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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영원과 순간 사이》

Kim, Se-joong 《Between Eternity and Momen》

  • 작가

    김세중

  • 장소

    김세중미술관

  • 주소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70길 35 (효창동)

  • 기간

    2022-02-08 ~ 2022-02-26

  • 시간

    11:00 ~ 17:00 (휴관일 : 월, 법정공휴일)

  • 연락처

    02-717-5129

  • 홈페이지

    http://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김세중미술관은 2022년 첫 전시로 2월 8일(화)부터 26(토)까지 김세중 작가의 아홉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리스 조각과 성상 중심의 회화 약 10여 점이 소개될 예정이다.

김세중 작가(b.1977)는 2000년대 중반 시작된 초기작업에서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인간 생활과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에 관심을 갖고 극사실주의적인 회화기법으로 구현해왔다. 작가는 자연을 단순히 외적으로 재현하는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함축된 신비로운 대상으로 보았고 무한한 영원을 상징하는 영적 공간으로 보았다. 독특한 조합과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구현된 자연은 초현실적인 감각을 자아내며 우리의 기억을 소환하여 무한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이번 전시 “Between Eternity and Moment (영원과 순간 사이)”에서는 그리스 조각과 성상 중심의 숭고한 대상과 자유롭고 무한한 영원을 상징하는 하늘과 바다와의 조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론적 세계로의 소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김세중(b.1977) 작가는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했으며,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 『어둠 속의 속삭임』 (갤러리 PICI, 서울),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스페이스 아침, 서울), 2008 『영원을 껴안다』 (박영덕 화랑, 서울, 2013 『영원을 꿈꾸다』 (박영덕 화랑, 서울), 2016 『자연, 꿈, 영원』 (박수근미술관, 강원도 양구), 2019 『영원과 순간 사이』 (모네 아뜰리에, 프랑스 루앙), 2020 『낯선 듯 낯설지 않은꿈』 (정문규미술관, 경기도), 2022 『영원과 순간 사이』 (김세중미술관, 서울) 등 총 8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룹전시 및 아트페어에 300여 회 참여하였다. 경기창작센터(2013-2014)와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2015)에서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였으며,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2006), 단원미술대전에서 특선(2006), 제2회 가톨릭미술공모전에서 우수상(2011), 단원미술제에서 단원선정작가상(2014)을 수상하였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RYC Center, 단원미술관, 박수근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안산 꿈의 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자박물관, 국방부, 한화그룹 등이 있다.



Between eternity and moment(영원과 순간 사이), 138.1×96㎝, oil on canvas, 2021



Between eternity and moment(영원과 순간 사이), 80.6×116.8㎝, oil on canvas, 2020



Between eternity and moment(영원과 순간 사이), 50.2×65.1㎝, oil on canvas, 2021




■ 전시 평론

촉각과 시각의 중첩_시·지각적 접촉을 통한 존재 본질에 대한 탐구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작가 김세중은 잘 그린다. 정말 잘 그린다. 매끈한 대리석은 그자체로 대리석이고, 세월의 때가 묻은 청동은 누가 봐도 청동이다. 작업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돌멩이’(조약돌)도 그렇고, 다소 각주 같아 지금은 좀처럼 묘사하지 않는 새나 꽃 등의 자연물도 온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인지된다. 매우 생생하여 실제적 실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잘 그리는 것과 의미 있는 작품은 다르다. 아마 전자에 국한된 경우였다면 김세중의 작업들은 가치적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의 작품은 대상의 실재성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표상 외적인, 겉으로 나타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부유(浮遊)하고 있기에 현재의 주목도 또한 유지될 수 있었다.

우선 김세중 회화의 미술사적 연관성을 들여다보자. 만지고 싶을 정도이니 ‘촉각화 된 시각의 회화적 구현’이라 해도 무방한 그의 빼어난 사실주의적 그림 탓에 그는 곧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작가로 분류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출발한 회화 및 조각의 새로운 경향을 가리킨다. 영국에서 발아해 미국에서 꽃을 피운 팝아트(pop art)가 점차 쇠퇴해질 무렵에 등장했다. 극도의 사실적 기법 아래 주관을 완전히 배격한 중립적 입장에서 기술되며,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작가 김세중의 작업 역시 우리 가까이 있는 광경들을 일순간 정지시켜 강조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여타 하이퍼리얼리스트(hyperrealist)와 닮은꼴이 있다. 지나치게 정확하고 세밀하며, 사진(혹은 도구)을 이용한 표현이라는 장르적 특성에서도 언뜻 동일한 분모를 엿본다.

그러나 김세중의 작업은 현실 속 일상의 소재를 차용한 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면서도 ‘비현실적 풍경’이라는 아이러니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장면을 건조하게 반영하는 극사실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극단적인 묘사로 인한 시각적 경이로움이 존재함에도 ‘사물의 이면’을 충동케 하는 이데아(idea)적 성격과 본질에 관한 경험적 태도가 동시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김세중의 작품은 차라리 ‘초현실적(surreal)’이라는 게 옳다.

특히 연극적 요소를 통한 불변의 원형이라는 측면은 그리스식 미술양식의 원류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에도 현실적인 대상을 관찰하고 외형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포함해 그 ‘사물자체와 직면’하는 조형 심리적 영역에선 통상적인 극사실주의와 변별력을 지닌다. 더구나 존재를 통한 꿈과 환상, 상상의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본질을 다루기에 엄밀히 말하면 초현실주의(surrealism)와도 간극이 있다.

‘일상에서의 경험’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팝아트(pop art)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계보만 놓고 보자면 그른 시각은 아니다. 사실 주변의 일상을, 대중적 속성을 미술이라는 명제 아래 수용한 하이퍼리얼리즘은 미술사적으로 팝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은 팝아트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일 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존재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화폭에 옮겼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팝아트와 하이퍼리얼리즘 간에도 차이가 있다. 대량소비 및 대량생산 체제와 미디어의 상징성에 열광했던 팝아트와 달리 하이퍼리얼리즘은 외계의 실재를 파악하는 인식태도에서부터 사물의 객관적인 존재에 대한 신뢰, 있는 그대로의 주어진 현실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진실 되고 거짓 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리감을 둔다.

특히 팝아트가 물질문명에 대한 판타지를 다양한 콜라주나 혼합기법이라는 테크닉적인 관점에서 소화한 채 각종 매체 등에서 쏟아지는 시각이미지들을 분해, 조합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려 했다면, 하이퍼리얼리즘은 조각과 회화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에 대한 존재성을 부여했다. 적어도 70년대 이후의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은 현실과 현실성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실재와 실재에 담긴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탑재하고 있다.

이밖에도 하이퍼리얼리즘은 억제된, 비감동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세계를 보여준다는 점, 하찮고 별 것 아닌 것조차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명확히 구분된다. 나아가 팝아트는 순간적, 청년적, 섹슈얼적인 여백이 존재하나 그만큼 휘발성이 강했다면,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의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김세중의 작업은 ‘일상 속 경험’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팝아트와의 공통분모는 없다.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인 초현실주의와도 근친하지 않다. 심지어 그의 작품들은 촉각과 시각의 중첩이라는 측면에서 대상과 주체의 중첩이나 자연성과 현실성의 중첩을 내세운 한국의 하이퍼리얼리즘과도 구분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이 표상과 실재의 문제를 비롯해 표상과 이미지 간 상호성, 객체와 주체 간 관계 등을 다뤘다면 김세중의 작업은 시각과 촉각-지각의 중첩을 통한 사물의 표상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간단하게 말해 일반적인 하이퍼리얼리즘이 ‘사실적 사실’에 접근한다면, 김세중의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사실에 대한 허구, 사물의 객관적·구체적 존재로 확장되며, 더불어 ‘존재의 가능성의 현실성’으로까지 넓혀진다. 극사실적인 묘사는 단지 그 ‘존재의 가능성의 현실성’으로 이끌기 위한 장치요, ‘현실성의 영원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일 뿐이다.
 

2. 극사실과 초현실이 하나의 화면에서 병치되거나 병립하면서도 일반적이고 고정적인 미술사조와의 흐름에선 동떨어진 채 독자적 영토를 다져온 그의 작업은 ‘영원성’에 방점을 둔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놀라움 뒤편에 놓인 존재본질과의 ‘접촉(接觸)’이 핵심이다. 즉 익히 있는/ 있어 온/ 주어진 존재와의 ‘맞닿음’이다.

이는 2012년 이후 그가 꾸준히 <영원을 꿈꾸다(Dream the Eternity)>를 작품 제목으로 반복해온 것이나,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조약돌’이 존재본질을 담보하는 ‘시간의 영원성’을 가리키는 수단이자 존재와 대상이라는 고리 아래 실재를 감각적으로 연결하는 상관의 행태였다는 점 등에서 고루 확인된다.

그런데 아래 거론할 조각상과 함께 조약돌 역시 보기보다 의미가 깊다. 그도 그럴 것이 조약돌은 각각의 고유성을 지닌 인간을 빼닮았다. 뭉쳐 있는 조약돌은 하나의 사회내지는 공동체다. 이 조약돌은 숱한 ‘시간의 결’과 부딪히며 작고 둥글둥글해진다. 모나고 각진 것도 세월에 마모되어 부드럽고 완만해진다.

또한 조약돌은 이리저리 파도에 떠밀리다 자신들끼리 마주 닿아 발생되는, 마찰의 소리를 낸다. 이는 인간 삶과 동떨어지지 않을 삶의 소리와 다르지 않다. 무언가에 휩쓸렸다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길 거듭하는,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환희에 찬 일상이 거대한 파도 같은 무언가에 휩쓸리다가도 평온하고 맑은 하늘을 보며 독자적인 자리로 돌아가 삶을 잇는 인간생활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우린 그때마다 유무형의 소리를 낸다.(가끔은 외마디 비명도 지른다.)

때문에 조약돌은 한낱 자연물이 아니라 ‘너’와 ‘나’의 삶이고, 각자에 해당하는 개체이면서 작가 ‘자신’의 삶으로 전환되면 주체의 표상이 된다. 이때 조약돌의 소리는 삶의 소리이다. 이 소리는 작가에겐 표현할 수밖에 없는 본연의 소리, 실존의 소리와 갈음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김세중에겐 ‘표상’이다.(한편 그의 작품 속 자주 나타나는 ‘하늘’과 ‘바다’ 등의 이미지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만큼 백령도에서의 경험은 작가의 화풍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시간의 순환과 그 순환 속 존재의 의미, 영원성을 발견하게 되었던 듯싶다.)

이후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조약돌은 염원(念願)과 바람을 간직한 곳이자 현실의 시간과 영원한 시간이 넘나드는 초현실의 교차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미적 나침반으로써의 기호로 자리한다. 2005년 당시 온통 ‘침묵’으로 일관하던 흐름에서 이탈하여 시간에 올라타 한껏 유영하는 작가의 오늘을 열어준 단초가 되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시간’은 작가에게 영원성을 확인케 하는 중요한 명사라고 할 수 있다. 원형(圓形)에 그린 조약돌 작품 <조약돌의 꿈(Dream of Pebble)>(2013)과 역시 원형의 작품 <영원을 꿈꾸다(Dream the Eternity)>(2015)처럼 굳이 동그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이유도 돌고 도는 ‘시간의 영원성’을 피력하기 위함이다.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으나 사실 원형은 만다라(Mandala)의 작가적 응용이기도 하다. 만다라의 ‘원(圓)순환적’ 성격을 담아내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약돌의 발견이 그러했듯,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일종의 비밀그림이 만다라라는 사실은 그가 만들어온 일련의 작품들, 존재본질에 대해 자문해온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 안에 온 세상이 들어있다’는 만다라의 깨우침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왜냐면 ‘manda’는 본질이고 ‘la’는 소유다.

우주 삼라만상을 뜻할 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는 인간 마음속 의식의 흐름을 상징하며, 그럼으로써 존재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만다라의 현대적 번안, 다시 말해 영원성에 관한 작가의 시각은 유럽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상(彫刻像)들을 옮긴 최근 작업들에서 동일하게 드러난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옮긴 < Dream the Eternity >(2013)에서부터 큐피드(Cupido)와의 에로스적인 사랑이 묻어나는 < Dream the Eternity >(2014~2015), 그리고 가장 근작에 속하는 페가수스(Pegasus)와 투구를 쓴 채 한 여인을 감싸고 있는 거대 조각상까지, 그에게 조각상은 생생한 상상력으로 10여년 이상 작품의 맥(脈)을 형성해온 소재이다.

과연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뛰어난 감각으로 그려진 이 조각상들은 겉으로 판단하면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조약돌이 그러했듯 그 내부에 드리운 것들,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 문명과 자연, 인간의 정신성과 육체성, 그리고 신화와 현실, 우주의 공간성에 녹아 있는 생성·소멸·미지와 같은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요소들이 각각의 작품마다 만발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여기서 가장 가치적인 건 ‘접촉’이다. “사물과 나의 접촉, 사물과 사물의 접촉, 세계와 나의 접촉이라는 존재론적 사건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김세중)이면서 외적 모방이 아닌,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한, 그 배후에 존재하는 영원한 대상에 대한 감각적·지각적·감성적 접촉이 키워드인 셈이다. 한국의 위대한 조각가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세중 작가(1928~1986)와의 접촉도 그 일부이다.

물론 리얼리즘은 접촉의 단계로 가기 위한 일종의 경험으로부터의 문(門)이고(작가 역시 그의 박사논문에 “조약돌과 조각상은 나의 경험을 의미화 하는 첫 번째 관문”이라고 썼다.), 김세중의 회화는 그 문 앞으로 대중을 유도하기 위한 시각적 수단이다.
흥미롭게도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안엔 “실재라는 명징함의 가능성”(김세중)인 인간 삶과 등치된 자연과 영원성과 꿈이 들어 있다. 그것들과 조우하는 순간이 바로 초월적 경험 안에서의 리얼이고, 리얼함의 뒤에 숨겨져 있는 이면이란 환영(幻影)을 거세한, 비로소 영원으로 다가설 수 있는 존재 본질의 모습이다.

작가에게 존재란 어떠한 실재적 술어가 아니다. 칸트(Immanuel Kant)의 정의처럼 그것은 사물의 개념에 보탤 수 있는 어떤 것의 개념이 아니며, 단지 그 자체에서의 사물의 정립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석상에 담긴 진짜 이야기(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가 작품의 중심은 아니다. 각각의 조각에 새겨진 상징이나 의미와는 무관하다. 이미 조약돌에서 파악된바 있듯 그의 모든 작품은 자연(Nature)과 시간의 굴레를 품은 영겹의 영원성(Eternity), 이전과 다른 이면의 세계를 열람케 하는 꿈(Dream)이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놓이지만, 실질적이거나 개별적인 스토리와는 별 상관없다는 것이다. 비록 신화의 소구인 조각상을 통해 탈-현세를 증명하고 신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영원한 세계, 꿈의 세계를 꿈꿀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론 존재본질을 어떻게 회화적으로 번역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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