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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New Wave

The 13th Solo Exhibition

  • 작가

    지나 유

  • 장소

    스페이스 엄

  • 주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09길 62 (방배동) 스페이스엄빌B/D

  • 기간

    2024-03-05 ~ 2024-03-11

  • 시간

    11:00 ~ 18:00

  • 연락처

    02-540-1212

  • 홈페이지

    https://www.spaceum.co.kr

  • 초대일시

  • 관람료

    무료관람

갤러리 가기

"시각적인 부분과 청각적인 부분을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에 대한 전시"
.
"Make New wave"
.
지나 유 X 박 찬재
기획,디자인,그림 : 지나 유
음악 : 박 찬재
후원 : 숲인더문

 


자연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음자리표
홍경한(미술평론가)

 
1.
미술사에는 음악이 시각예술에 영감을 주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숱하게 나온다. 음악과 시각예술의 협업은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그 결과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작품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음악과 미술의 교차에 관한 미적 탐구 외에도, 자연에 대한 동경과 찬양에서 비롯된 작품들도 있다.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일본식 정원의 수련을 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그린 모네의 작품에서부터 우리에겐 후지산으로 유명한 호쿠사이(Hokusai)의 목판화 연작, 스투어 강(River Stour)에 자리한 시골 풍경을 묘사한 영국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풍경화 등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동화되어 제작된 작품들은 매우 많다.

자연자체를 표현의 주제로 삼은 게 아닌, 자연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어 제작한 동시대미술 작품도 드물지 않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핀란드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마르코 카사그란데(Marco Casagrande)가 리투아니아, 벨기에 등의 여러 나라에 설치한 <숲의 사원(Forest Temple)>을 언급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과 생태학적 인식의 개념을 수용하는 일시적인 구조인 <숲의 사원>은 자연환경과 음악, 건축이 어우러진 이머시브(Immersive) 작품이다. 작가는 다양한 길이의 대나무 파이프를 숲에 심어 유기적이고 악기 같은 구조를 만들었는데, 바람이 대나무 파이프를 관통하며 내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같은 숲의 여러 자연음이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도록 했다.
마르코 카사그란데의 작품이 자연, 그 중에서도 바람에 의한 대나무의 소리를 설치라는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어떤 작품들은 자연으로부터의 공감각적 경험, 음악적 영감을 회화로 담아내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자연의 진동과 음파를 시각에 투사해 공명시키기 위한 일련의 작업들을 말하는데, 작가 지나유가 추구하는 예술도 그 연장이다.
 
2.
지나유는 자연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회화에 전사(轉寫)한다. 자연에 내재된 시각적인 요소들과 현장에서 느낀 작가의 기분과 정서, 그리고 주제들은 자연에서 전이된 음률을 회화라는 매체로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작가 또한 바다(자연)에서 영감을 얻었고 파도의 반복되는 선들(이 선들은 마치 음악의 강렬함과 복잡함을 반영한 듯한 활기찬 색상, 역동적인 모양,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이 레이어가 되어 음표와 오선지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그림 속)직선과 곡선, 자연의 사물들은 그 장소에서 들었던 소리들을 기억하며 작업에 옮긴 것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필자는 그 대표적인 작업으로 <별이 쏟아지다(Starlit)>(2020)의 후속으로 진행된 <케렌시아(Querencia)>(2020~) 연작을 꼽는다.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흘리는 드리핑(Dripping)의 우연성과 자로 잰 듯한 직조의 풍경이 함께하는 이들 작업의 중심엔 하늘이 있고, 이 하늘은 디자인 같은 그의 그림을 달리 보게 만드는 요소다. 적어도 하늘은 회화성을 가장 잘 품고 있어 작가에 대한 미적 기대치를 높이는 조형적 문법이다.
지나유의 하늘은 우리가 흔히 조화롭게 공존하는 완전한 질서와 균형, 순수함과 깨달음, 천상의 빛으로 가득 찬 영역으로 묘사되는 그 하늘이다. 그의 그림에서 하늘은 영원한 존재와 부재라는 관념을 강조하면서 가시적이지 않은 천상의 곡조가 조화로운 색과 리듬이 되어 청각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한, 시각적 초월성을 이루기 위한 의도로 위치한다.
절제된 무언가가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간인 하늘은 보표처럼 보이는 선과 면으로 채워진 하단의 비현실적인 공간과 동반하면서 경직되고 대립적인 상황을 드러낸다. 이 중 화면 아래의 공간은 세상에 없는 미지의 영역이고 각각의 섬들은 일종의 음표요, 선 위에 자리한 파도의 일렁임은 작가의 상태와 상황, 심정이 새겨진 은유이다.
지상의 한계를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하며 신비로움을 선사하는 <케렌시아> 시리즈는 실제의 소리, 물체의 진동과는 거리가 멀다. 귀청을 울리어 들리는 건 없다. 하지만 공감각(synesthetic)’ 측면에선 설명이 가능하다. 공감각은 무형의 소리를 유형으로 바꿔준다. 특정한 색깔과 움직임 사이에 놓인 그것은 자연의 색과 음색의 관계가 감각 또는 인지 경로를 따라 무의식적인 소리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소리의 실체는 안정과 쉼, 평화다.
<케렌시아> 대비 장식성이 강하지만 동그란 행성, 이름 모를 섬,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화면에 들어선 <비욘드(Beyond)>(2023) 시리즈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언뜻 보기에 이들 작업은 감각적이라기 보단 이성적이다. <케렌시아>에서의 하늘이 표현이라면 <비욘드>는 전반적으로 구성이 앞선다. 그러다 보니 일본 우끼요에(浮世繪)의 대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의 작품이나 한국의 민화적인 뒷맛이 있다.
<비욘드> 연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달 내지는 태양이다. 이것은 따뜻함과 온화함을 상징하고, 화면에 드리운 바다와 지평선의 직선과 곡선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그림마다 자신을 비롯해 세상의 어떤 것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송이 없는 꽃잎을 무수히 그려 넣었다. 그 소중함이란 자아일 수도, 생명일 수도, 예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나온 삶,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수록 매번 잊지 않고 찾아들던 불청객, 그 절망의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3.
커다란 달을 품은 <모던 달빛(Modern dalbit)>(2021~)은 일렁이는 바다와 예리하게 그어진 수평선(과 지평선), 그 선 위를 타고 흐르는 시간과 공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 또한 지나유 작업의 특징인 자연이 선사하는 평온함이 두드러진다. 자연계의 고유한 시각성과 고요함 속 특별한 감성을 음악적으로 구축함으로서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 거론한 작업과 동일하다.
흥미로운 건 <모던달빛>에는 이전 작업엔 없던 생명체가 종종 등장하는 데, 기쁨과 희망, 믿음을 상징하는 파랑새(BlueBird)’. 곧 날아 가버릴 듯한 한두 마리의 파랑새가 나무마다 위태롭게(당장이라도 날개를 퍼덕이며 이탈할 것 같아서) 앉아 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불안도 감지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파랑새 본연의 뜻이 강조된다. 작가는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메테르링크(Maurice Maeterlinck)의 동화 파랑새(1908)에서처럼 지나유도 파랑새를 자유와 사랑, 행복을 상징하는 새로 정의한다. 또한 파랑이라는 색이 지닌 소망, 희망, 밝음, 명쾌함, 젊음 등에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그에게 파랑새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를 포박한다. 단순한 새라기 보단 새로운 미래를 향한 작가의 이상향이 내포되어 있는 기호로써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처럼 지나유의 작품들은 시각예술을 밑동으로 어떻게 다른 예술적 표현들과 조화로운 종합적 결과를 낳으며 음악적 상상이 관람자에게 전달되어 각자의 마음속에서 실체화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이 녹아있다. 그건 예술과 자연, 소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연에서, 생태에서 느낀 것들을 관람자들이 시각을 포함한 청각으로의 확장을 염원하고, 그로 인해 보다 많은 이들이 시청각적 예술을 통해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기대 혹은 바람이다.
작가의 이런 기원은 색과 선, 구성에서 엿볼 수 있다. 단아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는 희망의 명료성을 전달하고 <케렌시아>에서 엿보이듯 우연성과 물감의 농도에 의해 불규칙적으로 빚어지는 하늘과 나무의 결은 한계 없는 상상과 꿈을 소환한다. <비욘드> 연작에서의 파랑새와 <모던달빛>에서의 달 역시 소원, 소망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평화로운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밝은 내일을 향하고 있다.
물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파도는 삶의 질곡과 관련이 있지만 궁극적으론 파랑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은 파고에 시름하며 격정에 휩싸일 때도 있으나 바람이 멈추면 잔잔해지기도 하는 인간의 삶, 그 모든 것이 결국 음악적으로 차용된 채 오선보(五線譜)와 음표가 되어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 낸다.
 
4.
한 예술 형식이 다른 예술 형식에 영감을 주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시각 예술과 음악의 연관성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의 작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작곡가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협업은 음악을 통해 회화적 조형성을 구축하려 한 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는 색과 형태, 그리고 음악 사이의 관계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시각 예술이 음악에서 경험되는 것과 비슷한 감정과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역시 그림을 통해 자연에서 느끼는 음악적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1889)에서 밤하늘의 소용돌이치는 패턴과 활기찬 색상은 음악에서 발견되는 역동적이고 감정적인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리드미컬하고 서정적인 붓놀림은 음악 구성의 흐름과 매우 유사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지나유 또한 자신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본인이 느낀 소리를 공유하고 싶어 했다. 이에 작가는 20243스페이스엄에서의 개인전(2024.3.5.~11.)에 작품에 대한 ()을 만들어 (관람자들에게)들려줄 예정이다. 시각과 청각적인 부분을 한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험에 대한 전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기대감도 크다. 그는 이번 전시는 그 꿈을 하나 된 공간으로 연출한 첫 번째 전시라며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 조합된 공간에서 다양한 소리를 체험함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감각적인 경험을 즐길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일정한 공간에서 효과적인 음향장치와 시각적인 작업의 호흡은 관람자들의 감상을 더욱 극대화하고 감성의 진폭을 넓힐 수 있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진공상태에서의 경험이라면 순간의 즐거움과 더불어 잔상도 오래 남는다. 그런 점에서 지나유의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작품에 을 입히는 건 동시대미술에서 흔한 일이다. 장르 간 학제 간 경계가 불분명한 시대에서 음악과 미술의 호환은 별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리가 회화의 일부가 된 것도 이미 오래 전이다.
일례로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61년 작품 <첫 번째 그림(The first picture)>(1961)만 봐도 그렇다.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저드슨 교회에서 새로운 예술 형식의 실험에 참여한 그는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David Tudor)가 존 케이지(John Cage)<433>(초연 1952)를 연주하는 사이 공간 한편에서 그림을 그리며 캔버스에 부착된 마이크를 통해 붓의 움직임과 지우고 다시 그리는 소리 등을 들려줬다. 시간의 찰나와 지속성을 담은 것이었으나, 듣고자 한다면 우린 지금도 그의 그림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시각에 음악을 연결하거나 곡을 덧대는 예는 다양한 작가들의 개별 작업 혹은 시리즈에도 적용된다. 다만 목적에선 저마다 차이가 있다. 여타 시각예술과 음악()의 관계는 대개 작품자체의 효과를 높이거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라면, 지나유의 경우엔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순수한 도구로써 활용된다. 본인의 작업이, 감성이, 경험이 보다 깊이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의지의 투영이라는 점에서 간극이 있다.
더구나 그가 겪은 절망과 극복을 시각으로 연상될 수 있도록 주입해 시그니처(signature)화 하려는 의도라는 사실에서도 거리감은 발생한다. 사실상 지나유는 스스로가 한 마리의 파랑새가 되길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5.
중요한 건 틀을 벗어나려는 태도다.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는 안주(安住)는 예술가의 가장 큰 적이다. 그에 반해 지나유는 남다른 열정을 갖췄다. 능동적인 자세로 오늘에 정주하지 않고 있다. 비정주는 발전 가능성의 실질적인 조건이다.
그럼에도 매체연구의 지속성은 언제나 유효해야만 하고, 기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떤 작품이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선 동시대미술의 흐름에도 예민해야 맞다. 솔직히 현재의 작업들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면이 있다. 작가 또한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라고 여긴다.' 
한편 지나유의 작품에서 필자는 다른 면ㅇ르 본다. 바로 외형과 다른 실존(實存)에 대한 각인이다. 그가 희망이나 소망 등의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지난하고 고단한 인생여정,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세상사의 고독과 번민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부딪힘으로서 실존에 관한 자문을 완성하려는 몸부림의 흔적이랄 수 있다. 적확ㅎㄴ 파악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품의 이면에서 그렇게 다가왔음이 사실이다. 
만약 그의 그림들이 자연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음자리표라는 필자의 판단이 맞는다면 그에게 작업은 스스로를 견디게(이겨내도록 하는) 하는 힘이었고 존재성과 의미를 인지토록 하는 매우 충실한 매개임에 분명하다. 내면과 마주하는 통로이자 거울로써, 작가의 정신과 가슴에 쌓이는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무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할정도로 희망과 소망, 평화, 안위라는 명사와 그것의 상징(, 파랑새 등)들을 곳곳에 음표처럼 앉혀놓는 게 아닌가싶다. 이는 화면에선 부유하지 않으나 그 어떤 언어로도 감춰지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다.





지나유_모던달빛_72.7x72.7cm_2023_캔버스위에 혼합재료







지나유_비욘드_2023_1622.2x112.1cm_캔버스에 혼합재료






지나유_케렌시아Querencia_ 162.2x112.1cm_ 2023_캔버스위에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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