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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경 <호우시절 好雨時節> 展

YOU Hyeonkyeong - It Was Beautiful Days

  • 작가

    유현경

  • 장소

    갤러리나우

  •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신사동)

  • 기간

    2020-05-07 ~ 2020-06-05

  • 시간

    10:00 ~ 19:00 (휴관일 : 일요일)

  • 연락처

    02-725-2930

  • 홈페이지

    http://www.gallery-now.com

  • 초대일시

  • 관람료

갤러리 가기
 호우시절 好雨時節 It Was Beautiful Days
-갤러리나우 이순심

유현경은 모델이나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나 대상의 특정상황, 대상이나 모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적 느낌, 분위기, 아우라[Aura]와 관계를 통해 이입되는 에너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변환해서 캔버스에 그려 나가는 작가이다.

그동안 추상표현 인물화를 주로 그려온 유현경이 이번에는 금각사를 그린 그림 3점을 포함하여 새로운 풍경들과 인물 신작들을 보여준다. 그녀의 그림은 대상을 보고 있으되 보이지 않는 느낌과 기운, 자신의 심리상황 등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화하는 작업인데 최근작에서는 새로운 심리적 변화가 감지된다. 유현경은 작가노트에서 “어둠은 점점 엷어지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임을 그림이 방증할 것이다. 사람의 어두운 얼굴만 보이고 풍광의 쓸쓸한 모습만 보였는데 언젠간 어둠이 더 이상 나의 관심 요소가 아니어서 그 어둠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작품 [금각사]가 바로 그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유현경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로 징그러울 정도의 노골적인 문장 구사,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수단으로 내용을 감당한 지점에서의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한다. ”뜨거움은 전달 하되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으로의 은유. 이 지점이 작가가 유지해야 할 온도라고 생각하고 [금각사]를 마음에 담아두었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소름끼칠 정도로 화려하면서 담백한 건축에 대한 찬사를 표현하고 있다. 금각사의 극한의 화려한 금장과 담백하고 절제된 건축적 표현양식이 만나는 것처럼 소설의 온도와 유현경의 감성과 직관이 만나는 온도는 비슷해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불안, 연민, 모호함, 어둠에서 벗어나 밝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밝고 좋은 기운이 전달되는 작업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이번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기분이 좋다. 이는 작년까지 설악에서 작업하며 자연과 가까이 지냈고 작업 공간이 바뀜으로 그 동안의 과거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물을 보는 태도에서는 저의 편에서 보던 방식에서 상대의 편에서 보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보고자 하는 일부의 모습으로의 인물을 그렸다면 지금은 과거보다 상대의 모양을 듣고 보는 방식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고 말하고 있는 유현경은 이전 작업에서 자신의 느낌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본인의 의지적 직관에 더 충실한 작업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이란 과거를 회복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신과 대상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주체자로서의 능동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유현경의 변화된 모습을 함께 느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론>

월간미술 2018년 8월호 발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불안감”
-김정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1. 두려움의 한 표현으로서의 회화행위: 유현경의 그리기 방식과 태도
"Ogni pittore dipinge se"(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린다)
이 문장은 르네상스 시대에 나왔던 회화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하나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초의 언급자라고 추정 되어지는데, 이러한 추정은 모나리자의 얼굴 속에서 다빈치의 페르소나(persona)가 포함되어 있다는 학계의 이론으로 개연성을 얻고 있다. 이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부터 잠바티스타 벨로리(Giam Battista Bellori)에 이르는 16-17세기의 미술이론가들은 미술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을 던졌지만, 위의 화두는 회화의 형식이나 양식이란 물리적인 요인이 아니라, 심리적인 차원과 맥락에서의 정의로 독특한 의미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화가가 그린 인물은 – 뿐만 아니라, 정물이나 자연적 대상들 모두 - 실상 그 화가를 지향하거나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화가 자신의 닮음이나 연관적 형상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초상화(인물화)는 화가와 대상과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러므로 그림은 대상만이 아니라, 화가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의 개입과 참여 혹은 간섭으로 완성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정의를 작가 유현경에게 대입하려는 이유는 - 문장의 의미가 모든 화가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작용이 확대되면서 - 작가의 작품 속에 담겨진 기질이나 특성을 추적하게 해 줄 단서로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먼저 작가는 인물이나 인물들이 형성하는 사회적 현상들을 다룬다. 물론 그 사회적 현상은 매우 첨예하고 도발적이며, 또한 한정적이다. 이러한 특정된 상황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 혹은 필자에게 인상을 남긴 것은 정작 작가 자신이며, 나아가 작가의 심리라는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대학생이던 때에 작가 유현경은 일반인 남성을 공모하여, 그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인물화를 그렸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러서 그려낸 인물화는 그 위험성을 화질로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위험성이란 이미 이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고려되었던 것 같고, 작가는 이것을 감수하는 것을 계획의 중요한 실행조건으로 삼았다. 익명의 낯선 남성을 특정한 장소(모텔이나 여관)에서 그려내는 것은 작가(여성)와 모델(남성)이란 미술사에 있어 약간은 예외적인 관계라는 점 말고도, 이 이성적 관계에서 벌어질 부가적인 상황전개를 주제에 포함시키는 일이었으니까. 이런 긴장감이 있는 관계적 상황 속에서 작가는 인물을 묘사하거나 재현하는 데에 주력 했다기보다는 그 상황이 발생시키는 미묘한 긴장감이나, 어떤 공포감을 표현하는 데에 더 집중한 듯 보인다. 작가는 ‘나약하다’는 여성성에 의식적으로 도전한 셈이며, 이 도전을 실천에 옮기면서 발생되는 가능한 여러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심리적 불안감이나 방어기제에서 발현되는 긴장감들을 회화행위로 전이시킨다고 설정해볼 수 있다. 이 설정은 작가가 2009년 전시에 동반한 글에서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난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비정상적이고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불안할 때는 말을 많이 하고 흥분하고 앞으로 걸어가고, 눈을 이상하게 뜨고, 머릿속이 포화상태가 되고, 손잡고 싶고, 떨리고, 잔인한 생각을 한다. 이러한 상태가 찾아오면 사람들이 표피적으로 보이며, 발가벗겨서 경멸하기도 하고, 마구 사랑하기도 한다.”

2. 소리 없는 절규 혹은 플롯 없는 서사: 그림의 구성과 특징
<불면증>이나 <배산임수촌>, <좁은 문> 등 2009-10년에 제작된 그림들은 평면에 병렬된 공간성을 지닌다. <학교>는 서울대 미대를 다니거나 나온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도록 미로와 같은 복도 그리고 층수를 알 수 없는 계단의 연결이 그림 속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깊이의 논리적 혹은 물리적 전개가 평면 위에서는 상하좌우로 펼쳐지고, 이것은 시간의 구조인 것처럼 배치된다. 즉 평면에 펼쳐진 공간은 ‘미로(labyrinth)’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생성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아무리 이야기를 구성해 보려 하지만, 단편들의 짜깁기 이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 단편마다 인물들이 등장하여 특정한 행위와 사건을 - 이를테면 섹스 – 보여주지만, 병치된 사건들은 행위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플롯 혹은 기승전결을 형성시키지 않는다. 공간은 인간의 활동을 위한 깊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지는데, 작가의 공간은 특히 그렇다. 깊이 없는 공간의 틈 없는 병치와 배치가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형성하는 것이 작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2011년 이후에 제작된 인물화들에서의 공간은 거의 극단적인 공허함으로 치닫는다. 공간은 매우 암시적으로만 표현되는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을 그리던 필치와 색채가 그대로 외부의 배경으로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작가는 인물과 (주변)공간은 구별하기보다는 인물의 존재와 성격을 분위기와 등치시키거나 중첩시켜버린다. 이런 그리기 방식은 기존의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화에서 기대되는 이목구비의 개성이나 인상 따위는 뭉개버리고, 인물이 발산하는 심리적 상황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3. 존재의 참을 수 없는 두려움: 존재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방식으로서의 공포감
자신을 포함하여 인물을 그리는 행위는 회화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것이며, 이는 과거로 소급되는 미술사적 연구에서 부단하게 추구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궁극적인 것이어서, 앞으로 인간에 의한 조형예술적인 생산이 안고 있는 숙명적 과제를 함께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유현경의 그림들은 기초에 착안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 개인의 스타일이나 특징으로서 과거 인물화의 상식적인 부분들을 자신 만의 독특한 화법을 위해 사용하거나, 이를 왜곡시키고 있는데, 바로 ‘응시(凝視)’라는 형식과 ‘흐리기’라는 연출방식이다.
응시와 흐리기는 유현경의 작은 인물화에서 주로 관찰되는 내용과 형식이다. 대개의 인물들은 작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의 예외는 있지만, 이 경우도 모델의 응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다. 2011년도 즈음에 그려진 <가난한 사람>, <차분한 사람>, <죽은 사람> 등은 응시와 흐리기가 공존하는 양태를 보인다. 응시의 전제조건은 대면(en face)이다. 사진이든 회화든 응시는 모델과 작가가 양립된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준다. 관찰하는 대상과 관찰자가 상호관계라는 점이다. 특히 정면응시의 경우는 거울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을 두 개의 존재로 설정하는 것처럼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심리학적 영역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고 때론 무서운 상황이다. 이 상황은 작가가 모델을 대면했던 순간이기도 하지만, 작품으로 형상화되면서 관객과 그림 사이의 전이된 상황으로 전개된다.
앞 장에서 설명한 흐리고 모호한 인물화의 형상들은 어쩌면 응시가 갖는 공포감에 대한 작가의 대응이라고 추정된다. 물론 작업의 형식이 갖는 즉흥성이나 신속성 따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형상들에서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응시의 자세는 분명하며, 그래서 흐리기는 그 응시에 대한 방어기제이자, 그것의 회화적 방편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갖을 수 있다고 본다.

4. 회화의 경험을 추체험하다: 결론
아직 작가는 작업의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았고, 발전의 지도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작가는 아직 신진의 티를 벗지 않았다. 나이로 보나, 그가 던지는 발언의 정서로 판단하나 그렇다. 단언하지만, 사람을 그리는 일은 줄 곧 이어질 전망이다. 미술은 결국 그리고 어떻게든 사람의 삶이나 그 양태를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모습에 얹어서 표현할 자신의 감정과 속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 감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서 회화는 작품이 포착한 아니면 반사된 작가의 정서적 상태이다. 그 중에서 필자는 불쾌함, 불안, 초조, 경계심 따위를 먼저 파악하였다. 언급한 감정들은 그림을 그릴 당시, 아직 당면할 사회에 대한 준비나 경험으로 무장하지 않은, 그야말로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버린 여성작가의 심리 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한 누구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개 동년배의 그리고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성작가들은 이 상황을 시니컬하거나 사회비판적이거나 아니면, 남성의 욕망에 순응하거나 도발하는 형상성으로 표현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끌어내오지는 않았다. 9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여성작가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특유의 여성성이나 시각을 작품의 주제나 제재로 삼아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회화작업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유현경이 유일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50대 초로의 남성인 필자는 어느덧 낯선 남자 혹은 여자 앞에 무방비로 앉아있는 그래서 왠지 불안하고 거북하며, 경계심 많은 젊은(혹은 어린) 여자가 된다.



유현경: 인물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유현경은 인물화를 그린다. 거의 모든 작품에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그림들에서는 에피소드와 사건들로 채워진 풍경 속에서 더욱 단순화된 관념의 형태들로 그려지고, 또 어떤 그림에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피사체(被寫體)처럼 다루어진다. 유현경의 최근 연작은 모두 실사(實寫)로 이루어져 있다. 즉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다. 그의 인물은 밝거나 어두운, 혹은 불안하거나 아늑한 공간이 아닌 회화적 색채들의 관계들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 그려져 있다. 그의 사실적 추상기법은 조안 미첼(Joan Mitchell)과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를 떠올리게 한다. 미첼의 직관적인 관찰과 터치들, 자코메티의 인물화가 보여주는 대상의 미니멀한 존재감 등을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유현경의 실사가 흥미로운 점은 그와 모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특수한 메커니즘 때문이다. 피카소나 마티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화가와 모델의 관계와 달리 그의 작업에서 모델은 재현보다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면, 감화(affect)'의 대상이다. 즉 이 관계에서 화가는 모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모델은 화가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회화는 그 과정이 인화‘(in-pressed)된 것이다.

2009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욕망의 소나타>에서 유현경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포화상태를 보여주었다. 포화(saturation)를 통해 그가 보여준 것은 시각적 떨림, 감정적 몰입, 상념의 극대화, 대상에 대한 극적 경험 같은 것들이었다. 이 전시에서 소개된 <일반인 남성 모델> 연작은 실제로 작가가 섭외한 남자들을 모텔에서 만나 그들을 누드로 그린 것이다. 불안하고 낯설다 못해 위험한 이 교류의 경험은 작가에게 있어서만 아니라 작가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있어서도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화적 면’(Plane of Paintin)삶의 문제’(Problem des Lebens)가 조우하는 접점들에 대한 것이다. 회화적 면은 캔버스의 표면일 뿐 아니라, 화가와 대상의 조우에 의한, 동시에 그들과는 무관하게 생성되는 독자적 현실을 가르킨다. 회화적 면은 물리적인 동시에 추상적이며, 대상인 동시에 주체와 중첩된다.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사는 대부분 이 회화적 면에 대한 사유의 역사다. 회화가 세계 안에서 독립적이고 초월적인 현실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그것이 다른 어떤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노력으로도 해설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적 정리의 한계와 그것이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의 협소함을 말하면서 그 바깥, 의 영역을 예술이 담당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회화적 면은 철학의 바깥을 이루는 삶의 문제를 회화 안에서 구조적으로 반복한다. 논리학은 언어적 논리라는 좁은 영역 바깥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관계들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회화는 그러한 관계들을 대체한다. 회화적 면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그 안으로 가라앉는다. 화가와 관객은 회화를 통해 그 장면을 목도한다.

<일반인 남성 모델>은 화가가 그러한 관계들에 대해 맞는 계약의 형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예시한다. 모델은 관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스스로 주체이기도 하다. 모델은 화가를 바라본다. 화가가 모델과 조우하는 순간은 이러한 상호주관적 관계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현경의 작품 속에서 모델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각각의 모델들은 지인이거나 낯선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델로서 작가의 앞에 서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관계에 대한 확신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이들은 유현경이라는 여성, 화가, 친구, 낯선 상대 앞에 상이한 관계들에 의해 호출되어와서 서거나 앉아 있다가 떠나간다. 작가는 이 인물들에게 때로는 관심을 갖고 대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다녀가는 동안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한다. 모델은 인간적 교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회화적 사건을 위한 알리바이이기도 하다. 이 파악할 수 없는 응시의 주체(혹은 응시의 대상)가 회화 안에서 그려지고/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화가의 모습은 구슬을 바라보는 점술가를 연상시킨다. 모델(의뢰인)이 그의 앞에 앉아 있지만 그가 응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5개월간 독일에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유현경이 그린 인물화 연작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회화적 사고의 국면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대부분 속필(速筆)로 그린 것들로, 얼굴이나 신체의 자세한 묘사가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림자나 얼룩처럼 보이는 흐릿한 실루엣을 통해 겨우 인물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대상과의 재현적 유사성은 소멸되고 대신 대상의 현전에 대한 납득’(apprehension)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현경의 인물화에서 모델은 재현이나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매번 불안한 조우(遭遇)의 단초 같은 것이다.

나는 그를 앞에 두고 그를 그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앞에 있어야 했다.
그는 종종 그를 보지 않고, 그림에 몰두해 있는 나를 보고 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 그냥 있어줘.
나는 즉각 대답하였다. (.....)
나는 잠깐 그를 그린 것이었는데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이제 그를 더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나는 그림이 잘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가도 좋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자세히 보았고, 그녀를 그릴 수 있었다.

회화의 물질적 관능(sensatino)에서 비롯하는 화가와 모델의 전통적 관계는 여기서 회화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물화(portrait)란 무엇인가?
Portrait는 중세 불어의 ‘portraire' 그리고 라틴어의 'protrahere'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정형은 'protraho'드러내다‘ ’앞으로 끌어내다‘ ’베일을 벗기다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한자에서 초상‘(肖像)닮은‘ ’같은등의 이미지를 지닌다. 닮은 이미지‘ ’같은 이미지를 가리킨다. 같은 글자인 로 읽으면 소멸혹은 쇠퇴의 의미로 읽힌다. 인물화가 지향하는 재현의 대상은 감추어져 있거나 이미지를 소멸시켜야만 드러나는 어떤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인물이 외양으로 뒤덮에 있지만 그의 본질은 생각, 인성, 의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대상에 대한 기억, 경험, 분위기, 아우라 등도 이러한 본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대상이 가까이 앞에 있는 것이 그를 기억하는 충분조건이 되진 않는다. 대상이 먼 곳에 있다고 해서 그의 현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물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다. 실은 그것이 회화의 가장 커다란 주제이기도 하다. 유현경의 인물화는 이 전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인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조건들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숙고한다. 인물화는 회화가 제기하는 가장 복잡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유현경의 근작에는 간략한 제목들이 붙어 있다.k <가난한 사람>, <죽은 사람>, <차분한 사람>, <어린 사람>과 같은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제목은 인물들에 대한 한정된, 그렇지만 핵심적인 정보를 전해준다. 예컨대 2011년대 그린 <가난한 사람>은 푸른색과 검은색의 거친 붓질들로 이루어진 배경에 거의 뒤덮여버린 사람의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의 머리는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의 붉은색만이 약간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가난함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우리는 이 빛들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동시에 비좁게 빛나는 붉은빛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착한 사람>의 얼굴은 어둡고 검은 공간을 배경으로 붉은 빗빛으로 물들어 있다. 얼굴을 지운 수평적 붓질은 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의도적인 부정처럼 보인다. 그 사이로 입과 이가 어럼풋이 빛나고 있어 미세하게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수치심이나 분노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그의 목과 가슴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다.
<어린 사람>은 긴 머리를 한 여성의 실루엣이다. 그녀는 맑고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파란색 면으로 뒤덮여 있다. 그 얼굴은 배경을 향해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텅 비어 있지만 맑은 푸른색의 얼굴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거나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것은 가면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어린 사람>은 밝고 아름다운 미색의 빛 속에 EJ 있는 어두운 얼룩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이 얼굴을 다시 밝은 핑크색 붓질로 몇 차례에 걸쳐 내리그음으로써 상당히 지워놓았다. 이 추상적 얼룩은 싸이 톰블리의 회화를 떠올릴 만큼 최소한으로 다루어져 있다. 어림은 여기서 밝고 맑은 빛과 어두운 얼룩 사이를 변주하며 오간다. 반대로, <어른 여자>의 얼굴은 탁한 자줏빛 배경 위에 불투명하고 밝은 핑크색 붓질로 뒤덮여 있다. 그 위에는 짙은 빨간 립스틱으로 강조된 입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이 어른인 이유는 자신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이 불투명함을 통해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은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몸은 무겁고 짙은 녹색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다.

작가가 모델로부터 어떻게 이런 감정들을 포착해내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여전히 불확실하며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인물들은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 판단이 대상에 대한 관찰과 납득속에 혼재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인물화들은 수없이 변화하는 작가 자신의 다양체이자, 다양체로서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인물화들은 <바람이 좋아요>, <밝아요> 같은 제목을 지니고 있다. 그리는 도중에 모델이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대상의 상태를 보고 스스로 자신의 뇌리 속에서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바람이 좋아요>의 인물은 어딘지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수평의 담백한 붓질들로 이루어진 푸른 배경 앞에 어둡고 불안한 짙은 갈색의 얼굴이 떠 있다. 그녀의 목 부분 위로 또 다른 푸른 붓질이 지나가면서 이 갈색의 그림자가 아래로 이어지는 것을 중단시키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 줄기 빠른 바람의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한 줄기 빠른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외적으로, 이 갈색의 얼굴은 슬프고 묵시적인 표정을 흐릿하게 드러내고 있다. 깊은 슬픔 속에서 그녀는 맑은 바람의 스침을 느끼고 있다. <밝아요>는 밝은 그림은 아니다. 단지 짙은 녹색 배경 위에 같은 녹색으로 그려진 머리가 흰 윤곽에 의해 구분되어 보일 뿐이다. 예의 그 몸은 흐릿하게 머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어두운 자주색으로 성기게 뒤덮여 있다. 그리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이 얼굴이 느끼는 밝은 빛은 그의 머리 뒤에서 나온다. 아마도 화가가 그를 보면서 느낀 후광일지도 모른다. 또는 화가 스스로 그를 보면서 느낀 빛일 수도 있다.

유현경이 그린 근작들 가운데는 정물이나 풍경화도 있다. 이 그림들은 그가 이전에 그린 군상(群像)들을 떠올린다. 원근법 대신 사물들은 화면 안에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 개의 화분>이나 <>에서 각각의 화분이나 나무는 인물화에서 등장한 사람들처럼 그려져 있다. 대체로 대작인 이 그림들에서 인물과 존재는 서로 조우하고 있다. 그것들은 구체적인 사물이라기보다 얼룩이나 붓질의 덩어리처럼 다루어져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 안에서 밝고 강렬한 빛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이 식물인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자신의 영역에 머물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있는 곳은 산책이나 휴식의 공간도 아니다. 상이한 사물들이 회화적 존재로 머물게 되는 것이 이 그림들이 함축하는 조건이다.
회화가 그 독자성과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것은 그것이 생산하는 관계의 역설로부터 비롯된다. 회화는 끊임없이 소멸되고 재창조된다. 제스처, 붓의 움직임, 대상의 해석, 시선의 사용법을 통해 회화가 사라지는 경계들이 생겨난다. 이를 통해 구체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조건들이 생겨나는 것 역시 회화의 역설을 구성한다. 유현경의 회화는 이 회화의 역설을 가시화하는 예외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피카소가 죽기 직전에 그린 자화상들은 그가 일생 동안 무엇을 그렸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아마도 그것은 삶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와 관련한 것이리라. 우리는 인물화를 새로 배워야 할 것이다.


<작업노트>
누군가를 오래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 과거를 보냈고 현재 그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는 것이 즐거운 경우에 한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좋은 텍스트이지만 아쉽게도 상대의 과거를 곁에 두고 향유하기에 개인들은 너무도 분주하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삶이기에 노년은 깊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노년이 불안한 인물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느린 걸음이 느린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안고 갈 역사가 많기를. 그 느림이 초조하지 않기를 바래 본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랑을 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극복했다고 답했다. 그 사람은 깔깔깔 웃으며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하며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고 아직 아버지의 품에서 살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무섭지 않았고 어떤 말을 해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극복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는 오래전부터 힘든 날은 여지없이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그를 만나면서 그 꿈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에서 시작한 꿈은 꿈의 중간 즈음부터 그의 얼굴로 바뀌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하는 가장 큰 사람. 우리 앞에 우뚝 서있는 존재. 그 절대자로서의 아버지의 자리에 그를 가져다 두고 그 무게를 부여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많이 좋아했지만 내가 부여한 자리가 너무 높아서 작은 실수와 잘못에도 크게 미워했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를 만났다. 한참 뒤, 그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골몰하던 어느 날, 아버지를 잊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내가 어둠에서 나오길 권고했을 때와 어떤 류의 음산함을 경계했을 때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를 만나며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명목의 섹스가 있었지만 그가 가고 난 밤들의 어둠과 음산함은 덮으려고 애를 써도 폐색하게 드러났다. 나의 어둠과 내 문제(때문이라고)라고 말했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멀리 도망치며 관계의 문제에서 가해자가 되었다. 생존을 위해 갔지만 그곳에서 가해에 대한 죄책감으로 또 다른 지옥을 맛보았다. 도망친 곳에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절대자의 위치를 그에게 부여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기다릴 것 같았지만 돌아왔을 땐 떠나고 없었다. 비극이었다. 그 뒤, 외관상 요란하고 물리적인 비극에 부셔졌을 때 아프지 않았다. 비극을 몰랐다면 충격에 다쳤을 것이다. 움직여 지는 대로 가능한 선에서 어그적 어그적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여러 번 다치게 했으나 여러 번 구했고 여러 번 아프게 했지만 여러 번 치유했다. 삶의 큰 부분을 위로 받았다.
거절인 줄 알면서도 도망치는 그를 쫓으며 나의 모양이 망가지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 모멸감이 클수록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가해의 죄책감은 풀리고 있었다. 모멸감은 털어내니 시간과 함께 털어졌다. 오래 남아있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어서 그 모멸감으로 바꾸기 위한 (이) 영악한 연극을 다급히 마치고 당분간 어떤 관계도 책임지지 않을 사회로 건너와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기본적인 의사 표시 외에 미묘함을 만들 수 없는 불충분한 영어 구사를 가지고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지금. 마침 통행이 금지되어 아무도 없는 도시의 문화 유산을 걸으며 봄의 공기와 낮이 밤으로 바뀌는 저녁의 불빛과 집에 가는 길의 맑은 바람을 느끼며 행복하다. 이방인으로 작업실과 집 사이를 오가다가 작업실과 집이 속한 사회내에서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에 실망하게 되면 또 잘 모르는 사회로 이동할 것이다.
그가 떠난 후 한동안 비어 있던 아버지의 자리에 아버지로 등극한 나는 이제 남성 어른과 어른 여자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으며 책임져야할 것들을 보호한다. 아이가 세계에 대해 갖는 겁과 경계로부터 벗어나 두려움 없이 지내기로 한다. 나의 삶은 아버지를 잊기 전과 아버지를 잊은 후로 나뉘게 되었다. 아이에게 사랑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을 경험해서 이 큰 세계에서 자유 의지를 가진 독립체로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며 돛대를 잡고 항해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체의 앞에서 키를 잡고 운행하려면 너가 선택할 수 없이 부여된 것들로부터의 무게를 버리고 그 어떤 부채와 빚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이라는 환상을 궁금해하고 동경하며 그것이 많은 것을 위로해 줄 것만 같은 기대로 괜한 거리를 서성이는 외로운 일들은 없을 것 같다. 대신, 일을 마치고 따듯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 천천히 요리한 저녁을 먹고 불을 끄고 잠이 든다. 사용하지 않는 곳들은 불을 껐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나와보면 또 불이 켜져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불을 켜고 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어둠이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노력했지만 턱없이 부족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둠은 점점 엷어지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임을 그림이 방증할 것이다. 사람의 어두운 얼굴만 보이고 풍광의 쓸쓸한 모습만 보였는데 언젠간 어둠이 더 이상 나의 관심 요소가 아니어서 그 어둠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마치
처럼. 이제서야 맑은 것에 집착했던 그의 어둠을 본다.
그림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혹은 어떻게 이해하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을 반영하는 시각적 결과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썼다. 과거가 극복되고 잊히지 않는 한 같은 과거를 계속 다르게 반복하고 번복한다. 나는 다르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매번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 나는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매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
유현경


<약력>

학력
2011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석사과정 수료
200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0     <호우시절 好雨時節 It Was Beautiful Days> 갤러리 나우, 서울
2019     <아시아 나우 파리 2019> 갤러리 아트베라스, 부스 B217, 파리, 프랑스
2019     <기분이 좋지 않아> 갤러리2, 서울
2018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 갤러리 세인, 서울
           <행복할 일만 남았어요> 스페이스몸 미술관, 청주
2017     <갈 곳 없어요 2> 서울대학교 우석 갤러리, 서울
2016     <갈 곳 없어요> 두산 갤러리, 뉴욕, 미국
2012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학고재 갤러리, 서울
2011     <잘못했어요> OCI미술관, 서울
2010     <나는 잘 모르겠어요> 갤러리LVS, 서울
2009     <화가와 모델> 하동철 장학금 지원 전시, 서울대학교 우석홀, 서울
           <욕망의 소나타> SeMA 서울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전시, 인사아트센터, 서울

단체전
2020     2인전, 갤러리 아트베라스, 제네바, 스위스
2019     <회화의 시간> 종근당 예술지상 역대 선정작가 전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한국 근현대 드로잉> 소마미술관, 서울
2018     <인물, 풍경> 전병구, 유현경 2인전, amc lab, 서울
           오페라 갤러리, 서울
           <마주서다> 소다미술관, 화성
           <낯, 가리다>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성남
           이윤성, 유현경 2인전, 리각 미술관, 천안
2017     <프롤로그 2017>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 파주
2016     <회화적, 비회화적> 제니조, 유현경 2인전, 갤러리 기체, 서울
2015     <차가운 진실 – 보이는 것들의 이면> 조선대학교 백학 미술관, 광주
           <육감> OCI미술관, 서울
2014     <구경꾼들> 두산 갤러리, 서울
2013     <인물 파노라마>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젊은 모색 201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2     <우먼 앤 바디>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2011     <한 획> 학고재 갤러리, 서울
2010     서울대학교 우석홀, 서울
           <야생사고> 아트지오 갤러리, 서울
           <직관> 학고재 갤러리, 서울
           <수상한 전> 일현미술관 기획, 강남 을지병원, 서울
           <서교육십: 상상의 아카이브-120개의 시선> KT&G 상상마당, 서울
2009     <동방의 요괴들> 두산 갤러리, 서울
           <일현 트래블 그랜트> 학생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일현 미술관, 양양
           <[!] 느낌표> 동방의 요괴들 지역 순회전, 계원디자인 예술대학 갤러리 27, 의왕
           <소수정예주의> 갤러리 영, 서울
           <우수졸업작품전>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레지던시
2018     메이크샵 아트스페이스, 파주
2016     두산 레지던시, 뉴욕, 미국
2014     로테 파브릭, 취리히, 스위스
2011     슐로스 플뤼쇼브, 플뤼쇼브, 독일


<작품이미지>


Fine, 2019, Oil on linen, 244x369cm



금각사 1, Kinkakuji 1, 2019, Oil on canvas, 160x160cm



금각사 2, Kinkakuji 2, 2019, Oil on canvas, 120x120cm



금각사 3, Kinkakuji 3, 2019, Oil on canvas, 140x140cm



내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얼굴, A Face Left Deep in My Heart, 2011, Oil on canvas, 50x40cm



바람 Wind, 2011, Oil on canvas, 50x40cm



소라 7, Sora 7, 2019, Oil on canvas, 91x65cm



신재연 4, Jaeyeon Shin 4, 2019, Oil on canvas, 91x65cm



열심히 일해야 해, Should Work Hard, 2014, Oil on linen, 136x33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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