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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행위 이어가기1_’보통의미술’

예술행위 이어가기1_’보통의미술’

  • 999cm X 999cm X 999cm

  • 관객참여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예술행위 결과물들과 아크릴 및 코아합판 설치

  • 2018년

  • 판매여부

    감상만 가능

보통의 미술가
 
- 여느 하소연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KTX 부산 행 첫 차를 타고 대구의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비단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서- 가 아니라, 솔직히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미술공간을 운영하게 돼 버린 마당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킬 것이 생기면 반드시 뭐라도 해서 챙겨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걸 아마 사람들은 인생이라 부를 겁니다. ‘나는 내 미술을, 내 공간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지금 제게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말 간 표백제에 세척된 영혼을 짊어지고 새벽녘 서울을 나섭니다. 격주 근무지만 도착하면 사 일 이상은 당장 촉수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책상 위 모니터를 켜고 끄길 반복해야 하는데, 스위치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건 퍽 고달픈 삶의 연속입니다. 고속열차 출근길도 이골이 날 지경이니까요. 일단 저는 하소연을 해야 됩니다. 그 사정이란 제게 맡겨진 회사의 업무가 결코 소임이라 할 수 없는 탓입니다. 자재 입출고 관리와 장비 구매 견적 검토 후 직접 납품하고 제품 안내책자 디자인도 모자라 영, 일어 통번역과 해외 출장까지- 여러분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봐도 중소기업의 일개 사원이 견딜 수 있는 몫 그 이상입니다. 차라리 단순노무만 한다면 다른 업무스트레스라도 없으니 좋으련만, 사회와 타협한 대가로 일주일 중 사 일을 버리고 그저 삼 일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의 총책임자를 아버지라 할 순 없습니다. 다만 회사 일을 배우라는 암묵적이고 집요한 요청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꽤 오래 고민도 했지만 저는 혈연으로서 주어질 사명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의 기저엔 늦지 않은 나이에 발현된 가족애와 사회적 책무에 대한 결연한 다짐 같은 게 있었습니다만- 엄밀히 의무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당찮게- 늘 자기중심적 소동극의 주인공으로 자란 저라는 아이도 어느덧 집안의 두 번째 남자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은 나면 뭐라도 하며, 먹고, 자라서, 성체로 짧은 전성기를 누린 후 노쇠하며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말인 즉 저는 집안의 두 번째 위치에서 피할 수 없이 그 위로 오를 터인데, 그 사이 일인자의 전성기가 지난 것도 모른 채 제멋에 살다간 머지않아 가족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게 뻔했습니다. 그리되면 바람대로 활동적 미술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은 고사하고 제 양심마저 지키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는 말입니다.
 
- 공포와 두려움을 감시하는 인간
아버지도 당신께서 맡기신 일들에 제가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십니다. 못내 따른 일이니 즐거울 수도 없을 뿐더러 몸에 탈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오기와 집념을 버틴 결과로 얻은 병까지 누굴 원망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만, 덕분에 모양새는 정말 끔찍해졌
 
 
 
습니다. 허리디스크와 목 담 증세로 시달리면서도 몸이 남아날 틈도 없이 일에 내몰리는- 제 자신이 마치 그레고르(변신, 카프카)라도 된 듯합니다. 나무형이 런던에 있을 때부터 줄곧 저를 유리-몸이라고 놀리더니, 그나마 부정할 수 없게 돼버린 것입니다. 그레고르는 흉측한 해충이 돼지만, ‘, 제 몸이 유리몸뚱이라니!’ 어쩌면 그 몸은 보기에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회사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제 아름다울 주말만을 생각하기로 합니다. 하니 얼마든지 저 빌어먹을 정도로 가학적인 근무환경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지독한 엄살의 이유는 이깟 어울리지 않는 일- 누군가의 권력과 명령에 따라야한다는 굴종의 핑계로 원하는 걸 마음껏 집중할 여력마저 빼앗긴다는 투정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모습 탓에 유일한 안식이던 저 놀이터로부터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공포가 퍽 싫습니다. 미술을 할 수 없다니요. 그러니 두려워 견딜 수 없는 것도 참아내기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체한 마냥 사무실의 날들을 삼켜내 예쁜 주말을 얻는 저는- 그제야 집의 주인이자 자유로운 미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 억지인간
사실 저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억지스럽습니다. 자유를 위해 주말도 을 하니까요. 우선 집에 돌아오면 시설과 장비를 점검하고, 다음 전시를 위한 작가미팅을 하고, 운영자금을 조달할 궁리에 관련 지원부처의 웹을 부지런히 기웃거립니다. 집 밖에선 서로 지구 정반대 편에 서 있을 법한 저와 아버지의 관계를 제하고- 라도 다른 가족들에게 제가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일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쪼갤 수 없는 원자를 쪼개듯 어찌어찌 시간을 내서 가까스로 지금 작업과 미래의 자신을 고민합니다. 동시에 연애활동까지 하니, ‘이것은 정녕 위대한 철학가 하이데거와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설명해내기 어려운 현상이 아닐까요?’ 요지는 현존재’(Dasein, 하이데거)인 척 모든 걸 무리하여 기어코 해내는 제가- 정작 자신으로부터는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머얼리- 떨어진 참 한심한 인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란 세계는 절대로 예술행위를 포기하거나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언뜻 강직한 집안의 장손으로 얌전히 포장된 자신을 돌볼 안식은 미술과 음악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안녕을 바라며 오롯한 제 꿈을 짓습니다. 아버지가 결코 구축할 수 없는 판타지 속- 현실의 그 남자를 성당의 아버지로 대체합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 환상을 완성하려 실제 성당에도 취미를 붙입니다. 그러면 비로써 그 얄팍한 금박 포장으로부터 벗어나 성에서 완벽히 창조된 저는, 집으로 돌아와 수집된 판타지를 하나둘씩 현실로 조립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상된 반영(reflection)을 설명하려 구구절절 제 정체성이란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부정하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뻔한- 토 따위는 달지 않을 작정입니다. 항상 독립적이어야 할 저로부터 오직 스스로를 어르기만 바랄 뿐, 다른 건 별 관심도 없습니다. 하여 촌스럽게 사춘기가 지났지만 아버지의 영혼을 즐기지 않습니다. 단지- 그렇습니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도 저처럼 가족에게조차 허락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을 원하지 않던가요? 핑계 같지만, 저도 남들처럼 유일한 사물과 장소를 가지려 어린 시절 그토록 방황을 일삼았던 겁니다. 여러분은 한 번쯤 그런 바람이 없었는지요. 현실가족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또 인간사회가 지독히 잔인하고 비열해서 예술세계로 달음박질 치고 싶던- 간절함 말이지요. 돌이켜 보건대 저는 평생 그랬던 것입니다.
달음박질이라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어 기꺼이 뛰어 들었다.’ 라고 봐야 옳을 겁니다. 그 당시 저란 아이는 장난감과 놀고 만화책을 읽는- 언제나 성실하고 착한 아들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메소드 연기를 하고 나면 보상으로 바라던 볼트론과 만화책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만질 수 없는 제게만 주어질 장난감들이- 다행히 이런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리차드 도킨스)에게도 아주 따뜻하고 헌신적인 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머리가 크면서 차츰 독립의 의지가 강해지니 응당 그것마저 제 벌이로 해내기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그 바쁜 와중에 억지웃음까지 익히고 말았습니다. ‘그래, 유리 창 너머로 웃어주자.’ 이런 마음이었다, 랄까요. 여전히 사회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드디어 제 모습은 투명한 미소로 웃고 있는 저 유리 수납장과 같습니다. 마치 밖에서도 안이 훤히 보이는- 삶을 버틴 결과입니다. ‘이 얼마나 예술가로서 구해야 할 생()을 향한 생()의 정연한 태도란 말입니까?’
 
- 정연한 회고전(성장통 이어가기)
저는 그 체계 위에 수집한 기록물들을 가지런히 진열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던 시기, 제 미술의 이기와 이타성에 대해 고민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무엇이던 한 가지는 모으더군요. 그게 돈이든 기억이던- 오늘날 수집이라는 재연(re-enactment)행위는 사회적으로 전이와 전염 그리고 오염과 정화라는 순환 과정을 통해 미적 재현(representation)이 가능토록 합니다. 해석하자면 그것을 미술로 소모하는 저 또한 쌓이거나 모아진 밈(Meme)재현이기에- 겉보기 평범한 어느 소년의 일상처럼 인터넷을 유영하며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분열을 합니다. 그 흔한 존재로의 취미들이 자연스레 주체적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가상의 시공간이라는 무한한 진화능력을 바탕에 둔 의 고향에서는 어떠한 형식으로 배열하고 나열하더라도 예술행위의 자기증식을 막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열병식으로도 비춰질 법한 이번 행사가 제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재출발이자 변곡점입니다. 하니 이 전시의 정체성이란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모으는 힘에 미술의 목적을 두고 있는 스스로를 초대된 여러분으로부터 보통 예술가로 불리기 위함입니다. 해서 이 살아 있는 이방인의 회고전에서는 내부의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낮선 곳으로부터 존중은 원치 않을 요량입니다.
동시대미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적이며 미적 경험은 분명히 공적 측면성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인 중심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철학가 한병철의 지적처럼- 이런 애착이 저의 미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게다가 지금껏 해내고 있으니, 이야말로 생과 예술이 상통하는 고양된 삶이 아닐까요. 여러분 저는 그렇게 의 평범함으로 살아있겠습니다. 그 일반적이고 미미한 서사들에게 게임, 판타지 소설, 망가와 장난감 수집은 스스로 끝나지 않을 성장통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의 구원’(Die Errettung des Schönen, 한병철)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해, 앞으로 쭉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 역사를 드러내지 않을 명분도 없습니다.
끝으로 이 공간에 초대된 여러분이 저와 함께 미술놀이를 즐기길 희망합니다. 제 성장통의 과정을 확인하고 취미와 놀이의 구원을 통해 이어가기중인 에게 영감을 주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예술과 삶을 구분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 하고 있거나, 할 수 있습니다.
 
 
강나무_미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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