에서 피란시절을 보낼 때는 삭막한 풍경화와 전쟁의 은유들이 그려졌다. <부부>는 푸른 날개의 수탉과 붉은 날개를 가진 암탉이 화면 위쪽과 아래쪽에서 입맞춤을 시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두 마리 닭은 서로 닿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수직적으로 묘사된 이들의 모습은 배경에 가로로 그어진 선과 대조되어 더욱 힘겨워 보인다. 작가는 종이 위에 유채 물감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수평으로 굵게 물감을 긁어낸 뒤, 그 위에 거친 붓으로 덧칠하여 이 작품을 제작했다. 거친 붓놀림과 강렬한 색감은 작가의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 준다.
 

한길(1960년대/ 제1전시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면에 유채, 205×153cm, 개인 소장


김환기(1913-1974)는 유영국, 정규 등과 함께 신사실파의 일원으로 한국 모던아트를 이끈 화가이다. 1970년 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대표적인 그의 추상회화 작품이다. 1950년대 반추상에서 1970년대 추상 회화로 전개되는 데 있어 그가 사랑한 한국의 옛 도자기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그가 소장했던 <김환기의 달항아리>(18c )는 현존하는 10여점의 조선 백자 달항아리 중 하나이다. <김환기의 청자매병>(12c )은 그의 회화에서 달항아리와 함께 등장하여 한국의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소재였다.



정창섭, <No.85088>, 1985, 캔버스에 닥지, 140×24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창섭(1927-2011)은 서구의 조형논리인 앵포르멜(Informel)을 동양적 미의식으로 수용,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이러한 평가는 그가 1980년대 한지 및 그 원료인 닥을 사용하여 회화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독특한 조형세계를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종이 작업, 특히 한지에 몰두하게 된 것은 이 재료가 한국인인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이라는 각성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닫이문의 창살 사이로 창호지를 거쳐 비치는 햇살, 꽃잎을 사이에 바른 문창호지, 옻칠한 상 위의 하얀 밥과 파르스름하게 구워진 김의 색깔 등 이미지에 대한 추억이 무색의 한지와 그 원료인 닥의 세계로 자신을 이끌어간 것 같다"고 회고한 바 있다.


회색동굴(1970년대/ 제1전시실)


이응노, <군상>, 1986, 종이에 수묵, 211×27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응노(1904-1989)1967년 동백림(東伯林)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 동안(1967-1969) 옥살이를 하였다. 수감 중에도 간장, 밥알, 화장지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료로 사용하여 많은 작품을 제작했으며, 1969년에 석방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1970년대에는 문자추상을, 1980년대에는 인물화 연작인 <군상(群像)>을 그렸다. <군상><군상> 연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이응노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대단위의 군상이 200호가 넘는 대형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이응노는 1980년대 초반에는 소수의 형상이 춤을 추는 것 같은 이미지를 그리다가 중반 이후부터 대형 화면에 군상이 등장하는 형태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대단위의 군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의 특징을 대표한다. 각기 다른 동작의 인간 형상이 다양한 형태로 군집하며 형성된 화면은 역동적인 운동감을 나타낸다.


서세옥, <0번지의 황혼>, 1955, 한지에 수묵담채, 99×94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세옥(1929- )1960년에 결성된 묵림회(墨林會)를 주도했으며, 추상표현주의가 화단을 휩쓸던 1960년대 이후 수묵을 이용한 추상화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기부터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하여 추상성과 단순성을 토대로 현대적 동양화를 개척했다. <0번지의 황혼>(1955)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지니면서도 이미 현실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자기만의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함축적이고 암시적으로 대상을 표현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도로 함축된 형상과 묵법을 통해 드러나는 고담한 기운의 직관적인 세계는 이후 1960년대 들어서 비구상적인 화면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린 불꽃(1980년대/ 제2전시실)


오윤, <칼노래>, 1980년대, 텐트천 위에 채색, 204.5×200.5cm, 가나아트문화재단 소장
 
오윤(1946-1986)은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이를 민족 형식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민중미술 작가이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현실 속에서 고통 받으며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는 <칼노래>(1980년대)는 이애주의 춤 패 연습장에서 <도라지꽃> 등의 공연에서 사용할 걸개그림으로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칼노래, 칼춤>(1994), <마당극 밥>(1997) 공연 등에 실제로 무대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최병수,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 부직포에 수성페인트, 아크릴릭, 걸개형식, 900×65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현장예술가인 최병수(1960-)의 직업은 목수였으나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사망소식을 접한 후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그림을 그려 민주항쟁의 화가가 되었다. <노동해방도>19895월 메이데이(노동절) 100주년 전야제에 연세대 학생회관 전면에 걸린 걸개그림이다. 노동자들이 밀려 나오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대형 작품은 연세대 캠퍼스 내 야외공간에서 5일 동안 만화사랑동호회인과 작가 등 36명이 참여하여 완성되었다.



임옥상, <토끼와 늑대>, 1985, 종이부조에 수묵채색, 85.5×10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임옥상(1950- )은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로 리얼리즘과 회화의 깊이를 더해 온 작가이다. 분단의 문제를 주제로 한 <하나됨을 위하여>(1989)에서는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문익환 목사를 종이 부조로 표현함으로써 화면의 입체감을 높이고, 대립과 갈등의 벽을 뛰어 넘어 통일로 나아가려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였다. 이 작품 이후 종이 부조 작업에 더욱 매진해 왔던 그는 점차 환조로까지 작업의 범위를 확산시켰다.
<토끼와 늑대>(1985)는 한지 부조라는 독특한 매체로 우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분단과 미국 문화와 군사력의 개입에 대한 비판 의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신학철, <묵시 802>, 1980, 캔버스에 꼴라쥬, 60.6×80.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학철(1943-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해온 작가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통하여 다양한 실험미술을 시도했고, 1970년대에는 사진 몽타주나 콜라주를 사용하여 일상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산업사회와 대량소비사회가 가져오는 물신성을 형상화했다. <묵시 802>(1980)는 작가가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한 콜라주작업 가운데 한 점이다. 구두 모양의 얼굴을 한 샐러리맨들이 모두 일제히 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을 표현한 이 작품은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과 억압된 표현의 자유를 초현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푸른 사막(1990년대/ 제2전시실)



이만익, <강상제>, 1989, 종이에 판화, 실크스크린, 45×65.4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만익(1938-2012)은 우리 민족의 삶에 깃든 기쁨과 슬픔의 정서를 문학성 짙은 설화 세계를 표현했다. 작가는 제24회 서울 올림픽대회(1988)의 개폐회식 미술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적인 정서와 아름다움을 전세계인들 앞에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올림픽 개폐회식의 테마를 소재로 목판화를 제작하여 전광판에 주제별로 작품을 올렸다. <강상제>(1989)는 올림픽 개회식의 첫 번째 행사로 세계의 모든 기운이 잠실로 모여드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품의 상단에는 5대륙을 상징하는 오륜을 배치하였으며 하단부에는 생동감 있게 물결치는 한강을 한국적인 전통 문양을 사용하여 간략하면서도 굵고 거친 선들로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윰, <하이웨이>, 1997,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8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이웨이>1997년 작업이다. IMF 체제가 시작되기 직전인데, 이윰(1971- )은 당시 극단으로 달려가는 한국 사회의 과잉 속도를 느림과 빠름을 대표하는 난지도와 자유도를 배경으로 비둘기면도크림을 의인화하여 표현하였다. 과속 차량에 의해 도로에서 치여 죽은 비둘기와 1990년대 소비 대중 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무조건 버려지는 형태를 면도크림통으로 나타내었다.
 


홍경택, <휑케스트라>, 2001-2005,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130×163x(1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홍경택(1968- )<훵케스트라>는 작가가 대중문화, 특히 음악에서 받은 감흥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펑케스트라(funkchestra)는 펑크(Funk) 혹은 펑키(Funky)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합성어이다. 선율의 변주가 거의 없이 반복되는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펑크 음악은 흥을 돋우는 것이 목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흥에서 오는 에너지의 분출,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체험을 이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상하좌우의 대칭구도 속에 원색의 형광도료로 완벽히 마무리한 방울, 직선, 사선의 다양한 패턴들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데 펑크 음악의 환각성을 연상시키는 화면의 현란한 패턴들은 MTV, 클럽, 전광판의 이미지들로 표상되는 현대도시의 풍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팝의 아이콘과 종교의 아이콘이 동등하게 나란히 도열해 있는 가운데 가볍고 현란한 도시의 펑크 패턴들은 멋진 관현악을 이루어낸다.

 
가뭄 빛 바다(2000년대/ 제2전시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2006-2013, 비누, 가변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미경(1967- )은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대리석, 도자기 등 고전적 유물을 비누라는 완전히 이질적인 재료로 옮겨내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여가고 있다. 작가는 초기에 주로 서양의 고전적 인물상들을 주요 제재로 채택하여 비누로 옮겨내는 작업에 집중하였으나 이후 동양의 불상과 도자기 등의 유물들을 비누로 옮겨내는 작업을 해왔다.
<트랜스레이션 시리즈>(2006-2013)는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을 원래 모습과 거의 흡사하게 비누로 옮겨낸 작품으로 총 16점의 도자기 모양의 비누조각들과 목상자로 구성되어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소재로 삼고 있는 도자기가 실제 중국인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기보다는 서구인들의 취향에 영합하여 수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풍을 띠도록 의도된 도자기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동과 운송의 과정을 연상케 하는 목상자들과 더불어 문화교류와 이질적인 문화들 사이의 충돌을 다루는 작품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킨다.
 
 
하얀 새(제1원형전시실)
 
 
장민승,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 들판>, 2014, 단채널 비디오, 수용지에 실크스크린 6, 조약돌 6, 25, 실크스크린 29x42x8x(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세월호 사건을 겪고 큰 상실감을 느낀 장민승(1979- )은 사람들을 위로할 음악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가가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미흡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음악을 만들던 중 우연히 수화로 합창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6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하면서 장민승은 침묵은 소리가 나지 않지만 오히려 큰 메시지와 음악적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작가가 하이쿠(俳句)를 접하면서 하이쿠 특유의 절제된 표현이 수화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이쿠 6편을 국문으로 번역한 후 수화로 다시 재해석하여 표현한 영상작업이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이며, 하이쿠를 번역하여 종이에 쓴 것이 <보이스리스-마른 들판>이다. 이 두 작품이 합쳐져 <보이스리스-검은 나무여, 마른 들판>이 되었다.

 

함경아, , 2009-2010, 천에 북한 손자수, 148x226.5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함경아(1966- )는 비디오, 설치, 사진, 조각, 전통매체등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으며, 개인의 차원안에서 존재하는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사회적 가치관과 시스템, 윤리와 법망과의 간극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와 형식으로 재구성해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는 작가가 작품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북한 수공예 노동자들의 손을 빌려 제작되었다. 작가는 전쟁과 폭력에 관련된 온라인의 기사와 이미지로 자수 도안을 만들고 북한 출입이 가능한 제3자를 통해 북한으로 자수 도안을 전달했다. 북한 사람이 자수를 놓기 위해 인터넷의 이미지와 기사를 읽고 보게 되는 행위는 '삐라'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며 이런 과정은 단절된 남북관계 속에 교류와 소통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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