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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개인전 《다이빙》

Kim Changwan Solo Exhibition

  • 작가

    김창환

  • 장소

    삼청동 과수원갤러리

  •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106-9 (삼청동) 3층 피난처

  • 기간

    2020-05-27 ~ 2020-06-24

  • 시간

    9:00 ~ 9:00

  • 연락처

    000-0000-0000

  • 홈페이지

    http://changhwankim.com

  • 초대일시

    2020-05-30

  • 관람료

갤러리 가기
김창환 개인전 《다이빙》 - 전민지
 
김창환 작품의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공기는 매순간 스스로 율동하는 세계의 일부분으로 기능해왔다. 마치 세상의 지형도를 결정하기라도 하듯 침묵하는 표류 대신 자유로운 유영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종종 바람이 불어오면 작가가 '조각해낸' 모든 것들이 –공기를 포함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능동적인 재료가 되기도 했다. 차디찬 철근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그곳에서부터 출발한 한 줌의 숨은 어딘가 가닿을 때마다 투명하고도 따뜻한 경계를 이루어냈다. 그 덕분일까, 하나의 구상적인 형태로만 치부될 수도 있었던 김창환의 혹등고래와 상어 또한 공기와도 같은 가벼움으로 말갛게 펼쳐진 하늘을 떠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품에는 온도와 밀도가 피어올랐고, 촉각적 감상을 가능케 하는 무형의 장치가 생겨났다. 면이지만 면에 그치지 않는, 선이지만 선에서 멈춘 적 없는 작업의 요소들은 이렇게 천 개의 퍼즐 조각이 되어 세계를 확장시켜 왔다.
당신은 지난 2013년 영은미술관에서의 김창환 개인전 이후 약 7년이 흐른 시점에 가만히 서 있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오랜 시간 마중물을 부어온 작가는 그 사이 양평 작업실에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나무’라는 새로운 매체를 온전히 획득해내며 삼청동의 전시 공간, 그리고 건물 위 드높게 펼쳐진 하늘로 돌아왔다. 지금이야말로 다이아몬드, 아가일 패턴이나 만자(swastika) 패턴 사이를 넘나들며 무형무색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던 작가의 작업 주제와 매체를 다시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와 보아야 할 때다. 이에 앞서, 김창환을 철근과 나무로 설치를 하고 공기를 조각하는 작가, 그런 의미에서 매체의 경계선을 결코 긋지 않는 설치조각가라고 칭해보겠다.
 
1.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다이빙> 연작은 동명의 이번 전시 《다이빙》을 통해 처음으로 발표되는 작품이다. 상승하던, 혹은 앞으로 나아가던 이들이 오늘은 다이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저 하강하고 있는 것인가? 기나긴 수식어를 생략하자면 ‘다이빙’이라는 행위는 예컨대 이러하다. 작가노트에 기록된 김창환의 말처럼, 어떻게든 “추락하는 인생보다 나은 것”이다. 자본에 의해, 그리고 자본을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해본다. 그 자체로 당신이고 우리인 ‘고통 받는 이들’은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무한히 던져왔다. 학업을 위해 공사현장에서 10년을 버틴 작가 또한 숱한 개인 중 하나였다. 누군가에게는 거리의 조연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구성원들이 매일 새벽 뛰어드는 생의 전선戰線을 상상해보자. 어쩌면 당연하게 다이빙하는 주인공들은 비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수직의 활주로를 달리고 있을 뿐, 저곳에 보이는 화살표가 아래 방향을 향하고 있다한들 피와 땀은 다이버들을 기만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가 짚어냈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하겠다. 그는 “다이빙의 끝에 다다르면 구조적 한계 혹은 태생적 한계에 부딪히는 일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인지하였다. 감히 추측하건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왔을 이 짧은 문장은 투박하게 시작되지만 깊은 서러움으로 끝난다. ‘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양쪽 문 사이에 일말의 틈도 두지 않고 완전히 닫아버린다는 것.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이들은 끈기와 희망의 상징인가, 아니면 포기와 절망의 상징인가? 이쯤에서 이전 작업에 이어 등장한 양가성을 마주해보겠다. 김창환의 <상어> 연작, <낙타> 연작 등에는 추상-구상, 하늘-땅, 구속-자유와 같이 대비되는 개념이 등장하곤 했다. 이러한 관점을 확장하여 <다이빙> 시리즈를 바라보면 또 다시 양극단에서의 분석이 가능해진다. 즉, 앞서 나열된 체념의 수식어들에도 불구하고 김창환 작품에서 우리가 분명히 찾게 되는 요소는 형태의 균형이다. 끝끝내 추락하지 않겠다는 일련의 노력을 단 하나의 행위로 응축한다면, 아마 끈질기게 쓰러지지 않으려 손바닥이나 척추에 무게를 밀어 넣는 모습이 될 터였다. 철사가 주를 이루든, 나뭇가지가 전면에 등장하든 작가의 목소리를 지닌 형상에는 탁월한 균형 감각이 틈입한다. 떨어지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만났을 물과 바람의 마찰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런 점에서 <다이빙> 연작은 회화의 완전한 구도가 조각으로 환원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의 생존(survie)와 후생(survivance)의 논의를 빌려오자면, 다이빙하는 이들은 ‘후생’ 개념이 현현된 대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살아남은 이들로서, 살아남은 상태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을 그려내기 위해 김창환은 “아픔을 더듬어가며 결핍의 흔적을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기에 오늘을 무사히 보내고 내일로 나아가고자 오늘도 다이빙을 하는 이들은 위태롭게나마 무게중심을 유지한다.
 
2. 작가는 그의 세계에 나무를 기꺼이 초대한다. 그중에서도 벌목 대상 1호로 꼽히는 다래나무에 곡선을 부여하여, <서 있는 여자>와 <걸어가는 남자>, <낙타> 등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필히 혼돈의 순간이 수반된다. 자연을 이루는 미미한 부분에서 벗어나 새롭고 즉흥적인 규칙을 부여받은 그것들은 걷고, 뛰며 신병神病의 과정을 겪는다. 다만 이를 하나의 존재가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탈바꿈하는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 자연미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보편적 자연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닐 테다. 작가가 기록한 2016년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가 경기도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시기는 2016년, 즉 1997년 IMF 이후 19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김창환은 당시 대표적인 사회 문제 중 하나였던 노숙자, 그리고 그들에게 제공된 일자리를 떠올리며 ‘나무’라는 매체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맡았던 일은 산림 간벌, 다시 말해 인간에게만 유효한 행위였다. 자연의 자리가 인공미로 대체되던 그 해,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양평은 산림이 많다는 이유로 생물다양성이 파괴되는 순간을 숱하게 마주했다. 바로 이곳에서 김창환은 작가로서의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걸어가는’ 길을 생각한 듯하다. 다래나무를 채집하여 신작의 주요 매체로 삼은 데에는 다른 나무를 숙주로 삼아 휘감고 올라가며 결국엔 군림하고야 마는 그 생태적 특성의 영향이 지대했다. 그렇게 인간의 벌목으로 생명을 다한 군주의 모습에서 우리는 선과 악의 얼굴을 한 양가성을 또 다시 발견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인간은, 한때 나무였던 인간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는 극단의 축에 놓이게 된다. 구축과 파괴가 영원히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전시장에 발을 들인 관객들 또한 선과 악 사이의 줄타기를 시작한다. 이들은 나무인가, 인간인가, 동물인가, 선인가, 악인가.

김창환은 최근작 및 미발표작과 이전의 대표작(<혹등고래>, <상어>)을 양가적 관점이라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하되,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소재와 매체로 전시장 모퉁이를 돌아왔다. 크게 인과성이 없어 보이던 재료의 전환과 주제의 확장 사이, 강한 힘으로 묶인 매듭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김창환 작업의 형상적 측면이 이따금씩 구상성의 포착만을 초래할지라도, 관람객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호하고도 오묘한 질문들로부터 삶을 관통해내는 실마리를 하나씩 수집하게 된다. 머지않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상이하게 모여 근원적 세계를 이룩해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간 흘려보냈던 피상의 조각들 역시 우리의 눈앞에 휘몰아치며 결합한다. 동떨어져 있던 것들은, 결국 결합한다.


걸어가는 남자. 100x160x260cm. 다래나무, 철근.  2016



다이빙(diving). installation view.  알루미늄.  2020



혹등고래(humpback whale) 253x200x70cm, stainless steel, 2013


다이빙(diving). installation view.  강에서 주운 나무,철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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