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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수상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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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람료

    성인 1000원 / 청소년 및 군경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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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강서문화원(원장 김진호) 겸재정선미술관(관장 김용권)에서는 2023 제14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에서 선정된 8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오는 8월 4일(금)부터 9월5일(화)까지 33일간 1층 제1기획전시실에서 수상자 전시를 개최한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는 “2023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는 겸재의 화혼을 오늘에 되살려 미래의 한국과 세계의 미술을 이끌어갈 작가 발굴 및 가능성을 지닌 만20세 이상 ~ 만40세 이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수준 높은 작가들을 공모하였다.
 
이번 공모에서는 한국화, 서양화 작가 127명의 640여점의 작품이 심사 대상에 올랐다.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의식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얼마나 성취하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심사위원들의 심사가 이루어졌으며, 나름의 스타일을 일구어가고 있는 작가들이 수상하게 되었다. 심사결과는 '대상'에 전효경 작가, '최우수상'에는 신제현 작가, ‘우수상’에는 전혜진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들에게는 각각 상금으로 500만원, 300만원, 200만원 총 1,000만원이 수여되며, 대상 수상자는 내년(2024)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준다
 
또한, 내일의 작가로는 한국화 부문-김민지, 이정윤 작가, 서양화 부문에서는 박준식, 배지인, 성필하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들에게는 '겸재 내일의 작가 증서'가 수여된다.
 
대상에 선정된 전효경 작가는 스킬이나 테크닉에서도 인정될 만하지만 그 정신 혹은 모험에서도 승인되었다. 회화로서 전통성과 그 변형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우수상의 신제현 작가는 정말 기대가 크다. 이른바 동서양 회화 비교미학의 경지를 나름대로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회화로서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그 모색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수상의 전혜진 작가는 1차 심사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아이디어에 비해 회화적 밀도와 분위기가 조금 미흡했지만, 심사위원들은 그 가능성을 보면서 높은 기대감을 가졌다. 이들 외에 선정된 5명의 작가들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성취도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심의 과정의 심사위원들은 그 이후 작업들을 기대하게 했다.
 
김병수 평론 부문 심사위원은 “예술에 있어서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것들과 동시대적 감각을 융화하고 접속시키는 것은 거의 모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지점에 대한 성찰과 예술가로서 실존적 고뇌와 용기를 보여주는 작업들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진호 강서문화원장은 “겸재 또한 젊은 시절의 고뇌를 이겨내고 새로운 미술의 길을 개척했던 바 이 또한 젊은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기대하며, 이들 중에 새로운 겸재가 탄생하기를 소원한다.”라고 전했다.

전시 개막·시상식은 8월 4일(금) 12시 겸재정선미술관 1층 로비에서 개최된다. 전시 관람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이며,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및 군경 500원(단체 관람 시 성인 700원, 청소년 및 군경 300원)이다. 단, 만6세 미만 및 만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등은 무료관람 대상자이다. 자세한 전시 관련 문의는 겸재정선미술관(☏ 2659-2206~7) 으로 하면 된다.
 
 
○ 참여 작가 : 8명
   · 한국화 부문 - 전효경(대상), 전혜진(우수상), 김민지, 이정윤
   · 서양화 부문 – 신제현(최우수상), 박준식, 배지인, 성필하

○ 주최‧주관 : 서울강서문화원 ‧ 겸재정선미술관
○ 후 원 : 서울특별시 강서구청, 강서구의회
 
 
■ 작가 노트

대상 [전효경]
나의 작업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속되어 작용하는 ‘이사’라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본질적으로 인류는 생성된 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정착하고 떠나는 것을 반복하며 발전해왔다. 수많은 나이테가 생기며 일 년의 기억이 좁아지는 그 순간들마다 사람들은 정착의 기분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나 있을까. 혹시 찰나의 순간이었다면 그게 정착이라는 단어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유난히 많은 이사를 겪은 나는 이사를 갈 때마다 버려지고 새로 사는 사물들이 아쉬워 간소한 삶을 추구했다. 버리지 않기 위해 모으지 않았다. 첨약하고 사사로운 것들을 모으지 않는 동안, 주름처럼 새겨지는 나이테 틈에 끼어 손금에 새겨진 지도를 돛대 삼아 이윽고 빈손으로 다니는 법을 배웠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역설적이게도 나의 작업은 난잡하게 얽힌 오브제들로 화면이 빼곡하다. 외부적 경험을 토대로 보편적 형상을 추출해 자동기술법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작업은 이윽고 한 화면 내에서 묘한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무정착의 정착 방식인 것이다. 이미지의 동기는 범위가 아득하게 확장된다. 이따금씩 본 영화나 소설, 외의 여러 경험들을 토대로 머릿속에서 떠올라 유영하는 단어들을 건져낸다. 자음과 모음이 분해되어 점자 도서들 속의 기호처럼, 모스 부호의 그것처럼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점들을 원래 형태로 다시 조립해서 꺼내다 보면, 의외로 통일성과 규칙성 없지만 괜찮은 단어들의 조합이 나온다. 그리고 먹을 기반으로 뼈대를 세우고 작업을 진행하여 순간적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사고와 은유에 연쇄적으로 서사를 부여한다.

의미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저마다 무기물에 갖고 있는 의미는 다르다. 어떠한 한 사물을 대할 때, 나의 의미는 다르고 관람자의 의미는 다르고 또 다른 타인의 의미는 또 다르다.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개인적이고 그 세상을 기억해내는 감정들은 은밀하다. 여태 살아온 개인의 경험이 응축된 삶 속에서 아주 하찮은 사물도 모든 매체에게 다른 작용을 일으킨다. 나는 착각과 변형을 통해 종이 위 아무렇게나 움직여 만들어내는 낙서 소리처럼 사사롭게 작업을 진행한다. 이지적이지 못한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나의 작업은 완성 뒤에도 끊임없이 진행된다.


[대상] 전효경, 유령뱀과 나무아미타불행, 장지에 수묵, 41.5×169cm, 2023
 

최우수상 [신제현]
나는 지난 21년간 동양화의 기법을 서양화로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대마잎을 태워 아교풀과 섞어 먹을 만들어 대마잎을 그린다던가, 동양화의 배체법背彩法, 휙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하고 있다. 문자도에서 보이는 특이한 원근법과 개념미술적인 글자의 활용법을 아크릴판에 역순으로 그리기도 하고 자개기법으로 한국의 주식 시장을 수학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그림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 전통 자개 금박 기법으로 가야금이나 해금을 만들거나 궁중 안무인 춘앵무, 봉래의의 치화평을 재해석한 현대 무용을 연출하고 현대미술 퍼포먼스로 제작하기도 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 전통문화의 본질을 연구하고 현재 나에게 가장 흥미롭고 적절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과 내 작품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24년간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해 보았다. 동아시아 출생에 유교, 불교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자란 내가 서양화를 배우고 수채화와 유화, 아크릴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유럽 백인들이 미술사에서 만든 역사속의 말과 글을 가져와 익숙히 사용하는 나의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한 고민 속에서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나는 대학 학부 때부터 동양화의 배체법背彩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배체법이란 약간 투명한 비단의 앞면이 아닌 뒷면에 색을 올려 반대편인 앞면에 색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기법으로 대상의 겉이 아닌 속을 그리는 기법이다. 나는 아크릴 물감으로 유리판 위에 여러 번 덧칠을 해 색을 올려 마지막에는 배경이 되는 검은색을 칠해 완전히 모든 면이 검은색이 되면 다시 유리를 돌려 벽에 건다. 유리판 위에 한 층 한 층 물감을 그리면서 올리며 그리는데 맨 처음 칠한 물감이 유리의 가장 바닥에 깔려 보이지 않지만 유리판을 돌리면 이 부분이 그림의 가장 윗면이 된다. 그런 그림 한 장을 그리려면 50호 유리판에 아크릴물감으로 매일 9시간씩 꼬박 두 달이 걸린다. 흰색 하이라이트를 칠하고 밝은색부터 올려 잘 칠해지지 않는 유리 위에 아크릴 물감을 한 붓질 당 5~7회씩 그려 올리고 나면 일주일 후부터는 내가 그린 그림이 나중에 유리판을 돌렸을 때 어떻게 그려질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러고 나면 10개의 그림 중 7~8번은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그리는 방식의 특성상 중간부터는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면을 붓이 미끄러지는 유리 위에 그리는 이 수행에 가까운 이 기법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나는 제대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 기법은 나 자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항상 불안하고 경계에 서서 고민하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숲이나 강, 바다와 같은 자연의 경계에 선 내 모습이나 내 주변의 비슷한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다. 바다가 시작하는 경계점이나 숲이 시작하는 경계점에 선 사람의 뒷모습은 관객에게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림의 인물을 자신 있게 맞대어 마주 보는 시선이 아닌 그 사람이 나아가는 시선과 방향에 관객을 둔다. 그림 속의 사람이 숲으로 들어갈지 돌아올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최우수상] 신제현, 마리를 찾아서 제주11, 투명아크릴판 위에 아크릴 물감 배체법, 90x65cm, 2018


우수상 [전혜진]
시체를 화장해 유골을 그릇에 담아 안치해두는 납골당은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현대의 사회 문제점들을 다를 바 없이 가지고 있는 장소다. 사람들은 삶의 마감 후에 안치되는 공간을 선택할 때마저 자신의 경제능력, 그 안에서 나누어지는 빈부, 또 남겨진 사람들의 편리함을 고려해야 한다. 남겨진 사람들 또한 그러한 요인들과 망자에 대한 개인적 감정들로 인해 오묘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죽은 사람을 한 곳에 박스를 쌓아놓듯 모아 놓은 광경은 납골당을 추모 외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 공간은 현대사회의 도시 풍경, 특히 아파트와 같은 모습이다. 아파트의 층마다 다른 값, 즉 로얄층이라는 개념은 납골당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납골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작은 이미지로 보여주는 느낌을 준다.

그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공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죄책감이 증폭되고 기억조차 나지 않던 잘못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채운다. 남골당이라는 공간은 자주 찾아오지 못해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련없는 사람들 또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곳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떤 인연들과 함께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남겨진 이들에게 죄책감을 더욱 불어 넣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안식처로 만들어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냉기와 천천히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이 보이는 듯한 공간.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표정을 지어도 침묵을 만들고 차디찬 공기만을 느낄 수 있는 납골당은 언제 가도 낯선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공간이 회화작업으로 변하면 비로소 현대사회가 투영되는 공간, 웅장하지만 너무나 차가운 공간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이 작업은 납골당에서 보여지는 죽음과 삶의 모습,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에 관해 유추해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공간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은 채 스스로 바라본 다양한 관점들을 나타낸다. 모든 작업은 푸른빛이 도는 무채색 색감으로 제작돼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감정, 생각, 기분 들을 만들어낸다. 젖은 상태에서 색을 올리고 또 올려 전의 번짐과 새로운 번짐이 만나 경계선이 흐릿해지고 공기가 흐르다 멈춘, 느리게 일렁이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색감과 채색방식으로 공간의 웅장하지만 정적인 차가움,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이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건물 안을 거닐고 있는 느낌을 주려 강한 어둠을 잡지 않고 묽고 탁한 색감으로 처리하여 흐릿하고 묘한 인상을 준다.

또 유골함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던 어렸을 적 내 시선을 대리석 무늬에 초점을 맞춰 비치듯 그려넣으며 쌓이는 묘사들은 자연스럽게 재현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그대로의 유골함을 바라보는 내 현재의 시선도 함께 나타낸다.

새롭게 유골함들을 만드는 납골당의 모습을 보면 언젠간 유골함이 천장까지 채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주게됨을 표현하기 위해 천장의 벽면들에 수많은 유골함들을 빽빽하게 그려 넣고 위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희미하게 가려진 느낌으로 재현적인 표현을 놓치지 않으면서 녹아들게끔 한다. 손에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천장까지 유골함을 무리하게 넣어 이 작업이 현대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음을 전달한다.

이 작업을 통해 마지막 안식처를 선택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크고도 작은 이 공간에서 서로의 다양한 인연들과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시선들을 갖게끔 하고, 이곳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과 죄책감, 현대의 사회문제, 도덕적 문제를 보여주며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큰 삶과 각자의 개인적인 작은 삶들 또한 투영하여 볼 수 있는 공간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우수상] 전혜진, 죽음의 공간_ 장지에 먹, 한국화 물감_ 116.8 ×72.7_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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