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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 개인전 <나무가 되어>

Lee Chae solo exhibition : < Lignification >

  • 작가

    이채

  • 장소

    유아트스페이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1길 10

  • 기간

    2023-05-10 ~ 2023-06-17

  • 시간

    10:00 ~ 18:00 (휴관일 : 일, 월요일, 공휴일)

  • 연락처

    02-544-8585

  • 홈페이지

    http://uartspace.com

  • 초대일시

  • 관람료

    무료관람

갤러리 가기
□ 전시 서문

유아트스페이스에서는 2023년 5월 10일부터 6월 10일까지 이채 개인전 < 나무가 되어 >가 진행된다. 2020년 유아트스페이스에서의 첫 개인전 < Shape of Blue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푸른 꽃으로 피어나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는 작가의 여정이 담겨있는 작품 21점이 전시된다.

이채의 작업은 극도로 세밀하며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물감을 닦아내고 엷은 층의 물감을 얼룩이 생기지 않게 고르게 펴 바르는 과정은 숨을 고르고 긴장 속에 진행된다. 닦아내고 덜어내는 명상적, 반복적인 이러한 작업 중 작가의 눈에는 계속 잔상이 남았고 이는 작품 안에 다양한 형상으로 존재한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잔상#41> 은 이제껏 작업했던 푸른 꽃과 잔상 시리즈가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작업으로 작품을 시리즈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방법을 허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침잠(沈潛)의 색, 푸른색은 이번 전시에서 좀 더 다양한 색채로 발전된다. 자연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낸다는 작가는 숲을 이루고 나무들이 우거지고 그 나무들의 군락 안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조형요소들을 새로운 색채로 표현하였다. 작가의 색은 의도치 않았지만 오방색이 되었다고 한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한국적인 색채는 서정적이며 더욱 깊어진 작가의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필연적인 색이 되었다.
마티스는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시대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라 했다. 코로나로 발현된 지난 몇 년간의 예기치 못한 혼란은 작가가 생각하고 펼쳐 나가고 있는 명상과 치유의 작업을 더 단단하게 하였다. 또한 작업으로 승화된 자기 성찰은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그의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역동적인 푸른 형상들은 태어나 성장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며 나만의 길을 찾아 가는 인생과도 닮아 있다. 이번 전시로 작가는 더욱 커지고 싶은 마음을 자연과 호흡하며 시나브로 펼쳐 나가며 앞으로의 작업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 작가노트

잔상, 나무가 되어.
글. 이 채


푸른 꽃은 아득함에 닿기 위한 기다림이었다. 마음에서 피어나고 흐드러지며 눈앞에 아른거리는 잔상들의 파편. 내적인 결을 그리워하며 피워냈던 푸른 꽃은 꽃가루가 되어 청연이 되었다. 반복된 제스처의 방식이 남아있긴 하지만 잡을 수 없는 내면의 꽃을 잡기 위해 빚어냈던 작업과는 다르다. 이전 작업의 경우 작업함의 당위성을 꽃의 피어남이라는 의미적 차용과 꽃의 추상적인 형태에서 찾고자 했으나 이제 푸른 꽃을 담아내기 위한 형상은 내 마음속에 남아 점차 사라지고 분해되고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흔적은 잔상으로 남았다. 잔상은 오롯이 내 안으로 침잠된 아득함을 간직하고 품은 흔적이다. 잔상은 마음 깊이 새겨진 근원적인 형상을 겸허하게 붙잡고 싶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 시간 동안 꽃은 나무가 되었다.

감성적인 영감을 품고 있는 깊은 막연한 내면에 닿을 수 있을까. 우연적인 듯 반복적인 선들, 마치 안개처럼 드리워진 막, 경계 지어진 형태는 눈앞에 있듯 매우 뚜렷하지만 불가해하다. 하지만 해석의 시도가 무너지고 감정적 영감 사이에서 어떤 물길이 일어나면 이해를 위한 합리적인 요소들은 그대로 사라지고 감정적 조각들이 자라난다. 나에게는 이 일이 매 순간 일어난다. 심리적인 공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그 길을 내어준다. 의미를 파악하고 의식하고 찾아내는 관계는 단절된다. 반면 캔버스 화면에 드리워진 유화 안에 침잠하다 보면 작품의 해석 의미 개념 등은 용해되어 미끄러진다. 그렇기에 작품에 스며든 감정적인 무언가 혹은 메시지라고 불리는 것은 우선적으로 ‘나’, 나의 마음이 자 의식이다. 작업의 대상으로 나는 작업과 나 사이의 온전히 합일될 수 없는 매개체가 된다. 이 불온전함으로 다양한 의식이 다층을 이룬다. 의식의 포개짐. 내가 만들어 낸 궤적을 통해 감응으로 답한다. 감응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리 두기는 그리움의 다른 말이다. 저마다의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잔상의 형상은 화면

안에 알맞게 배치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느껴지는 잔상의 형을 캔버스로 전사한 것이다. 보여지는 형상은 나의 거리로 나의 잔상이 투영된 것이다. 내가 작품과 맺는 관계는 비직서적인 관계, 불가해적인 관계다. 나에게 있어 잔상은 그 자체로 드러나는 단면이다. 나만의 회화 적인 시각으로 작품 안으로 들어갔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작품과 거리를 두며 조응한다. 조응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결을 만들고 나무가 되었다.

그리움은 공허하지 않다. 잔상은 대상의 부재가 아니다. 조용히 응시하고 조심스레 기다리지 않았으면 놓치는 것들을 경험하고 인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유화 물감을 얇게 여러 번 펴 바르거나 반복적으로 닦아낸 흔적으로 시선이 닿고 마음이 쓰인다. 흔적은 자국이나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그 부산물이 바로 그리움, 나의 언어로 잔상이다.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지속되어 나타나는 상. 삶은 흔적들로 이루어져 있고 흔적은 기억으로 구성되며 잔상으로 나타난다. 이 체험을 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기에 시간의 간격을 두고 겹겹이 작업한다. 그 시간과 시선을 중첩시키며 표현해 나갔다. 흔적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다층의 감정의 형태를 담백하게 담아내었다. 잔상은 남겨진 결 사이에서 틈을 메우며 시간과 물질을 머금는다. 단일한 표면들이 나무가 되었다.

작업을 행할 때의 동작과 작업과 소통하는 고요한 시간, 그 상황에 더욱 집중하고 그 시간과 마음을 담아내는 방식의 작업을 하고자 했다. 작업에 조용히 응시하며 빠져들기를 바라기에 형태의 번짐을 조심스럽게 경계했다. 절제 없는 확장을 주의했고 번짐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향했다. 그어내 흔적을 남기는 선들은 율동감을 지니고 계획하에 이루어지지만, 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번짐은 당연히 그대로 수용했다. 이렇게 구획된 두 영역은 번진 흔적들과 그어내지 않은 부분들로 사라질 곳과 사라지지 않는 곳 사라짐과 나타남의 반복성으로 자기 한정의 내적 무한성으로 확장된다. 나무가 품은 나이테가 그러듯이. 또한 선을 이루고 있는 물감의 면적을 자세히 보면 마치 그어낸 선의 부분, 흔적을 확대한 듯이 보인다. 나는 선과 면, 우연과 계획 등 이분법적 대립을 원하지 않는다. 대립적이고 단선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서로를 추동하는 관계로서 형성의 과정에 있는 잔상들이다. 하나의 선, 혹은 그 선들이 묶어진 기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고 덮어지는 흔적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가는 그 전체 형상의 과정을 만나는 것이다. 서로에게 옮고 물들이고 관계하는 잔상은 부유하고 배가되는 그런 성찰이다. 수 시간 기록한 결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테라핀의 양적 차이로 물감이 번진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수행적으로 드리워진 잔상을 통해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전달되는 과정 속 결들의 인상을 흔적으로써 보여준다. 나로 인해 새겨진 물감의 흔적들과 잡아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며 그 인상들을 겹치고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작업을 마주하며 저마다의 대 상을 떠올리며 잠잠해진다. 내가 나에게 떠오르는 잔상들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잔상이 여과되는 흔적이다. 나의 작업은 개념과 의미 전달이 아니라 인상의 전의다. 나는 이것이 안개 같은 잔상으로 남아 나무가 되어 잔잔히 존재하기를 바란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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