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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영 《말랑말랑 회로기호도 (回路記號圖)》

Bae Sooyoung 《Marshmallow Circuit symbol》

  • 작가

    배수영

  • 장소

    갤러리나우

  •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신사동)

  • 기간

    2022-03-11 ~ 2022-04-05

  • 시간

    10:00 ~ 18:00

  • 연락처

    02-725-2930

  • 홈페이지

    http://www.gallery-now.com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My friend ttomma, 117x31.1x101cm, Stainless steel, candy coating, LED, 2021


• 전시서문

이도경 큐레이터
 

사막 한가운데 메마른 그 모래 속(황폐하고 황량한 현실 속) 자양분을 저장하고 빨아들여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나누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와 같은 삶을 꿈꾸는 배수영.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2020-2022 전세계를 떠돈 COVID-19 그리고 팬더믹.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질병과 또 다른 환경적 재난으로 우리 인간은 서로를 의심하고 대면하기를 두려워 한다면...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배수영은 스스로에게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행복보다는 불행의 시간을 더 많이 겪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납득되어지는 것보다는 부조리한 상황을 더 많이 겪게 되는 삶이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두려움 가운데 희망을 꿈꾼다. 배수영은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이번 자신의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아무도 손대고 싶지 않은 열악한 일들, 인간이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일들을 기계가 대신 찍어내고 수행하게 된다.  그러한 삭막한 상황들에서 또마(꺼지지않은 불씨)는 작은 희망을 속삭인다. 그러한 불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아 내듯, 황량한 세계속에서 유토피아를 맛보듯, 작가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재현한다.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의 외침을 느낄 수 있듯 버려지고 쓸모 없는 산업폐기물, 폐 전자 제품의 잔해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이끌어내어, 그것에 자신의 존재를 투영함으로 그만의 새로운 호흡이 드러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제 역할을 상실한 그들은 배수영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아 새로운 작업들로 재 탄생되는 것이다. 배수영은 자신의 에너지가 절절이 녹아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된 작업을 통해 평화를 느끼고, 희망을 꿈꾸며, 인류가 함께 숨을 쉬고 살아갈 희망의 메타포어를 담고 있다.
 


Five Elements, 60x400cm, Mixed media, formax board on the aluminum frame, 2022


• 작가노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지구. 본래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지요.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성장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변모시켰지만, 정작 삶의 터전인 지구(자연)은 무참히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부추기고 그와 함께 인간의 이기심은 정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스스로마저 파멸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었던 자본주의는 무한한 경쟁과 끝없는 갈등을 동반했고, 그 결과는 극심한 개인주의, 인간관계 단절이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은 생태계의 섭리를 거스르고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커지고 말았지요. 하지만 한낱 인간의 힘으로 거대한 자연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오히려 스스로 삶의 터전을 부수어 생존에 지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초래된 작금의 상황에 대한 깊은 분노와 한치 앞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 다름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산업폐기물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순간 소비되고 버려지는 소모품들,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되는 현대문명의 쓰레기들. 언젠가 제 역할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폐품들을 선택하여 ‘오브제’로서 작품으로 재탄생 시켜 새 생명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선택된 이 폐품들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지만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전자제품, 그 안의 ‘전기회로’와 융합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됩니다.

복잡한 전기회로는 어느 하나라도 단절되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이 마치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그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기회로’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 위에 융합된 폐품들은 그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름의 의미,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모되어 버려진 폐기물이 한데 모여,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버림받았던 그들이 서로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작품으로 탄생했듯이 우리가 사는 이야기 역시, 곁에 있는 다른 이들이 없다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지요. 서로가 함께 함으로써 존재의 의미가 되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소생, 상생, 재생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간 조화의 이치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함께 할 때에 비로소 서로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그 단순한 이치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오늘 같은 날이면 괜히 창 밖을 내다보며 햇살을 맞기도 하고 슬그머니 산책길에 나서기도 하지요. 태양이 주는 ‘빛’이 지구에 불어넣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빛’을 쫓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빛’을 보며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무한 경쟁과 이기주의가 만연한 지금, 우리는 마치 ‘빛을 잃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성을 파괴시키고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성은 더욱 유린되고, 인간은 단지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버린 혹은 버리기를 강요받은 존재의 가치를 다시금 찾고 ‘빛’이 밝아오는 세상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생활 속의 물건들을 오브제로 선정하여 작품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삶을 이루는 총체적인 문제를 환기시키고 잃었던 인간성 회복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위적인 인공의 빛은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잃었던 자연의 ‘빛’, 희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일상에서 익숙한 생활용품을 작품 속 오브제로 만남으로써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인간생활의 문제가 대상화되고 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찰, 그리고 주변을 채우고 있는 인간문제에 대한 고민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날실과 씨실의 교차, 그 무수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천은 우리네 인간사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베틀의 운동이라는 일정한 힘을 통해 날실과 씨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을 만들어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사 역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관계를 맺고 이 관계들이 모여 만든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인간이 만든 이 거대한 공동체는 그 구성요소인 인간들의 ‘관계’로부터 운동의 힘을 얻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조명은 바람,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 운동성을 부여 받습니다. 움직이는 깃털 조명은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전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기의 흐름은 작품에 영향을 줌으로써 고정적이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작품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는 작품과 관객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원료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지녔다는 점과 그 형태 역시 선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천이 가진 가변성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나아가 삶의 모습, 그 흐름의 변천으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물체들을 사용하는 것은 비단, 폐품의 재탄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입체적인 물체를 평면 혹은 3차원의 공간에서 재배열, 재배치 함으로써 기존에 평면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국한되었던 회화의 무대를 뛰어넘어 열린 공간, 즉 생활공간으로 예술의 무대가 확장됨을 의미합니다.

예술의 무대가 확장되어 우리의 일상 생활 공간과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결국, 작품이 모든 삼라만상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객과 작품이 만들어내는 소통은 전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의 새로운 한 부분이고,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서 작품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시각을 비롯해 촉각, 후각, 청각 등 공감각을 활용하여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과거에 비해 관객들은 더욱 입체적으로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는 것은 과거 전통적인 작품감상법에 비교했을 때 관객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관객들의 눈과 손에 의해 온전히 그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런 점이 바로 예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이자 가치이지 않을까 싶네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고, 생활 안에서 함께 어울려 예술이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잡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삶에 대해 우리는 모두 제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잘 살고 싶다’는 근본적인 고민은 아마 모두가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다수가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왜 우리의 객관적인 모습은 모두가 그러하지 못한 것일까요?

사회는 점점 발전하지만 인간관계는 오히려 좁아지고 단절되어만 가고 있지요. 이 안에서 사람들은 생활의 편리함과 별개로 외로움, 소외감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들과 함께 만든 공동체 속에서의 자존감이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조잔디는 그 속성은 인공적이라는 데에 있지만, 자연의 모습을 닮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의 중간지대에 있다고 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인공에 자연이 개입한 것인지, 자연에 인공이 개입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 둘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함께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자연과 인공이 만남을 통해 형태를 이룸으로써 일종의 ‘소통과정’을 거치고 공존하는 것을 통해, 사회에 의해 파괴된 본연의 인간성 역시 결국 사회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지만 설치미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에 대한 이해와 그 장소의 주인인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예술의 공공성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가 삶을 윤택하게 했을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듯이, 공간의 활용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설치미술 역시 기본은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소가 지니고 있는 의미, 그 속의 역사를 무시하지 않고 그 연장상에서 작품을 풀어나가는 것. 이를 저는 '플러스아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삶이 축적되고 생활이 연장되는 과정처럼 미술과 인간, 예술과 관객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궁극적으로는 예술이 온전히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오게 함으로써 예술적 상상력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하죠.


Good, 65.1x91cm, UV printing acrylic, urethane coating on canvas, 202
Flapping wings, 40×10×40cm, Stainless steel, Chrome coating, 2021



• 평론


기계적 세계에서의 소통
이선영 (미술평론가)


모든 작품에 회로도가 깔려 있는 배수영의 작품들은 편재하는 기계, 즉 기계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기능으로의 환원, 그리고 냉정한 이해관계의 상징인 기계와 만물이 함께 하는 세계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 거리만큼이나 도전은 다양한 차원의 시도를 요구한다. 전자기기에 뇌처럼 탑재되는 회로기 판에서 영감받은 배수영의 작품들은 사적영역에 놓일만한 아담한 규모부터 공공영역에 설치되어 주변 환경을 아우른다. 자연과 문명을 포괄하는 소재들이 회로기 판을 구성하는 기호적 방식의 변주를 통해 일관성을 확보한다. 작가는 회로도 이미지에 꽂힌 후 모든 것을 회로도의 방식으로 한번쯤은 번역해 본 듯하다. 그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온 작업의 결과물을 볼 때, 이러한 번역이 무익한 반복은 아니다. 그만큼 작가가 생산력 있는 소재를 발굴한 것이다. 예술에서의 생산력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관철되며, 대개 양자는 상보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소재가 형식을 낳고 그것이 새로운 내용으로 연결되고, 확장된 내용을 담아내는 또 다른 형식이 고안되는 식이다. 그리고 각각 진행되어 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또 다른 연결고리로 엮이면서 새로운 작업으로 변화한다. 회로도 모티브는 배수영의 작품 속 나비나 나무처럼 지금도 변신하고 성장하는 중이다. 나비처럼 나무처럼 이 계와 저 계를 넘나든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기호이다. 인터넷 세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이전에도 자연은 그 탐구자에게 언어였고, 그것은 과학자만큼이나 예술가에게도 그러했다. 배수영이 (재)활용하는 회로도는 일종의 기호이다. 한자어로 ‘회로도 기호(回路圖記號)’의 형태를 보면 문자 자체가 회로도처럼 보일만큼 기호로서의 특징을 공유한다. 안느 에노는 [기호학사]에서 언어란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필요한 규약을 통해 표현할 때 산출되는 것’이라고 인용하면서, 모든 언어들에 대해 공통된 자질들은 탐구한다.

그에 의하면 공통된 자질은 차이와 체계성이다. 배수영이 활용하는 회로도는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차이를 전제하고, 차이는 체계화 되어 있다. 물론 차이는 이후 후기구조주의 국면에서 차연의 개념을 통해 구조, 즉 공시적 체계를 이탈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계의 넘나듬은 경계의 확정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현대철학은 그것을 구조라고 본다. 가시적으로 대표적인 구조는 건축의 예가 있지만, 대부분의 구조는 외적이기 보다는 유전자처럼 내적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힘이 필요하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학을 ‘사회생활 안에서 기호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인간 삶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이 영역은 예술의 영역과도 겹쳐진다. 배수영은 언어적 형태를 통해 예술적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 속 회로도와 중첩된 자연은 생태계의 특징을 보여준다. 유기체 또한 네트워크다. 알렉스 라이트는 [분류의 역사]에서 생물학적 계층은 상호작용하면서 더 고차원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 네트워크는 다시 더 복잡한 생물학적 계층구조로 합쳐진다. [분류의 역사]는 생명이 이와 같은 계층구조와 네트워크의 상승작용을 통해 진화한다고 본다. 회로도와 중첩된 자연물은 자연의 외적인 모방을 넘어서 시뮬레이션하는 단계를 예시한다. 자연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장치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우리의 환경은 다양한 전자 화면에 의해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현대인은 실제의 창문만큼이나 인공창문을 통해 세계를 보며 인공창문은 실제의 창문을 대체해 나간다. 회로도로 번역된 세상은 자연으로부터 추상된 것이지만, 자연과는 자율성을 가지게 된 기호의 열로 다시 세상을 구조화하는 현대세계를 반영한다. 회로도가 극소형으로 변모할 수 있음에 따라 자연에 내재한 법칙은 자연스러운 외양을 갖게 되었다. 방 하나를 가득 차지하던 초창기 형태의 컴퓨터는 나날이 작아져서 2010년경 부터는 전세계가 거의 동시적으로 손바닥 안의 세상을 갖게 되었다. 이제 컴퓨터는 양자적 차원까지 도전 중이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회로도는 그 자체로만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기하학적 뼈대, 또는 바탕으로 나타나며, 이 추상적 패턴은 대개 자연 이미지와 나란히 놓인다. 다양성과 통일성이 함께 한다는 점 외에 소재나 주제가 보편적이며 형식 또한 완성도가 있어서 대중과의 소통에 용이하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이 작가 스스로도 이해못할 난해함에 탐닉하면서 기술적인 완결도마저 떨어지는 예는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소통불가능성을 상정한다. 그러나 작업 및 작품활동의 기본적인 동인은 소통이다. 타자와 소통을 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자신과 소통을 꾀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자신과의 대화가 확장되는 경우다. 회로도는 두뇌와 훨씬 관계될 것 같지만, 마음 즉 하트 이미지와 주로 결합되어 있는 점은 소통에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바가 무엇인지 묻는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인간의 머리는 하트 모양이 차지하곤 한다.

마음이 배제된 소통, 즉 말을 위한 말, 형식을 위한 형식은 쓸데없는 공회전만 야기한다. 예술은 도구적 이성이 늘려나가고 있는 형식주의를 걷어내고 마음과 마음이 바로 통하는 어떤 세계에 대한 희망과 관련된다. 작업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다. 어디로 수신될지 모를 수많은 발신 행위는 허무하지 않다. 생성된 그 어느 것도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는다. 점과 선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회로도를 품은 하트 모양의 작품들은 소통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알려준다. 물론 직접적인 연결뿐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같이 도약과 비약을 요구하는 연결망도 있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이 나비다. 배수영의 작품 목록에도 있는 [나비효과](2020)는 우연과 필연이 거듭되는 믿을 수 없는 연결망을 통해 어떤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문자가 전면에 나타나는 작품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이다. 하트 모양의 형태 안에 새겨져 있는 ‘hope’나 ‘wish’, ‘good’ 같은 단어들은 소통에 대한 희망사항, 또는 그것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다. 대개 희망이 큰 만큼 절망도 크며, 이 세상에 선의가 악의보다 더 크다는 증거도 없다. 대개 희망과 낙관은 지금 여기의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배수영의 작품에 존재하는 밝은 형식과 내용은 작가가 출발하는 자명한 지점이 아니라, 언젠가 도달할 영역에 있다. 작업은 이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가는 작가만의 수단이다. 그것이 성공적일 경우 그 수단은 공유될 수 있다. 거의 24시간 인터넷 등을 통해 연결돼있는 초연결의 시대, 이전에 비한다면 소통의 조건은 엄청나게 발전해 있지만, 이러한 발전을 위해 포기되어야 했던 것들이 정작 소통의 걸림돌이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원래 연결이란 기계에 대한 정의처럼 무엇인가를 끊어낸 단면들의 접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어낸 것만큼 새로이 연결된 상황이 더 긍정적인가 하는 문제는 다르다. 거대 자본과 기술의 집약체인 연결망이 상호호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도 수년째 지속 중인 코로나 사태가 말해주듯, 초연결의 사회는 위험 또한 높인다. 콜린 앨러드는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비트와 픽셀로 완벽한 환경을 만들면 우호적이고 공정한 힘이 세상을 감독한다는 전제를 비판한다. 그는 현대인의 일상이 된 SNS의 예를 든다. 그에 의하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는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추적하고 관찰하고 자체적으로 빈틈없이 적정한 알고리즘으로 필터링하며, 수익을 낼 목적으로 우리의 일상에 최대한 파고든다. 누군가의 소통은 기업에게는 개인 맞춤형 마케팅 수단이다. 처음에는 소통의 창구처럼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곳을 플랫폼으로 삼다보면 결국 노골적으로 자사 이익에 관련된 사업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통의 창구’들에서 자기 과시적 소비에 관련된 컨텐츠가 점점 더 많아지며 상품과 정보, 체험 등이 점점 더 구별되지 않는 것은 사적 영역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장의 힘을 말한다.

물론 예술도 상품에 속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정체성의 표현을 위한 소비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술을 다수가 욕망하는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도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으며, 배수영 또한 그러한 노력을 해왔다. 소통은 유통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회로도를 수집하여 직접 붙이기도 하는 작품은 회로도가 그렇듯이 작은 면적 안에 연결망을 극대화하는 배치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망들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회로도와 예술의 접점은 메시지가 전달되는 긴밀한 체계로서의 특징이다. 작가는 대개 보이지 않는 부분에 조립된 회로도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심미적인 목적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재활용한다. 원래의 기능을 다한 대상은 예술로 재탄생한다. 현대미술에서 그 시발점을 알린 것은 초현실주의다. 초현실주의가 사물을 통해 그 내부로 침투할 수 없는 표면의 신비를 강조한다면, 2차 대전 이후의 정보혁명 사회는 사물의 목록을 새로이 첨가했다.

사회구성원 다수가 그 기능과 의미를 알고 있는 투명한 대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투명한 사물로 전환되는데,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는 만큼 유물화의 주기도 빨라진다. 배수영의 작품은 원래부터 기호인 글자는 물론, 기계부터 인간, 자연물까지 그것들에 내재한 기호적 특징을 심미적 패턴화 한 것이다. 기호는 대개 분절화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기표와 기의로 분열된다. 하트 모양의 머리에 해부학적 형태를 따라 굴곡진 관들로 표현된 캐릭터는 상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이 캐릭터는 평면 작품부더 공공미술까지 여러 맥락에 놓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캔버스 위에 혼합매체로 제작된 작품 [TTOMA’S WISH](2021)는 캐릭터가 희망의 풍선을 들고 걸터앉은 모습같기도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WISH’라는 글자와 관으로 단순화된 인체와의 만남은 기호적 조건을 공유한다. 문자적 메시지는 ‘HOPE’를 비롯해서 여러 개념으로 바뀔 수 있다.

기호는 단조로운 환원이 아니라 확장을 향해 열려있다. 희망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 벤치에 앉아있는 공공미술 작품으로서의 캐릭터는 인체와 벤치가 비슷한 구조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그것들은 모두 여러 굴곡 면을 가진 관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수의 접속 면을 탑재한다. 색색의 관들을 연결시켜 만든 이전의 작품 [relationship](2016)은 보다 추상적이다. 그것은 연결에 대한 추상이며 관이 접속될 때마다 성장하고 운동하고, 때로는 변신한다. 배수영이 선택하는 자연물에도 변화에 대한 상징을 담고 있다. 극적으로 변태하는 생물인 나비, 환경에 따라 다양한 식생을 보여주는 나무 등이 그것이다. 몇 개의 코드로 다양한 메시지를 만드는 언어 또한 그러하다. 멈춰있는 공간예술이 시간, 즉 서사를 끌어들이는 것 또한 변화에 대한 잠재력이다. 배수영의 경우 단어와 이미지를 다르게 조합하는 방식을 통해 그렇게 한다.

가령 작품 [HOPE](2016)의 이미지는 나비이다. 관객은 이미지와 제목 사이에서 조만간 날아오를 벌레의 희망을 읽는다. 물론 작품 [STAR](2016)처럼 이미지와 작품 제목이 같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타에 관련된 상징은 매우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벌새 이미지가 있는 [GOOD NEWS](2015)나 사과 이미지가 있는 [DESIRE](2019)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활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령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익히 알고 있는 문화권이라면 사과와 욕망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작품 [EVE AND ADAM](2015) 시리즈에서는 나비와 사과의 이미지를 병렬해서 영혼과 육체, 남성과 여성 등으로 읽게 한다. 현대 언어학은 대상과 기호의 임의적 관계를 말한다. 추상미술은 여기에서 더 멀리 나아갔다. 애초에 대상의 부재와 관련되는 언어와는 다르지만, 이미지 또한 언어라는 확인이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언어에 해당되는 기호의 망과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때로는 재현적 방식까지 병치하는 것은 대상과 언어와의 거리를 회복시키는 방향성이다.

미술이 이미지의 힘을 버렸을 때, 가령 개념주의 등으로 ‘진보’했을 때, 오히려 미술만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미술이 자기만의 언어를 구축하려 할수록 해체되는 상황이다. (분석)철학의 아류로 머물렀을 따름이다. 의미와 내용은 휘발되고 동어반복과 자기참조가 남았다. 이러한 상황은 대중문화도 마찬가지여서, 전 세계로 활짝 열린 미디어 생태계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유아(唯我)론적 태도가 팽배하다. 상업문화는 이러한 유아론을 최대한 활용한다. 유이론과 넓어져 가는 계층의 간격은 위험사회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콜린 앨러드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곧 기계가 세계가 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그에 의하면 도시 광장의 대형 전광판부터 단말기와 노트북,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면 중심의 기술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인지 자원인 집중력을 끌어내서 잡아두도록 설계된 기술의 결과물이다. 그에 의하면 벽도 세계의 특정 요소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식으로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인은 그러한 벽 안에 있다. 또는 갇혀있다. 소통의 역사는 그자체가 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다. 랜슬롯 호그벤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만화경]에서 고대의 상형/그림문자부터 컴퓨터의 전사를 훑어본다. 가까이 있는 전사로서는 1837년 모르스는 점과 선의 결합으로 코드화한 문자를 송신하는 전신기를 발명이 있었고, 1936년 콘래드 추세는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 대신 전자식 계전기를 이용한 원시형 디지털 컴퓨터 기기가 제조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총체적인 시뮬레이션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인공생태계에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보의 수신과 발신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정보 소비의 단말기로 축소될 수 있다. 예술 또한 정보의 일환으로 소(유)통되곤 하지만, 작가들의 작업은 관객이 서 있는 영역에서 물적 형태로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로 단순한 코드의 방식을 벗어난다.

캔버스 위에 크리스털 등 복합매체를 활용한 작품 [MR.TIGER], [MS.TIGER](2022)은 호랑이 머리 형태로 배치된 회로도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매의 재현이 공존한다. 해바라기의 반이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골격을 드러내는 작품 [SUN FLOWER 1,2,3](2021)은 재현적 이미지가 보이는 부분이 각각 다르다. 나비 반쪽은 재현적, 다른 반쪽은 회로도인 작품 [데칼코마니](2020)는 마치 회로도에서 탄생한 인공생명체같은 모습이다. 배경에서 형태가 나오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것은 의태(擬態)--사전적 해석은 ① mimicry ② mimesis ③ simulation 등으로 나와있다--처럼, 자연 생태계에서는 이미 일어나는 일이다. 배경과의 일치는 조화이기도 하지만 죽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폐기된 기계부품이 예술로 다시 탄생하듯이 죽음은 삶의 조건이 된다. 단색 배경의 하트 안에 ‘HOPE’, ‘WISH’, ‘GOOD’ 등의 단어를 넣은 2021년의 평면 작품에서 작가는 보편적인 가치를 말한다.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나비, 사과, 별, 차 같은 도상은 일상적 소재에 대한 작가의 지향을 알려준다. 회로도라는 추상적 패턴은 구체적 대상을 필요로 한다. 추상적인 것만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고리들을 추적하는 것은 미술이 가지는 잠재력을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인], [명량], [치킨 패밀리](2021) 같은 작품들을 보면 한국적인 소재 또한 선호된다. 닭과 원숭이 한 쌍 씩이 있는 작품 [미스터/미스 치킨](2017)이나 [디지털 몽](2016)은 12년을 주기로 하는 동양의 역법과 관련된 소재로도 보인다. 동일한 소재는 소우주적인 자족성으로 응집되지만, 때로는 풍경으로 풀어놓다. 작품 [나비](2020) 시리즈는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둥근 형태로 자리하는데, 그것은 사각형과 원이 접하는 소우주의 상징이다. 그 밖에 육각형 같은 틀이 있다. 하나의 틀 안에서 나비는 우주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윌리엄 블레이크가 [순수한 예언]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의 들꽃에서 하늘을 보고,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에 영원을 담아라...’

작품 [BLUCK BLUCK](2016)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타원형 틀에 나비 이미지는 수집물같은 모습이다. 수집 대상만큼이나 틀도 다양하다. 사과 이미지의 가장자리에 다양한 원근법의 나비 배치한 [WHISPER](2016)는 단색 바탕이지만 풍경을 떠올리며, 나무와 새가 함께 하는 [HAPPY ENERGY](2016)는 공생하는 생태계가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이브와 아담2](2015)를 보면, 에덴동산의 드라마를 유추할 수 있는 소재들이 풍경처럼 배치되어 있다. 작품 [HEY, BUTTERFLY](2020)는 다양한 크기의 나비를 통해 원근감 있는 화면을 구성한다. 칩을 내장한 회로도 모양의 나비는 자연과 과학, 그리고 예술에 공히 적용될 형식을 은유한다. 배수영의 작품은 동질이상(同質異像)의 형식을 취하기에 설치를 통해 한 공간을 연극의 무대처럼 연출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작품 [HEART TO HEART](2014)는 전시공간 전체를 회로도로 연결한다. 이미 우리는 회로도 안에서 살고 있는데, 작가는 그 내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빛은 회로도로 연결된 심장들이 연동되는 듯이 연출된다. 빛은 구조가 작동 중임을 말한다. 이때 빛은 에너지를 상징하며, 이는 회로도가 포함된 나무와 하트 형태의 점들이 빛나는 작품 [ENERGY TREE](2015)는 물론, [TRUST](2015), [TRINITY](2015) 등에서 발견된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미술과 물리]에서 빛은 언제나 가장 신비한 요소로, 그것은 세계의 모든 탁월한 종교에 공통적으로 있는 요소라고 말한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우리가 상상력(imagination)이라 부르는 단어는 그리스어 ‘phantasia’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빛(phaos)가 그 어원이라고 밝힌다. 빛은 공간, 시간, 에너지, 물질과 생소한 방법으로 연결한다. 빛의 또 다른 면모인 색은 물체의 원자적 구조에 의존한다. [미술과 물리]는 19세기 중엽까지도 색을 물질의 독특한 속성이라고 확신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초에 과학자들은 색이 변화하는 파장의 빛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했다. 물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가 가시화된 것이 색이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회로도라는 기본 이미지는 형태뿐 아니라 빛, 색 등에 공히 적용되는 구조를 상징한다. 작품 [PIPE TREE](2017) 회로도 모양으로도 나타날 선과 점이 연결되어 있으며. 색색의 관으로 나무 형태를 만들었다. 회로도가 상징하는 점과 점의 연결은 [LAND OF BLESSING](2015)처럼 세계지도를 연상시키는 우주적 비전이 된다. 일찍이 르네상스부터 짧게 잡아도 근대부터 활성화된 세계화는 이제 전 세계가 거의 동시대에 변화를 경험하는 정보혁명을 통해서 더욱 실감 된 터다. 배수영의 대표적 소재인 하트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소통을 상징하면 디지털 사회의 몸통이다. 콜린 앨러드는 우리는 심장이 한번 뛰는 시간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에 장면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인지와 감정, 의도를 자동으로 추론한다고 말한다. 빛의 속도로 순환하는 정보의 흐름은 마음의 작동과 상보적이다. 작품 [디지털 하트](2016)는 내부에 LED 조명을 넣어서 회로도가 밝게 빛난다.

[디지털 하트](2021) 시리즈 뿐 아니라, [디지털 이브](2021)처럼 사과도 같은 방식인데, 한 면은 붉은 사과, 다른 한 면은 빛나는 회로도를 내장한 모습이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사과의 상징을 생각해 볼 때, 소통과 욕망의 관계는 밀접하다. 대개 욕망이 무엇인가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공공영역으로 확장된 작품은 도시와 어울리는 발랄한 팝적 소재와 색상을 보여주지만,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린 계열의 작품군도 있다. 작품 [MICRO GARDEN](2019)를 비롯한 공공미술 작품에서 강강수월래 같은 소재는 공동체와 소통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준다. 평면 작품과 달리, 3차원 공간에 세워야 하는 작품에서 질서와 균형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둥글게 배치된 나비 날개들은 고정된 구조에 움직임의 환영이 있다. 작품 [나르시시즘](2021)에서 같은 색조로 붙어있는 6개의 날개는 나비 세 마리일 수도 있지만, 한쌍이 여러겹으로도 보일 날갯짓의 환영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레인보우 버터플라이](2021), [퓨어 화이트](2021), [블랙 스완](2021) 등은 나비의 해부학적 형태나 운동의 환영을 넘어서, 작가의 영감을 받아적는 유연한 대상이 된다. 배수영의 작품에서 평면과 입체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나비는 변화무쌍한 변신이라는 상징을 통해 직선적 인과관계에 불연속을 도입한다. 동양에 이미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에 있는 호접몽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러한 설화는 현대적 신화로 이어진다. 접혀진 날개는 현대적 시공간 감각을 내포한다. 콜린 앨러드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공간과 현대의 위상기하학적 공간을 대조한다. 그에 의하면 뉴턴은 공간은 동질적이고 변화가 없으며 어디서나 동일하다. 그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전제한다. 하지만 현대는 정적인 기하학보다는 변화무쌍한 연결을 중시한다. 정보혁명이 전제하는 인공적 그물망 역시 유연해진다. 점차 현실을 식민화하고 있는 가상현실 기술 또한 하나의 시공간에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게 한다. 배수영은 예술이 먼저 상상했으나 기술이 완성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


RAINBOW BUTTERFLY, 33x32x33cm, stainless steel, pearl urethane coating, 2022


• 작가약력

배수영 / Bae Sooyoung
 
학력
2010 오사카 예술대학교 예술제작 학위 박사과정 수료
2006 오사카 예술대학원 예술제작전공 석사 졸업
2004 오사카 예술대학교 예술계획학과 졸업
 
개인전
2021  bliss blossom, 갤러리 도 , 서울
HOPE, 헤드비 갤러리, 성남
Love song, 363스튜디오 갤러리아 백화점 디큐브시티, 서울
2020  Razzle dazzle, 매스갤러리, 서울
2019  형태의 진화, 우신보석감정원, 서울
Reborn, LK 수 갤러리, 서울
2018  Untitled, 부천무릉도원 수목원, 부천
치유와 상생, 트레이드 아트 라운지, 서울
2017  전통과 현대의 소통 : 연(緣), 한벽원 미술관, 서울
Five Elements, gallery U.H.M., 서울
2015  Take the Ego,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 gallery, 서울
2014  Trans - Being, Kunst Doc Project Space, 서울
2012  ECOPIA - ALPENSIA and THE ART ZONE, 알펜시아리조트, 평창
2008  토요타 렉서스, 사카이 천복, 일본
하늘 저편에...라라라...별저쪽으로..., 하얏트리젠시호텔, 오사카
2006  이제 시작하며, 시사이바시 앗 센스 서점, 오사카
 
주요 단체전
2021 UIAF ULSAN 2021 울산국제아트페어,헤드비 갤러리. 울산전시컨벤션센터, 울산
KIAFSEOUL 2021, 코엑스 삼성, 서울
AHAF Busan, 갤러리미즈, 파크 하얏트, 부산
조형아트서울, 갤러리세인, 코엑스, 서울
2020 메타버스 용인, 포은아트갤러리, 용인
2019 기호의 변주, 카라스갤러리, 서울
Art Vancouver, 다운타운 캐나다 컨벤션 센터, 캐나다
아드만 애니메이션 두 번째 외출, 석파정 서울 미술관, 서울
2018 색과 빛의 스펙트럼, 포스코갤러리, 포항
Any Other Generation, 중랑아트센터, 서울
십년감수, 갤러리 박영, 경기
IAa International Inter-media Art Project 부재의 기술, 예술공간 이아, 제주
또다른 언어, 다카르비엔날레, 아프리카
2017 숲 속의 은신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공주
의외로 심플한 현대미술, 전북도립미술관, 전북
봄 나들이, 하림 에코락 갤러리, 서울
예술로(藝述路), 아트스페이스 호서, 서울
2016 Re:wind, 프린트 베이커리, 서울
사이-평행선, 그리고 한 점,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실크갤러리, 서울
Seoul Open Art Fair, CH gallery, COEX, 서울
2015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COEX, 서울
Art BUSAN, BEXCO, 부산
World Art Dubai, 두바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UAE
축복의 땅, 양평,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It's美 - 또 다른 시선, 오사카한국문화원 미리내갤러리, 일본
2014 SELECT ART FAIR, North Shore Park, 미국
지역, 미술을 밝히다, 부평아트센터, 부평
옆으로 자라는 나무, 금장자연미술센터, 공주
2013 탄생과 부활, 예술의 전당, 서울
명성황후, 예술의 전당, 서울
Dispense Korea, Space WOMb gallery, 미국
2009 Razzle-dazzle, 하얏트갤러리, 일본
2008 99Tents, 99Dreams, 좌우예술구, 중국
에코@아시아주의, 하얏크갤러리, 일본
외 다수
 
경력
2021~ 아트펌컴퍼니 에이젼시
2018-2020 아트펌팩토리 소속작가
2011-2017 (주)씨에이치이엔티 아트사업본부장
2017-2018 한국관광공사 자문위원(디자인부문)
2017-2018 목원대학교 출강
2016-2019 아트 비 아뜰리에 입주작가
2015-2018 서울디지털대학교 출강
2014-2017 숙명여자대학교 출강
2012-2014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심의 위원
2010-2011 도쿄 예술대학교 연구원(첨단예술표현학 연구)
2009-2010 Kunst Doc 미술연구소 초빙 연구원
2008-2010 (주)스페이스워크(아트디렉터)
2008-2009 오사카 하얏트호텔 갤러리 기획전 중심 큐레이터
2006-2007 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 한인 총 예술협회 미술 담당
 
작품소장
현대자동차, 일본 오사카 국제병원, 일본 (주)스패이스워크, 일본 도요타 렐서스 사카이 천복지점, 알펜시아 리조트, 알펜시아 컨벤션, (주)갤럭시 인터네셔널, (주)다복, 디자이너 KAY KIM Boutique, 길병원, (주)코비스타, 더비단성형외과, (주)씨티존, (주)북해인터내셔널, 할리스커피 마곡퀸즈파크나인점, 서울시청, 박승철아카데미, 소요산탑베이커리카페, 가수 김창렬, 그 외 개인소장 다수


또마의 소망, 162.2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바다의 눈물, 40x9x40cm, Stainless steel, chrome coating, 2022



Brilliance, 116.7x91cm, stained glass paint glitter paint ,swarovski stone urethane coating on canva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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